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 고전읽기] 미셸 푸코 - 권력과 지식

미셸 푸코(1926~1984)는 프랑스의 사상가다.


푸코의 지적 편력을 쫓아가다 보면 그를 특정한 범주에 잠시나마라도 붙들어 매두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의 학문적 연대기는 크게 세 시기로 분절된다.


'광기의 역사'와 '임상의학의 탄생' 등을 통해 1950년대에서 60년대 초반까지 푸코는 프랑스 철학의 실증주의적 전통을 이어받아 '정상'과 '비정상'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그리고 임상 의학이라는 지식이 정당화되고 안착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지에 대해 탐구했다.


1960년대 중반 이후의 푸코는 '말과 사물''지식의 고고학' 등을 통해 인간의 사유가 마름질되는 장(場)으로서의 언어에 주목하면서 '사유되지 않은 사유'의 심층을 파헤치고자 했다.


마지막으로 1970년대 이후 사망하기까지는 주로 권력과 지식에 대한 탐구로 나아갔다.


푸코의 사상적 편린 중 비교적 접근하기 쉽고 많이 알려진 것은 '감시와 처벌''성의 역사'로 대표되는 세 번째 시기다.


푸코의 인터뷰와 짧은 글로 이루어진 '권력과 지식'은 무작정 처음부터 직접 오르다가는 지쳐 버릴지도 모를 푸코의 어깨에 오르는 데 훌륭한 사다리가 되어줄 것으로 생각된다.


◆푸코의 권력은 '사슬처럼 엮여 있는 그물망'


푸코의 권력 개념은 국가 권력이나 특정한 무엇으로 환원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는 '정치적 투쟁이나 권력 장악을 위한 갈등,세력관계의 변화,사회적 세력관계에서 나타나는 일정한 경향 등'으로 권력이 정의되는 것을 비판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권력이란 국가 기구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국가 기구 바깥에 존재하는 보다 섬세한 권력의 작동 메커니즘이 변화하지 않는 한 어떠한 혁명을 치른다 하더라도 사회를 지탱하는 권력의 성격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즉 자본주의 사회나 사회주의 사회에서나 우리의 삶을 규정한 일상적인 권력이 바뀌지 않는 한 권력의 효과는 마찬가지라는 것이지요."('육체와 권력' 중에서)




사회주의 실패의 근원에는 '권력의 특징과 그것이 작동하는 메커니즘에 대한 치명적인 오해가 있었다'는 것이 푸코가 진단하는 권력 개념의 핵심이다.


인간은 권력을 통제하는 주체가 될 수 없다고 하는,이후에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되는 푸코의 진술도 여기서 출발한다.


"권력이란 한 개인이 타인에 대하여,또는 한 집단이 다른 집단에 대하여 행사하는 동질적인 지배 형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회 속에 유통되면서 하나의 사슬처럼 엮여 있는 그물망이기 때문이지요.


권력은 여기 저기 널려 있는 것이지 결코 어느 한 사람의 손아귀에 장악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며,상품이나 부(富)처럼 독점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로지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섬세하게 퍼져 있는 그물망을 통해서 행사되는 것입니다.


개인은 오히려 소리 없는 가운데 권력이 겨냥하고 있는 대상입니다.


즉 개인은 권력이 유통되는 데 필요한 매개체이지 권력을 행사하는 주인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권력,왕의 머리베기와 훈육' 중에서)




"근대의 휴머니즘적 전통은 권력과 지식을 나눴다는 점에서 오류를 범한 것입니다.


권력과 지식은 서로 맞물려 있는 것이기에 지식이 권력과 상관없이 성립할 수 있는 계기가 있으리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 하겠습니다.


지식 없는 권력의 행사는 불가능하며,권력의 효과 없는 지식 또한 불가능한 것입니다."('권력의 유희' 중에서)




◆푸코의 권력,그리고 지식


권력에 대한 이 같은 접근은 객관적 지식이란 없다는 것을 논증하는 주요한 근거가 된다.


푸코의 말을 빌리자면 "권력과 지식 사이의 관계가 연구되어졌다기보다는 권력은 권력대로,지식은 지식대로 따로 분리되어 연구되었던 것"이다.


어떤 지식도 '진공 상태'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면 권력과 지식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관계는 불가능할 것이다.


권력을 정당화하는 지식은 물론이고 저항하는 지식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래서 어떤 지식이 진리라 인정받았다면,그 자체가 가진 정교함이나 객관적 확실성 때문이 아니라 그 지식의 외부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특정한 정치적 효과와 관련돼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진실이 권력 밖에 있는 것도 아니며,권력을 결여하고 있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진실은 자유로운 정신의 보상도 아니고,오랜 고독 속에서 나오는 뼈아픈 인고의 결과물도 아니며,해탈의 경지로 들어간 초인만이 누리는 특권도 아닙니다.


진실은 이 세상에 널려 있는 것입니다.


진실은 여러 형태의 제약을 통해서 생산되는 것이며,진실은 일정한 권력효과를 만들어냅니다.


그리하여 각각의 사회는 '진실의 일반정치학'이라고 부를 만한 독특한 진실의 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진실의 체계는 무엇이 옳은 것인가를 판단해 내는 언술행위의 메커니즘과 형태를 결정함으로써 그 사회의 구성원은 사회적으로 공인된 진실의 체계만을 말하도록 강요받게 되는 것입니다."('진실과 권력' 중에서)




진실이 어떤 특권적인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고 하는 상상은 금물이다.


푸코는 허위의식으로서의 이데올로기라는 개념에는 "오류와 환상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지식의 완벽한 모습을 동경하는 향수가 있다"고 비판했는데,"이데올로기는 마치 진실이라는 것이 틀림없이 존재한다는 전제 아래 그 진실에 반대되는 지식은 모두 이데올로기라고 몰아붙이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한국을 지배하고 있는 '반공 이데올로기'가 가지는 허위의식으로서의 기능을 비판하는 것은 정당하지만 그 비판의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그 비판이 진리의 자리를 독점하게 되는 순간 그 또한 폭력과 억압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단일한 진리와 거짓의 이분법이 아니라 복수의 진리가 특정한 권력장을 공유하면서 그 안에서 서로 싸우고 있는 형국.그리하여 푸코에 따르면 진리란 '하나의 진술이 만들어지고 분배되고 통용되고 작용하도록 만드는 질서화된 절차의 체계'라고 이해돼야 한다.


"지식인에 관한 논의를 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정치적 문제는 이미 과학적인 지식이 가능하다고 전제하고 시작하는 이데올로기 비판이나,지식인이 사용하는 과학적 실천의 근거가 과연 올바른 이데올로기에서 출발한 것이냐를 묻는 것이 아니고,새로운 진실의 정치학을 이루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를 문제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인간의 의식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생산해 내는 정치적이며 경제적이고 제도적인 체제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권력의 체계로부터 진실을 해방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진실은 바로 권력이기 때문에 이는 환상일 뿐입니다.


오히려 그것은 진실의 권력을 사회적이며 경제적이고 문화적인 헤게모니로부터 떼내야 하는 과제를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우리의 정치적 과제는 오류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진리 그 자체에 있습니다." ('진실과 권력' 중에서)




그렇다면 특권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진리는 때로는 이데올로기라는 이름으로,때로는 상식이라는 이름으로,권력장에 그려져 있는 지도의 체계 속에서 발휘되는 효과라고 해야만 한다.


푸코는 지식인의 역할이 바로 그러한 "지식의 테두리 밖에 존재하고 있는 소외된 지식을 드러내 과학적 담화에 작동하는 지식과 권력의 효과에 대항하여 스스로의 목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만드는 자"라고 말했다.


지식인이라고 해서 보편적 가치의 담지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김원기 초암논술아카데미 선임연구원 closely@naver.com


[ 약력 ]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서울대 철학과 석사


△(현)초암논술아카데미 논술.구술 강사


△<대중문화 속 과학읽기> <포스트모더니즘과 유대인 대학살의 부인> 등 다수 교양서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