'면벌부를 아시나요.'

중학교 2학년 사회 교과서 47쪽에 나온다.

'면죄부'가 아니다. 사전을 찾아보니 예상했던 대로 '면벌부'는 없고 '면죄부'만 나온다. 갖고 있는 것 중 가장 근간인 2004년판이다.

이번엔 교회에 다니는 친구한테 물어봤다.

"면벌부가 뭔지 알아?"

"……."

꿀먹은 벙어리다. 그래서 친절하게 설명해 줬다.

"면죄부란 건 말 그대로 죄를 면해 주는 거잖아.그런데 사실은 죄는 이미 지은 거고,그 죄에 대해 벌을 면해 주겠다는 거 아니겠어? 그래서 면벌부라고 해야 맞대."

그랬더니 "어,그거 일리 있는 얘기네"라고 말한다.

'면벌부'는 지금 시행되고 있는 7차 교육과정에서 바뀐 단어다.

2000~2004년까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에 순차적으로 적용했다.

그 전에는 누구나 다 면죄부로 배웠고 그렇게 알고들 썼다.

면죄부 또는 면벌부란 게 무엇인가.

바로 중세 말 루터의 종교개혁 기폭제가 됐던,돈 받고 교황청에서 팔던 그것이다.

영어로는 indulgence고 한자로 하면 免罪符(면죄부) 또는 免罰符(면벌부)다.

교과서에 나오는 설명을 그대로 옮기면 '면벌부(면죄부 또는 대사부라고도 함)는 원래 십자군에 참전했거나 자선행위를 한 사람들에게 교황이 발급한 것으로,비교적 가벼운 죄를 짓고 받게 되는 벌을 일정한 속죄 행위를 통해 면제받는 것이었다.

그러던 것이 점차 남용되어 교황의 부족한 재정을 보충하는 방편으로 이용되기도 하였다'로 돼 있다.

아직 면죄부를 병용하고는 있지만 정식용어는 면벌부가 됐다.

면죄부로 써오던 말을 면벌부로 과감히(?) 바꾼 곳은 교육인적자원부다.

7차 교육과정 개편에 맞춰 나온 편수자료를 통해서다.

가톨릭에선 신부에게 고백성사를 함으로써 죄를 용서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벌까지 없어지는 건 아닌데 일정한 요건을 거쳐 그 벌까지도 사해주는 게 바로 면벌부란 얘기다.

가톨릭에선 면벌부니 면죄부니 하는 것보다 오히려 '대사(大赦)'를 일반적으로 많이 쓴다고 한다.

어쨌든 중요한 건 그동안 써오던 면죄부의 퇴장이며 동시에 면벌부의 새로운 등장이다.

면죄부는 종교용어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일반 용어화한 말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도 "그래봐야 면죄부를 주는 것뿐이 더 돼?"식으로 이 말을 흔히 쓴다.

더구나 우리말에서 '죄'는 매우 폭넓은 의미로 쓰인다.

'못된 짓을 하더니 끝내 죄를 받았다'라고 하는 데서 '벌'의 의미도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너 그러면 죄 받는다"라는 말에서는 분명 죄와 벌이 구별되지 않는다.

사전에도 반영돼 있다.

'면벌부'가 언젠가 뿌리를 내려 '면죄부'를 대체할지는 지금으로선 속단할 수 없다.

그러나 일반 언중(言衆)에게 생소한 말을 정부가 나서서 위로부터 도입하는 것은 언어의 흐름을 지나치게 인위적으로 통제하는 행위란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오피니언부 부장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