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산업사회의 '성찰적 근대화'에 대한 저술이다.
고전적 산업사회에서는 '부(富)를 생산하는 논리'가 '위험을 생산하는 논리'를 지배했다면,위험사회에서는 이 관계가 역전된다는 것이 그 논점이다."(제1부)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은 현대 산업사회의 특성을 '위험사회(risk society)'라는 너무나도 적절한 용어로 정의하고 있다.
울리히 벡이 이야기하는 위험은 '눈앞의 위험'이라기보다는 '직접 감지되지는 않는 위험'이다.
직접 감지되지 않는 것은 예측하기 어렵고,이는 불안감을 낳는다.
정말 위험한 것은 이 불안감이다.
울리히 벡이 '위험사회'에서 주장하는 핵심적인 내용은 "현대 산업사회가 무모한 모험(risk)을 체계적으로 재생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기(前期) 근대에서 모험은 부(富)를 위해 감수해야 하는 부수적 요인이었지만,후기(後期) 근대로 가면서 '체제 자체가 무모한 모험'인 시대가 되고 말았다.
근대 초기의 무모한 모험은 '용기와 생산성'을 뜻했으나 후기 근대의 모험은 '모든 생명의 자기 파멸의 위협'을 의미한다.
울리히 벡은 이러한 위험은 과학 기술과 이에 기반한 군사-경제력에서 초래된다고 지적한다.
환경오염,생태계 파괴,인간 호르몬 체계의 변동 등을 초래한 근대적 전문가체계·과학기술문명은 체계적으로 위험 상황을 생산해내고 있다.
"생산력은 근대화 과정에서 그 순결을 잃었다.
초기 단계에서 위험은 '잠재적인 부수효과'로 합법화될 수 있다.
위험이 지구화됨에 따라,그리고 공적인 비판과 과학적 탐구의 주제가 됨에 따라 위험은 말하자면 벽장에서 나와 사회적-정치적 논쟁에서 중심적 중요성을 획득한다.
이러한 위험의 생산과 분배 논리는 이제까지 사회-이론적 사고를 결정했던 부의 분배 논리와 비교하여 (더 빨리) 발전된다.
식물과 동물과 인간에 대해 돌이킬 수 없는 위협임이 밝혀진 근대화의 위험과 결과가 주된 위치를 차지한다.
19세기와 20세기 초반의 공장이나 직업에 관련된 위해와는 달리,이 위험은 더 이상 특정 지역이나 집단에 한정되지 않으며 국경을 넘어서서 생산 및 재생산 전체에 퍼져가는 지구화의 경향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의미에서 이 위험은 새로운 유형의 사회-정치 동력을 지닌 초국가적이며 비계급 특징적인 지구적 위해를 낳는다."(제1장)
울리히 벡의 주장은 '근대성을 새롭게 재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산업사회의 해체와 함께 새로운 시대를 구성해야 한다.
풍요 사회를 향한 근대화 과정이 위험 사회로 귀착한 과정을 되짚어보고,산업사회 언어의 핵심이었던 '부의 분배'를 '안전과 위험(의 분배)'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근대적 위험은 경제적 사회적 계급이 높고 낮음과 무관하다.
위험을 생산하는 자와 그로부터 이익을 얻는 사람들에게 동시에 타격이 가해진다는 말이다.
울리히 벡의 가장 유명한 명제 중 하나인 '빈곤은 위계적이지만 스모그는 민주적이다'는 표현을 잘 생각해 보자.
이 위험은 기존의 계급 및 국가의 경계를 허물어버린다.
생태 재해와 원자 낙진이 국경을 무시하듯 근대적인 위험은 기존의 계급 경계도 무시한다.
지구상의 어느 누구도 안전한 장소에서 살기는 어렵다.
위험사회는 그런 의미에서 '전 지구적'이고 부메랑 효과를 지닌다.
계급사회의 동력이 "나는 배고프다!"에서 시작했다면,위험사회에서는 "나는 두렵다!"는 불안에서 시작한다.
위험사회에서 사람들이 겪는 불안에 대한 공동체험은 계급사회에서 사람들이 겪었던 결핍의 공동체험을 대신한다.
이것은 단순한 '대체'가 아니다.
오히려 사회를 움직이는 내적인 동력에 변화를 일으킬 새로운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다.
불안에서 비롯된 유대가 어떤 행동으로 조직화할 것인지는 아직 잘 보이지 않지만 불안이 위험사회의 변화를 시도할 동력이 될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일국의 국경과 계급의 변경을 넘어선다.
전 지구적 공론과 연대의 장이 열릴 가능성이 높다.
"다른 말로 하자면 산업주의에 고유한 전통성의 구성요소들은 산업사회라는 건축물 내에 다양한 방식으로―계급 핵가족 전문직과 같은 유형으로,또는 과학 진보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방식으로―그 이름을 새기지만,그 기초는 성찰적 근대화 과정에서 무너지고 해체되기 시작한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이 과정에 의해 야기된 시대적 동요는 근대화가 위기에 처한 결과가 아니라 성공한 결과다.
그 자신의 산업적 가정과 한계에 대해서조차 성공적이다.
성찰적 근대화는 근대성의 감퇴가 아니라 증진을,고전적인 산업적 틀의 경로와 범주에 대항하여 급진화된 근대성을 의미한다."(제6장)
울리히 벡을 포함한 성찰적 근대론자들이 주목하는 것은 위험사회가 새로운 정치적 잠재력을 생산해낼 가능성이다.
새로운 정치적 잠재력은 위험에 관한 대중적 인식을 통해 비로소 구현된다.
위험에 관한 대중의 인식을 높이기 위해서는 위험의 기원 및 확산을 다루는 사회과학적 이론과 현상을 분석하는 자연과학자들의 협력이 필요하다.
비정치적으로 여겨지던 것이 실은 정치적이었음을 밝혀내는 작업도 포함돼야 한다.
이는 근대를 주도해온 과학이 확립한 '위험을 산정하는 방법'을 폐기해야 함을 의미한다.
과학기술자와 전문가,그리고 대중매체 관계자는 새로운 목표와 관계 설정을 통해 이러한 위험 상황을 정의해야 한다.
거대한 풍요를 이룩한 근대 산업사회의 원리와 구조가 파멸적인 재앙의 사회적 근원으로 변모하는 모습을 파악할 수 있는 사람들의 협동작업이 필요하다.
반성의 대상은 '오늘날 환경 위기로 대변되는 산업사회적 위기를 낳은 과학(기술주의)적 합리성'이다.
현대의 과학기술은 문제의 근원이면서 동시에 문제를 풀어가는 도구라는 이중성을 갖고 있다.
성찰적 근대론자들이 제시하는 문제의 해결책은 '그동안 편협한 합리성에 매몰되었던 과학기술을 이제는 사회의 장으로 끌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문적 지식 생산의 과정을 공개하고 공공화하자는 것이다.
지금까지 과학기술 시대의 재앙은 일부 전문가 집단과 권력집단(국가나 기업 등)이 지식을 은밀하게 생산하고 독점적으로 활용한 데서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많은 과학자들이 자신이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라고 믿는 데서 비롯되는 정서적 힘에 기반하여 연구에 몰두해왔다.
그동안 객관적이고 비정치적인 연구를 수행한다고 생각해온 과학기술자는 실은 매우 정치적인 상황에서 매우 정치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역할을 수행했을 가능성이 높다.
핵이야말로 가장 분명한 사례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 많은 과학기술자들은 진보 또는 객관성이라는 이름 아래 군사력과 정치권력,그리고 얼굴 없는 자본의 세계와 야합해왔다.
과학기술적 지식 생산의 전 과정이 사회적으로 노출되어 공론화된 적이 없었으며,이런 제도가 현재의 위기상황을 만들어내는 주 원인이 됐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울리히 벡은 '사회적 합리성을 간과한 과학적 합리성'이 아니라 '사회적 합리성을 가진 과학적 합리성'이 주도하는 과학기술을 만들어갈 것을 제안하고 있다.
공중(public)이 과학기술적 지식 생산에 비판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면,다시 말해서 현대 과학기술의 가능성만이 아니라 그 한계까지도 함께 인식한 상황에서 과학기술 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상황은 반전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누가 어떻게 이런 상황을 극복해갈 방안을 갖고 있는가?
후기 근대에 체계적으로 생산되고 있는 위험성은 일반인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전문가집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딱히 위험사회에서 전문가가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
위험에 대한 인식은 자연과학과 인문예술의,전문가집단과 시민사회의,그리고 이해관계와 현실의 새로운 만남에 의해 결정된다.
위험의 결정에는 학문 분과,시민집단,공장,정부와 정치 사이의 끊임없는 협상과 열린 논쟁의 과정이 따를 것이다.
여기서 가장 시급한 것은 '합리성에 대한 과학의 독점을 깨뜨리는 것'이다.
염인수 초암논술아카데미 논술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