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TCM 설립 존 메리웨더] 차익거래로 금융귀재 찬사받다

월가 최고의 펀드매니저와 노벨상을 받은 경영학 교수,그리고 명성이 높은 금융관료가 헷지펀드(투기성이 매우 강한 투자펀드)를 함께 만들어 투자에 나선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어느 누구도 한번쯤 상상해볼 만한 꿈같은 펀드가 1994년에 실제로 만들어졌다.


투자자들은 열광했고 경쟁자들은 그들을 선망했다.


그러나 화려하게 출발한 이 펀드의 결과는 참담했다.


단 4년 만에 1000억달러에 가까운 천문학적인 돈을 까먹고 미국 경제 전체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월가 사상 최고의 두뇌집단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존 메리웨더(John Meriwether)였다.


채권중개회사인 살로먼브러더스 부사장 출신인 메리웨더는 1994년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ong-Term Capital Management)라는 헷지펀드를 설립한다.


그는 이미 월가에서 채권 거래로 수억달러를 벌어들인 투자의 귀재로 통하고 있었다.


12세 때부터 주식투자를 한 메리웨더는 시카코대학 경영학석사(MBA)과정을 졸업한 수재였다.


그는 1970년대에 당시 전문가들조차 꺼리던 선물시장의 메커니즘에 눈을 떠 차익거래로 명성을 날렸다.


차익거래(arbitrage trading)란 현물가격에 금융비용을 가산해 산출한 이론가격과 실제 선물시장에서 형성되는 가격(선물가격) 사이의 불일치를 이용해 이익을 보는 거래방식을 말한다.


그는 자신의 회사에 미국 MIT교수였던 마이런 숄즈(Myron Scholes)와 하버드대 교수였던 로버트 머튼(Robert C Merton)을 끌어들였다.


이들은 파생금융상품 가격결정이론인 블랙-숄즈이론을 개발한 공로로 1997년 노벨경제학상을 받기도 했다.


여기에 한때 그린스펀의 후계자로 지목됐던 데이비드 멀린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부의장도 영입했다.


미국 언론들은 LTCM을 '세계 최고의 금융집단'이라고 부르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LTCM은 기존의 헤지펀드와는 차원이 다른 투자패턴을 보였다.


그들은 새로운 첨단이론을 이용해 투자했다.


거대 은행들은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던 돈을 빌려주지 못해 안달이 났고 LTCM은 이들 은행의 돈을 이용해 선물시장과 파생금융상품에 투자했다.


LTCM은 자본금의 최고 1만%까지 돈을 빌려 투자했다.


◆LTCM의 몰락


LTCM은 1998년 한 순간에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아시아를 강타한 외환위기 이후 러시아 등 개도국의 채권금리와 미국 등 선진국의 채권금리 간 격차(스프레드)가 자신들의 계산에 비해 지나치게 확대된 것으로 판단한 이들은 러시아 채권을 대거 매수하고 미국채를 '공매도'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공매도란 실제 채권을 보유하지 않으면서 매도주문을 내는 것을 말한다.


공매도로 채권이 팔리면 결제일 안에 실제로 채권을 사서 매입자에게 주거나 차액을 결제해야 한다.


현실은 이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갔다.


러시아가 모라토리엄(국가적 채무지불유예)을 선언하면서 이들이 매수한 채권이 휴지조각으로 변했고 안정성이 높은 미국채권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LTCM은 자본금의 54배에 달하는 1250억달러를 파생금융상품에 투자해 약 1000억달러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LTCM 천재들의 실수는 바로 아무도 살 사람이 없는 극단적인 경우,즉 시장이 붕괴될 수 있다는 위험을 과소평가했다는 점이다.


이들에게 시장은 충분히 합리적이어서 모든 상품 가격은 최적가격에 수렴돼야했다.


그러나 러시아가 파산(시장붕괴)해 채권이 순식간에 휴지조각이 될 수도 있다는 계산은 그들이 자랑하는 '투자모형'어디에도 없었다.


월스트리트 최고 천재들의 실험은 허무하게 끝났다.


LTCM의 파산은 미국 정부와 은행,그리고 스웨덴 한림원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당시 LTCM 파생상품의 장부가는 무려 1조5000억달러였고 이 상품들은 돈을 빌려준 은행들과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LTCM의 파산은 미국 은행들의 파산을 의미했다.


결국 미국 연방은행(FRB)은 36억5000만달러에 달하는 구제금융으로 LTCM을 구제해 금융공황을 막을 수 있었다.


스웨덴 한림원 역시 불완전한 투기성 이론에 상을 줬다는 이유로 비난에 시달렸다.


LTCM을 떠난 존 메리웨더는 2년 후 TWM파트너스라는 헷지펀드를 만들어 재기에 나섰다.


메리웨더는 TWM파트너스에서도 LTCM과 유사한 차익거래 투자방식을 사용했다.


그러나 그는 끝내 시장의 주목을 받을 수 있을 정도의 수익을 올리지는 못했다.


김태완 한국경제신문 증권부 기자 tw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