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 국내선 출구 자동문 위에 설치된 안내 광고판에 '먼저 인사하는 공항 가족,미소짖는 고객'이라는 문구가 계속 나오고 있어요.

무엇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지 압니까?"

"…… (_ _);;"

"도대체 '개가 짖는다'와 '미소짓는다'도 구별하지 못하고 일을 합니까!"

그냥 하는 얘기가 아니다.

몇 해 전 국회 건설교통위원회의 한국공항공단에 대한 국정감사장에서 나온 지적이다.

대외 관문인 공항 출구 안내문이 계속 틀린 글자로 나오는 것을 두고 당시 K의원이 공단 이사장을 상대로 준엄하게 꾸짖은 것.

국정감사로 잔뜩 긴장하고 있던 공단 이사장은 불의의 일격(?)에 당황해 "즉각 시정하겠다"고 답변했으나 국감장엔 한동안 웃음이 흘렀다.

새삼스러운 얘기지만 글을 쓸 때 표기(맞춤법)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이 밖에도 띄어쓰기를 비롯해 흔히 소홀히 하기 쉬운 부분에서 심각한 오류를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띄어쓰기로 인해 경찰 간부들이 줄줄이 징계를 받은 사례 하나.

역시 몇 해 전 국정감사 때 일이다.

L의원이 경찰청에 '디지털 휴대전화 감청기 보유 현황' 요청서를 보냈다.

문제의 발단은 이 자료 요청서에 있었다.

공문은 '디지털 방식의 휴대용전화감청기도입여부'라고 띄어쓰기를 무시한 채 경찰청 수사국과 보안국 외사국에 각각 전달됐다.

열흘 만에 L의원에게 도착한 자료에는 외사국이 감청기 17대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토대로 당시 일부 언론이 '경찰이 휴대전화 감청기를 갖고 있다'고 보도하자 경찰청이 발칵 뒤집혔다.

진상을 알아본 결과 외사국에서 갖고 있던 것은 '휴대전화 감청기'가 아니라 '휴대할 수 있는' 유선전화 감청기였다.

수사국과 보안국은 L의원의 요청서를 '휴대용전화(휴대폰) 감청기'로 해석해 '없다'고 답한 반면 외사국은 '휴대용 전화감청기'로 판단해 '있다'고 한 것이다.

뒤늦게 이런 착오를 발견한 경찰청은 외사관리관에 경고를 내리고 외사국 간부 3명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했다.

이처럼 표기 실수는 의외의 화를 부른다.

가볍게 생각했다간 오산이다.

대수롭지 않게 여긴 띄어쓰기가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에 치명적 실패를 가져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위의 경우는 발화자(encoder)와 수신자(decoder)가 모두 잘못했지만 굳이 따지자면 발화자에게 더 큰 문제가 있었다고 할 것이다.

현대 언어학과 기호학 이론에 큰 영향을 미친 야콥슨(Roman Jacobson)은 커뮤니케이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메시지로 보았다.

단어 하나하나의 쓰임새를 살펴 고르고,그것들을 얽어 문장을 꾸미며,문장들을 연결해 하나의 텍스트를 만드는 과정은 바로 메시지를 생성하는 작업이다.

그 작업의 시작점은 다름 아닌 맞춤법이다.

홍성호 한국경제신문 오피니언부 부장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