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미국의 워런 버핏이나 피터 린치에 비견될 만한 '투자 대가'들이 없을까.

증권거래소가 설립된 것이 1956년 2월이고 주식투자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본격적으로 생기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중반 이후였으니,우리나라에서 Master라고 불릴 만한 투자 대가들이 나오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외환위기의 굴곡을 거치는 과정에서 과거에 그나마 명성을 쌓아온 사람들 대부분이 무너졌으니 그 토양은 더욱 척박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가능성'을 보이는 투자전문가들은 꾸준히 부상하고 있다.

증시의 부침 속에서도 시장규모는 꾸준히 성장했고,이 과정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투자스타일을 가진 펀드매니저와 전업투자자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한국의 워런 버핏'을 꿈꾼다

최근에 등장한 한국의 전문 투자가들 중 상당수는 '가치투자'를 기치로 내걸고 있다.

이채원 한국투자증권 상무,최준철 김민국 VIP투자자문 공동대표 등이 대표적인 사람들이다.

가치투자는 워런 버핏과 그의 '위대한 스승'인 벤저민 그레미엄이 창시한 투자기법으로 기업의 내재가치보다 현재 주가가 크게 저평가돼 있는 종목을 발굴,주가가 제가치를 찾아갈 때까지 장기간 보유해 수익을 내는 것을 말한다.

이채원 상무는 우리나라에서 가치투자로 첫 성공을 거둔 사람이다.

지난 2000년 4월 초부터 한국투자증권(옛 동원증권)의 고유계정(회사돈)을 운용한 그는 지난 8월19일 기준으로 5년4개월여 동안 380%의 누적수익률을 거뒀다.

같은 기간 종합주가지수가 27% 상승한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고수익이다.

그는 몇 가지 투자원칙을 고수했다.

보고서뿐만 아니라 기업탐방 등을 통해 '높은 시장점유율로 호황이든 불황이든 관계없이 언제라도 꾸준히 이익을 낼 수 있는 우량 기업'을 선별했다.

라면회사인 농심,담배회사인 KT&G,화장품회사인 태평양,유통기업인 신세계 등이 그런 기업들이었다.

주가수익비율(PER) 5배 이하,주가순자산비율(PBR) 0.5배 이하인 우량기업들 중 배당수익률이 은행금리 이상인 저평가 종목들을 매집했다.

남보다 한발 앞서 사들인 뒤 자신이 생각하는 내재가치 수준으로 주가가 오를 때까지 기다렸다.

그는 "작년 하반기 이후 국내 증시가 급등해 PER와 PBR가 전반적으로 높아졌고 배당수익률이 낮아져 투자대상을 찾기가 힘들어졌다"며 "바이오 제약 환경 등 새로운 성장산업에서 독보적인 기술력과 높은 시장점유율을 갖고 있으면서 저평가된 종목을 발굴하는 데 전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준철 김민국 VIP투자자문 공동대표는 'Value Investment Pioneer'(가치투자 전도사)의 영문 머리글자를 따서 회사 이름을 만들 정도로 가치투자를 신봉한다.

지난 2001년 7월 대학생 시절에 '서울대 투자연구회'를 이끌면서 과외로 번 돈을 종자돈으로 이들이 만든 'VIP펀드'는 2003년 6월 해산될 때까지 2년 만에 117%의 수익률을 냈다.

2003년 7월부터는 '더 밸류 사모펀드'를 운영 중인데 2년여 만에 다시 102%의 수익률을 거뒀다.

이 같은 고수익은 신세계를 3만원에 사 9만원에 팔고,의류기업인 한섬을 2000원에 사 8000원에 매각하고,코스닥기업인 동서를 2000원대에서 사 1만6000~2만원에 걸쳐 매도한 결과였다.

◆'한국의 피터 린치'

요즘 국내에서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금융상품 중 하나는 '주식형 펀드'다.

이 가운데 적립식 펀드는 직장인들의 저금리 시대 재태크 수단으로 떠오르면서 펀드매니저들의 꿈도 부풀어오르고 있다.

세계적인 펀드매니저로는 피터 린치를 꼽을 수 있다.

세계적인 자산운용사 피델리티의 '마젤란펀드'를 운용한 그는 77년 2000만달러인 자산규모를 90년 132억달러로 660배나 불렸다.

'한국의 피터 린치'로서 가능성을 보이는 사람으로는 우선 미래에셋자산운용의 구재상 대표를 꼽을 수 있다.

지난 8월16일 기준으로 국내 주식형 펀드 중 그가 총괄 운용한 펀드의 수익률이 장기(3년) 부문에서 1,2위를 휩쓸었다.

그가 운용하는 '미래에셋디스커버리주식형'은 132%,'미래에셋인디펜던스주식형'은 129%의 대박을 터뜨렸다.

설정 이후 누적수익률은 인디펜던스(2001년 2월 설정)가 294%,디스커버리(2001년 7월 설정)가 282%에 달할 정도로 높다.

구 대표는 '기본에 충실한 투자'를 자산의 철학으로 내세우고 있다.

거시경제와 세계경기 상황 등 증시를 둘러싼 환경을 고찰하고,철저한 현장 탐방을 통해 종목 발굴에 힘쓰는 적극적인 운용방식을 택하고 있다.

소수의 펀드매니저가 아닌 다수의 공동 운용을 통한 체계적인 의사결정을 위해 투자전략위원회와 리스크관리위원회를 만들어 주요 투자 관련 의사결정을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1년 수익률 부문에서는 이택환 유리자산운용 주식운용본부장이 주목을 끌고 있다.

이 본부장은 작년 8월16일 출시한 '유리스몰뷰티주식'펀드에서 지난 18일 기준 135%의 수익을 냈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시가총액이 500억원 내외인 소형주에만 투자하는 '소형주펀드'를 고안해 낸 뒤 지금까지 300개 기업을 탐방하는 등 '발품'을 팔았다.

그는 △시가총액의 20% 이상을 잉여현금으로 갖고 있고 △자기자본이익률(ROE)은 7∼8% 이상이며 △대기업이 진출하기 힘든 업종에서 높은 브랜드 가치를 갖고 △자회사 주식이나 장부가보다 시가가 월등히 높은 토지 등 '감춰진 자산'을 보유하고 △매출액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보다 높은 성장률을 갖고 있으면서도 PER와 PBR가 5배와 1배를 넘지 않는 소형주 등을 매수 대상으로 삼고 있다.

◆배당주펀드 매니저들도 관심

이들 이외에 고배당주에 집중 투자하는 '배당주펀드' 매니저들도 요새 투자자의 관심을 끄는 사람들이다.

배당주펀드는 작년 초부터 줄곧 고수익을 내 2년 수익률 부문에서 상위 5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대표적인 펀드는 세이에셋자산운용의 '세이고배당주식형'과 신영투신의 '신영비과세고배당주식형'으로 2년 수익률이 각각 83%와 80%에 달한다.

이들 두 펀드 운용을 책임지고 있는 매니저인 오재환 세이에셋자산 주식운용본부장과 허남권 신영투신 주식운용팀장은 '배당수익률이 은행 금리보다 높고,과거 몇 년간 배당률이 안정적이거나 상승추세에 있으며,대주주나 경영진이 주주이익을 중시하는 성향을 갖춘 유망 배당주'를 선호한다.

이상열 한국경제신문 증권부 기자 mustaf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