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세월 따라 변하게 마련이다. 규범이 정해지는 것도 '말의 시장'에서 어떤 형태가 살아남느냐에 따른 결과다. 그것이 이른바 '표준어'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아무리 흔히 쓰는 말일지라도 규범과 다르다면 우리는 그 말을 짝사랑하고 있는 꼴이다.

하지만 다행히 말에 영원한 짝사랑은 없다. 말이란 결국 공급자이자 수요자인 언중(言衆)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가을이 영그는 들판…' 같은 표현은 그전에는 '가을이 여무는…'이라고 해야만 표준어법에 맞는 말이었다. '가슴을 덥히는 훈훈한 인정…'이라고 하면 틀린 것이고 '가슴을 데우는…'이라고 해야 맞았다. 자식한테 '아들아,네 꿈의 나래를 마음껏 펼쳐라'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은 '아들아,네 꿈의 날개를…'이라고 해야 교양 있는 사람이라고 인정받았다. 또 한껏 멋들어지게 '들녘 가득한 봄내음…' 운운하면 그것은 틀린 말이고 '들녘 가득한 봄 냄새…'라고 해야만 맞는 말이었다. 다만 표준어법을 따르자니 도무지 말맛이 나지 않는다는 데에 문제가 있었다.

결국 우리가 일상적으로 줄기차게 써오던 '영글다,덥히다,나래,내음,뜨락'같은 말이 함께 표준어로 인정받았다. 물론 그러기까지 오랜 시일 말의 시장에서 '사랑받기 싸움(말들 간의 헤게모니 다툼)'이 벌어졌음은 불문가지다.

이 밖에 미류나무→미루나무,강남콩→강낭콩,미싯가루→미숫가루 따위는 이제 어원 의식이 희박해져 굳이 본래의 말을 살려 쓸 필요가 없을 만큼 뒷말이 언중의 입에 정착한 경우다. 이런 때는 아예 그 전 말을 버리고 새로 변화된 형태의 것을 표준으로 잡는다.

그런데 이와 달리 우리가 무심코 쓰는 말 가운데 어원이 분명함에도 잘못 입에 오르내려 굳어가는 말이 꽤 있다. 가령 요즘 "엄한 사람 잡지 마라" "엄한 소리 하고 있네"라고 할 때의 '엄한'이 그런 경우다. 이때는 '애매하게 엉뚱한,즉 아무 잘못이 없거나 관련이 없는데 억울하게'라는 뉘앙스로 하는 말이다.

하지만 사전에서 아무리 '엄하다'를 찾아봐야 그런 말은 없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한자어 '엄(嚴)하다'와는 관련이 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정체는 무얼까?

이 말은 '애먼'이란 고유어가 잘못 알려져 쓰이는 것이다. '애먼'은 엉뚱하게,애매하게 딴'이란 뜻을 갖고 있다. '애먼 사람 욕먹게 하다'처럼 쓰인다. 그 연원은 '애매하다'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인다. 순우리말 '애매하다'는 '아무 잘못이 없이 원통한 책망을 받아 억울하다'란 뜻을 갖고 있다. 이 말이 줄면 '앰하다'가 되는데 여기서 하나의 관형사로 굳은 '애먼'이 나왔다고 할 수 있다. '애매한>앰한>애먼'의 과정을 거친 말로 보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엄한 사람 잡지 마라'는 '애먼 사람…'이라고 해야 바른 표현이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렇다는 얘기다.

물론 언젠가 '엄한 사람…'이 압도적으로 세력을 얻는 반면 '애먼 사람…'은 계속 외면 받는다면 그때는 당당히 표준어로 대접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오피니언부 부장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