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나 전자기기들은 하드디스크와 메모리장치에 정보를 저장한다.

그럼 우리는 지나온 삶의 모습에서부터 자전거 타는 법에 이르는 무수한 기억들을 어디에 담아 놓을까.

1kg이 조금 넘는 뇌 속에 넣어 둔다는 사실은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기억으로 인해 각각 유일한 존재가 되고,또 물 흐르듯 연속적인 삶을 살 수 있다.

그래서 '기억은 어떻게 뇌에 저장되는가'라는 물음은 곧 우리 자신의 존재를 이해하는 첫걸음으로 여겨진다.

과학자들은 이미 많은 연구를 통해 기억을 담당하는 뇌의 핵심 부위와 여기에 작용하는 생체 메커니즘을 상당 부분 알아냈다.

그러나 기억의 원리에 대한 완전한 해석은 여전히 블랙박스 속 비밀로 남아 있다.

◆기억의 원리를 밝혀라

기억 연구의 역사는 195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H M이라는 환자는 간질 치료를 위해 측두엽의 한 부위를 떼내는 수술을 받았는데,그 결과 그는 간질에는 호전을 보였지만 새롭게 발생하는 일들을 아무 것도 기억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이로써 과학자들은 해마를 포함한 뇌 측두엽 안쪽 부분이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 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다양한 동물 실험과 뇌 영상촬영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과학자들은 뇌의 어느 부분이 각종 기억에 관여하는지를 속속 밝혀내고 있다.

하지만 그 이상의 진전은 더디다.

측두엽 안쪽이 기억 생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알지만 그 속에서 어떠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게다가 실제 기억이 대뇌 피질에 저장되는 것으로 밝혀지긴 했지만,어떻게 기록되는지는 여전히 분명치 않다.

기억이 뇌 속 신경세포들의 결합으로 저장된다는 것은 이미 오래 전에 나온 이론이다.

1970년대 들어 과학자들은 신경 체계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이 같은 기억 형성의 비밀을 속속 풀어나가고 있다.

몇 분 정도 지속되는 단기 기억의 경우 신경세포 사이의 결합이 화학적 반응에 의해 단단해짐으로써 생성되고,몇 주일까지 지속되는 장기 기억의 경우는 일종의 단백질에 의해 뉴런이 강하게 결합돼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아냈다.

최근엔 잠자는 동안 지난 일을 되돌려 보는 게 기억을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일 수 있다는 이론이 제기되고 있다.

또 기억이 바뀌는 것은 재생될 때마다 쉽게 변하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기억의 한계

우리가 잊었다고 생각하는 많은 일들이 뇌에는 여전히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어떤 학자들은 그래서 우리가 본 일들은 기억하지 못할 뿐이지 실제 뇌 어딘가에 모두 저장돼 있다는 '영구 기억설'을 주장하기도 한다(물론 과학적으로는 규명되지 않았다).

장기 기억은 지식으로 굳어져 있는 기억이기 때문에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더라도 각종 정보나 단서 등 적절한 연결고리를 주면 다시 끄집어 내는 게 가능하다.

우리 뇌는 또 기억에 우선순위를 정한다.

중요한 일들은 빨리 끄집어 낼 수 있도록 저장하고 덜 중요한 것은 깊숙한 곳에 묻어 두다 서서히 망각 속으로 사라지게 한다.

그렇다면 사람의 뇌가 가진 정보 저장 능력은 어느 정도일까.

이에 대한 정확한 수치를 찾는 것은 현재로선 불가능하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거의 무한대에 가깝다는 게 통설이다.

만약 기억의 원리를 완전히 밝혀내기만 한다면 우리가 현재 쓰는 컴퓨터는 한낱 장난감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장원락 한국경제신문 과학기술부 기자 wr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