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지문들은 현대문명이 당면하고 있는 주요 문제와 그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제시된 글들을 바탕으로 이 주제에 관하여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시오.(1600자 내외로 쓰시오.)

※2003학년도 정시 경희대 논술 기출문제로 영문 제시문을 한글로 번역한 것임.

(가) 문제들이 수렴되면서 환경적 위기에 도달하게 된다.

이것들은 더 이상 인간의 착취에 이용 가능한 신세계가 없다는 사실을 포함한다.

인구는 지탱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계속 성장하고 있다.

기술 변화의 속도는 끊임없이 수억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고 있다.

세계화는 수십억 인구의 경제적 안전을 파괴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산성비,오존층 파괴와 다른 산업문명의 결과들이 지구에서 자연 체계의 완전함을 침식하고 있다.

그러한 위기에 직면하여 급진적 환경운동가들은 공공정책에서의 완만한 개선과 실천은 기본적으로 쓸모없다고 주장해 왔다.

사회에서의 근본적인 변화는 지배적인 산업문명의 근대적 패러다임으로부터 '새로운 환경적 패러다임' 혹은 '새로운 생태적 패러다임'으로의 패러다임 전이를 요구하고 있다. (Bill Devall,'The Deep, Long-Range Ecology Movement')


(나) 근본 생태주의자들은 생리적인 욕구 만족을 제외한 자연 '자원들'에 대한 인간들의 착취를 비난해왔다.

아프리카의 어떤 부족이 생존을 위해 곡식을 재배하면서 초원을 이용하는 것은 생리적인 욕구의 한 사례지만 어떤 늪을 특별한 골프 코스로 바꾸는 것은 그렇지 못한 것이다.

다른 사실들 역시 우리 기술 시대의 발전,채광,수확이 생리적 욕구의 충족과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근본 생태주의자의 윤리는 어떻게 하면 자동차의 생산량을 높일 것인가에 관심을 가지기보다는 하나의 길에서 인간의 이동 문제를 해결하는 데 관심을 가지며,이것은 고속도로나 주차장의 파괴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피터 드러커의 세계관,즉 "우리가 그것을 소유하고 사용하기 전까지 모든 식물들은 잡초며,모든 광물들은 단지 돌멩이에 불과하다"는 산업주의자들의 세계관에 반대하는 것이다. (Thomas Berry,'The Viable Human')


(다) 근대 이후 주류 경제학에서는 인간의 욕망이 무한한 것이라고 전제한 뒤 그 무한한 욕망을 어떻게 하면 많이 충족시킬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따라서 소비가 경제활동의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인식하고,생산 요소들은 소비를 통한 욕망 충족의 수단으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불교적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경제 활동의 목적이 최대의 소비가 아니라 적정 규모의 소비로써 인간 사회의 복지를 극대화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주류 경제학에서는 인간의 욕망은 가치 중립적이라 가정하고,소비를 통해 이 욕망을 충족시킴으로써 인간의 행복이 달성된다고 본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인간의 욕망을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한다.

하나는 인간이 생존을 유지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욕망으로 'chanda'라고 불리는데,이는 가치 중립적인,또는 좋은 의미의 욕망이다.

이를 '선욕(善欲)'이라고 한다.

다른 하나의 욕망은 흔히 '갈애(渴愛)'라고 번역되는 'tanha'이다.

갈애는 인간의 생존을 위해서 또는 생활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지나친 욕망을 말한다.

갈애는 주로 순간적으로는 인간에게 육체적 또는 정신적 만족을 줄 수 있을지 모르나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정신과 육체를 해치는 결과를 가져오는 욕망이다.

인간의 욕망을 이렇게 선욕과 갈애로 구분하여 인식하게 되면 경제학에서처럼 반드시 소비를 통해서 욕망을 충족시키고,이 욕망 충족을 통해 행복이 얻어진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소비의 증대가 아니라 적절한 소비를 통해,또는 갈애를 줄이거나 아예 소멸시킴으로써 진정한 행복(福祉·well-being)을 얻을 수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소비자의 효용체계나 가치체계를 단순히 물질적 소비에만 주로 의존하는 전통적인 경제학에서의 모형보다는 훨씬 더 발전되고 현실에 가까운 이론의 전개를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정기문,'불교의 욕망관과 경제문제의 인식',불교평론 9호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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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문제가 인류에게 해결해야 하는 과제로 제기된 배경에는 '근대적 세계관 자체에 대한 성찰'이 있었다.

지난주 살펴본 '위험사회'의 맥락에서 환경 문제는 근대적 세계관이 배출해낸 최대의 위험 가운데 하나다.

환경 문제는 단순히 우리 자손들이 물을 먹지 못한다는 것만이 아니다.

이 문제의 해결은 "오존층에 구멍이 났으니 냉장고와 무스를 쓰지 말자"는 차원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환경 운동과 생태 이론이 대표적인 탈근대 이론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으며,여성 운동이나 소수 민족의 권리 운동과 같은 변혁 이론과 끊임없이 접점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근대에 대한 반성'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현대 문명이 당면하고 있는 주요 문제로서의 환경,혹은 생태 문제에 대해 묻고 있다.

제시문에서 '환경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나름대로의 진단을 내리고 있으므로 학생들은 제시문에서 주어진 대로 환경 문제의 본질적인 원인을 짚어보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해결 방안에 대해서도 제시문이 암시하고 있는 방향을 따라갈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문제와 대안이 동시에 주어지는 형태의 제시문은 '학생들이 제시문을 꼼꼼하게 독해할 수 있는가',그리고 '근대 사회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의 원인을 근본적인 차원에서 점검해낼 수 있는가'를 묻고 있다.

제시문에 답안의 기본적인 구성이 다 담겨져 있는 경우 그것을 '답안의 기본적인 구성'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만약 자기 나름대로 구성을 새로 짜거나 추가하고 싶은 내용이 있다면 제시문의 내용들을 충분히 언급해 준 이후에 다루어야 한다.

이 논제에서는 문제의 원인을 '근대의 동인 중 하나였던 경제학이 전제하고 있는 것들'에서 찾았고,그것은 욕망의 무한성을 긍정하는 태도였다.

예를 들어 경제학에서는 논 한 마지기에서 나오는 쌀 10가마의 가치를 측정하는 전문가는 존재하지만 그 과정에서 제거되는 표토와 주변 생태계에 대한 손상,비료에서 나오는 독소가 강과 바다에 미치는 영향,제초제와 살충제의 대량 생산이 가져오는 환경적 손실을 측정할 방법은 고려 대상에서 제외돼왔다.

그것은 경제학적 주체가 '자연을 단지 자원으로만 간주'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필연적인 결과였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대안은 경제학이 전제하고 있는 무한한 욕망의 개념을 대체할 불교적 욕망 구분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제시문에서 제기하고 있는 '세계관의 변화'라는 개념은 환경 문제,조금 더 크게 보면 현대 사회가 처한 여러 위험 중에서도 과학 기술과 관련된 문제를 다루는 데 확실히 핵심적인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우리는 과학 기술의 발전이 가져 온 공간에 대한 인식의 변화에 주목해 볼 수 있다.

하이네는 철도를 화약과 인쇄술 이래 인류에게 가장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고,삶의 색채와 형태를 바꾸어 놓은 숙명적인 사건이라고 불렀다.

나아가서 그는 철도와 기차라는 근대 과학의 발명품 때문에 우리의 직관 방식과 표상에 어떤 변화가 생겨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말하자면 시간과 공간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들이 흔들리게 되었다는 것인데 '철도에 의한 공간 살해'라는 표현으로 이를 지적했다.

철도는 이제까지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새로운 공간을 열어 놓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 사이의 공간을 없애고 말았다.

기술문명 이전 시대의 시각적 인식에 존재하던 깊이는 철도가 가져다 준 속도로 인해 가까운 곳과 먼 곳의 의미를 상실하고 말았다.

공간에 대한 인식이 사라져 버리고 만 셈인데,그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전세계의 공간을 지배하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지만 실제로는 아무 것도 알 수 없게 만든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의 일상적인 삶 역시 이와 정확히 합치한다.

새만금 간척지니,브라질의 원시림이니 아무리 언론에서 떠들어 보았자 그 공간이 본래 내포하고 있는 깊이와 의미는 우리에게 전혀 와닿지 않는 것이다.

남의 이야기,남의 일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무관심 훨씬 이전에 철도에 의한 공간 살해는 이루어졌다.

근대 과학이 발전할 수 있었던 전제는 인간의 이성이다.

이성의 힘으로 세계의 구성 원리를 파악하고자 하는 소망이 물리학을 발전시킨 것이다.

외부의 물질 세계를 그저 대상의 차원으로 전락시키고 만 근대 과학은 인간과 자연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었고,근대적 인간이 대상인 자연과 관계를 맺는 방식은 지배-피지배 관계에 기초한 것이었다.

이러한 이분법과 지배-피지배 관계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서구인과 비서구인,남성과 여성,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파생되어 갔다.

우리에게 자연은 외부에 속해 있는 환경에 불과한 것이기에 언제나 그것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눈앞의 문제를 먼저 해결한 이후의 일이 돼왔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인간 중심적인 뉘앙스를 띠는 환경이라는 용어를 폐기하고 인간을 그 속에 내포한 생태라는 개념을 쓰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렇게 본다면 집필의 과정에서 제시문이 제기하는 문제의 원인 이외에 근대적 자연관 자체를 원인으로 제시하는 것 역시 가능한 하나의 내용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쓴다고 하더라도 일단 제시문의 내용은 충분히 다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잊지 않도록 하자.

염인수 초암논술아카데미 논술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