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지은이), 김종철 김태언(옮긴이), 녹색평론사) >


라다크 사람들은 선조들이 소중하게 사용하고 물려준 문화와 환경 속에서 기쁘게 살아간다.

책의 표지에 실린 할머니와 아기의 웃음은 그 기쁨의 표상이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놀라운 것은 그들이 보여주는 이 기쁨이 그들의 삶 전체와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주어진 삶에 대해 불평하지 않는다.

부족한 것 가운데에서 어떻게 하면 풍족함을 이끌어내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라다크 사람들은 빈약한 자연환경 속에서도 거의 완전한 자립을 이루고 있다.

그것은 주어진 자원을 낭비하지 않는 그들의 생활방식에 의해 가능해진 것이다.

◆땅과 함께 살기

라다크는 1년 중 대부분의 기간이 겨울이고 곡물을 재배할 수 있는 기간은 2월부터 6월까지 약 5개월이다.

이 기간에 보리와 밀을 중심으로 곡물이 재배되고,가축을 통해 낙농제품을 얻는다.

이들은 또한 자신들이 직접 집에서 짠 옷을 입고,그 옷이 더 이상 기워 입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진흙을 묻혀 수로의 약한 부분에 끼워넣어 물이 새지 않도록 하는 데 사용한다.

짐승의 똥은 불을 지피는 중요한 연료가 되며 인분마저 퇴비로 사용된다.

이렇게 제한된 자원을 조심스럽게 쓰는 검약한 삶은 작은 것에서 더 많은 것을 얻어내는 일이다.

라다크에는 쓰레기가 없다.

당연히 쓰레기통도 없고,쓰레기 수거차량이나 소각장도 없다.

현대사회의 가장 큰 고민거리 중 하나인 쓰레기가 이들에게는 아무런 걱정이 되지 않는다.

그들 생활을 이루는 것들은 거의 모두 자연으로부터 얻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들 모두를 다시 자연으로 되돌려 보내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라다크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나는 개울에서 옷을 빨고 있었다.

내가 더러운 옷을 막 물에 담그려고 할 때 일곱 살도 채 안 된 어린 소녀가 물길의 위쪽에서 왔다.

"그 물에 옷을 넣으면 안돼요"하고 그 소녀가 수줍어하며 말했다.

"저 아래쪽 사람들이 그 물을 마셔야 돼요."

아이는 적어도 한 마일 정도 떨어져 있는 아래쪽 마을을 가리켰다.

"저쪽에 있는 물을 쓰면 돼요.

저것은 그냥 밭으로 가는 거예요."


이 어린 소녀는 한정된 자원을 소중하게 사용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상수원으로 사용될 물과 빨래가 가능한 물을 구분하는 것이다.

이러한 구분이 생활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제한된 물로도 풍족하게 살 수 있다.

이 소녀에게 버려도 되는 물은 없다.

여러분 방의 쓰레기통 속에 버리지 않고 다른 곳에 쓰일 만한 것들이 얼마나 되는지 꼼꼼히 살펴본다면 여러분이 만들어내는 쓰레기는 훨씬 줄어들 것이다.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일,어쩌면 그것은 여러분의 삶의 방식 전체를 바꾸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은 우리가 제대로 실천하지도 않는 '재활용,쓰레기 분리수거'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한다.

나는 한번 소남에게 "당신들은 언쟁을 하지 않습니까? 서구에서 우리들은 늘 하는데요"라고 말했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마을에서는 안 해요. 아니 하더라도 정말로 몹시 드물어요."

"어떻게 그럴 수 있지요?" 내가 물었다.

그는 웃었다.

"참 우스운 질문이네요. 우리는 그저 함께 사는 거예요. 그뿐이죠."


라다크에서는 서로 마음을 상하거나 화를 내게 하지 않으려는 배려가 사회 깊이 뿌리 내리고 있다.

전통적인 라다크 사회에서 갈등을 배제하는 유용한 방법은 이 책의 저자가 '자발적 중재자'라고 부르는 것이다.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종류이든 의견 차이가 생기면 당장 중재자 노릇을 할 제3자가 있다.

중재자는 의식적으로 찾는 것이 아니고 그저 우연히 지나가던 사람,이웃사람,심지어 나이 어린 아이일 수도 있다.


재판제도는 어떤 것도 완전할 수는 없지만 작고 긴밀히 연결된 공동체에 기반을 두고 사람들이 풀뿌리 차원에서 자신들끼리의 토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도록 허용하는 제도보다 더 효과적인 것은 없다.


물론 이는 아주 작은 규모의 공동체에서만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들이 살고 있는 사회에서는 애초에 그런 삶이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은 규모의 삶이 갖는 장점을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것은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다.

라다크에서는 가족과 이웃에서부터 다른 마을 사람들과 낯선 사람에 이르기까지 '남을 돕는 것이 자기들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경쟁이 아니라 상호부조가 이곳의 경제를 이루고 있다.

라다크는 공생의 사회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삶이 작은 규모에서 가능한 것이라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왜 이렇게 거대한 규모를 지향해 왔을까.

우리는 공생과 조화의 삶보다 경쟁하는 삶에 너무 몰두해 왔던 것은 아니었을까.

◆새로운 라다크-예견되는 불행

이 책의 저자가 처음 라다크에 도착했던 1975년 라다크의 생활은 몇 세기 동안 그랬던 것처럼 같은 기초에 근거하고 있었다.

자원부족과 험한 기후,불편한 교통 덕분에 식민주의와 개발로부터 보호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인도 정부의 개방과 개발경쟁으로 밀려드는 외부의 영향은 라다크를 급속히 서구화한다.

개발과 개방은 사람들에게 서구의 기술문명을 이용할 수 있게 해주었지만 이 책의 저자가 이전에는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시키지 못했던 불행과 스트레스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었다.

이전에는 먹을 것도 마실 것도 넉넉하다고 말했던 사람들이 이제 우리는 가난하고 개발을 해야 한다고 말하기 시작하게 된다.

서구 영향이 갑작스럽게 밀려옴으로써 일부 라다크 사람들,특히 젊은이들은 열등감을 갖게 되었고 그들 자신의 문화를 부정하고 새로운 문화를 열렬히 받아들였다.

◆개발이라는 이름의 속임수

이 글의 전반부에서 이야기한 표지사진의 미소를 떠올려 보자.

라다크 사람들의 그 미소는 개발로 인해 변화된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을까.

저자는 현대화라는 과정을 지역적 다양성과 독립성을 하나의 단일문화와 경제체제로 대체하는 과정이라고 본다.

개발은 현금의 도입이 곧 발전이라고 전제한다.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자급경제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자신의 식량 의복 주거를 스스로 마련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불안정한 현금 수입을 위해 자신의 문화와 독립성을 버리는 것은 심각한 삶의 질을 저하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라다크와 인접한 부탄왕국은 인간의 복지가 돈과 무관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이들은 자신의 기본 욕구를 스스로 충족시키면서도 아름다운 미술과 음악을 즐기며 가족 친구 여가활동을 위한 시간을 서구인보다 많이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세계은행은 부탄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의 하나로 규정한다.

그것은 뉴욕의 집없는 사람이나 부탄의 농부 사이에 아무런 구별이 없다는 것이다.

자기 뜰에서 키운 감자를 먹기보다 다른 지역에서 키워 얼리고 말려서 만든 포테이토 과자를 사서 먹는 게 경제를 위해 더 낫다는 것이다.

이런 소비는 물론 더 많은 운송,더 많은 화석 연료,더 큰 오염,더 많은 화학첨가물과 방부제를 의미하지만,동시에 GNP의 증가를 의미하기 때문에 장려되고 있다.

이것이 우리 사회에서 아직 강력한 힘을 과시하는 '성장'의 삶의 방식이다.

라다크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행복과 관련한 것이다.

삶 그 자체를 순수하고 구김없이 받아들이는 일,라다크 사람들은 마음의 평화와 삶의 기쁨을 누리는 것을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우리가 잃어버린 삶을 온전히 보존하고 있던 라다크 사회의 변화를 지켜보는 동안 여러분은 아마 각기 다른 생각을 갖게 되었을 것이며 그것은 여러분의 삶을 규정하는 것을 다시 한번 돌아볼 계기가 될 것이다.

물론 우리는 현재를 버리고 라다크 사람처럼 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려온 미래가 과연 우리의 행복을 위한 것인지 물어보는 일은 여러분에게 조금은 다른 미래를 향해 열린 좁지만 평화로운 오솔길을 가져다 줄지도 모른다.

< 이순영 초암논술아카데미 논술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