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여성도 종중원으로 인정하라'는 법원의 최근 판결과 관련,한국경제신문의 1년차 기자인 김현예 기자가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남성위주 문화를 생생하게 묘사한 글이다.

자신의 경험담을 토대로 논점을 어떻게 전개하는지 주목하면서 일독하기를 권한다.


#장면 1.

언니의 이름은 현덕이다.

김현덕.나보다 6살 터울 위인 언니는 어릴 때 친구들로부터 '유비현덕'이라며 놀림을 받았다.

지금 생각하면 나쁜 별명도 아니었는데,언니는 늘 울고 다녔다.

언니의 이름이 현덕이가 된 데에는 사실 웃지못할 이유가 있었다.

우리집엔 5대 종손인 아버지의 뒤를 이으려면 장손인 아들이 필요했다.

할머니는 '아들'을 바라다 못해 언니의 이름을 남자아이 이름으로 지으셨다.

남자 이름을 붙여 불러야 다음에 아들을 낳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엄마는 천신만고끝에 아기를 낳았지만 할머니의 소원을 이뤄드리지 못했다.

할머니는 날 보실 때마다 혀를 쯧쯧 차시며 '저것이 고추만 달고 나왔어도'를 중얼거리셨다.

#장면 2.

한달에 적어도 한번씩 있는 제사를 어쩔꼬….환갑을 넘기신 아버지는 제사를 두고 속앓이를 하셨다.

종손인 탓에 모셔왔던 제사를 다음 대에 물려줘야 하는데 '아들'없는 우리집으로선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몇번인가 종친회 모임엘 다녀오시더니 어느날 밤 술냄새를 풍기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제사는 작은 집으로 보내기로 했다.

그리 알아라."아들있는 작은집 앞으로 제기와 병풍을 옮기던 날,엄마는 마른 행주로 제기를 닦고 또 닦으시며 시원섭섭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아들 없는 게 한번도 서럽다 생각 못했다만,내 제사를 너한테서 못받는다 생각하니 아쉽고 또 아쉽다."

#장면 3.

소송이라도 해야 되지 않겠냐.아버지는 "종중 소유의 산에 먼 친척이 나무를 베고 제멋대로 묘자리를 썼다"며 분해 하셨다.

대대로 내려오는 땅에 문중의 허락도 없이 권리도 없는 친척이 묘터를 잡았다는 것이었다.

"남의 땅에 함부로 어찌 그럴 수 있느냐"며 몇번이고 전화를 했지만 이미 묘를 옮긴 친척은 꿈쩍하지 않았다.

그해 아버지는 종친회에서 이런저런 대책안을 논의했지만 문제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여기저기 물어봤지만 돌아온 대답은 '소송을 해야 해결이 난다'는 것 뿐이었다.

화수회(花樹會).꽃이 나무가 없으면 필 수 없듯,'꽃과 나무는 한뿌리'라는 뜻으로 종친회를 대신해 쓰였다.

요즘에는 친목의 개념으로나 여겨지는 종친회는 사실상 중요한 의결기구였다.

종중은 사실상 종친회를 이끌어가는 집행부로 한 가문의 대소사를 논하는 대표집단이었다.

제사,혼례,심지어는 가문 내의 징벌까지도 종중의 결정에 의해 이뤄졌다.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내려가는 혈연 중심의 권력은 종중의 영속을 위해 아들을 필요로 했다.

지금도 사라지지 않고 있는 남아선호 현상의 원조가 바로 종중이었다.

지난 22일 대법원은 '여성도 종중원으로 인정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세간에서는 '딸들의 반란'이라며 '남녀평등의 실현'을 운운했지만 수백년 동안 철옹성같았던 종중의 벽이 깨진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바로 시대의 변화(Paradigm Shift)였다.

이번 판결의 단초를 제공했던 것은 바로 땅이었다.

유산을 분배할 때도 성별을 가리지 않고 동등한 몫을 나눠주는 것이 일반화됐어도,종중의 재산은 딸과 아들을 차별하는 서슬퍼런 규범이 있었다.

종중의 가장 큰 역할이었던 제사는 아들의 몫이었기에 당연한 귀결이기도 했다.

그러나 핵가족화와 서구화가 가파른 속도로 이뤄지면서 조상을 모시는 제사의 양태도 변하고 아들없는 소가족이 늘어나면서 종중의 전통적인 기반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산업구조의 변화도 한몫을 했다.

농경사회에서 종중은 토지를 기반으로 한 경제력과 권력을 누렸다.

하지만 서구의 산업혁명 물결이 밀려와 전통적인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변화하게 된 이후 토지는 절대적인 필요성의 권좌에서 밀려났다.

이후 정보통신 혁명이 밀려오면서 토지와 같은 하드 파워(Hard Power)는 무형의 소프트 파워(Soft Power)에 자리를 물려줘야 했다.

시대의 빠른 변화 속에서 남성을 중심으로 한 종중의 철벽이 허물어진 것은 당연한 순번이었다.

여성이 중종원이 됐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그다지 없다.

여성이 종중원으로서 재산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별도로 민사소송을 해야 한다는 것이 법조계의 판단이다.

오히려 종중원으로서 인정받게 됨에 따라 가족과 가문에 대한 의무가 늘어났다고 볼 수도 있다.

변화하는 시대,땅과 혈연을 중심으로 얽혀있던 종중이라는 우리 고유문화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이제 우리 모두에게 던져진 새로운 과제가 됐다.

김현예 한국경제신문 사회부 기자 yea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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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중(宗中)이란 ]

우리나라 민법에서는 종중을 ‘같은 조상을 둔 자손들의 자연 발생적인 모임’으로 정의하고 있다.종중의 재산을 관리하고 제사를 지내고 족보를 편찬하는 일이 종중의 주된 일이다.혈연을 기반으로 한 모임이지만 법률적인 자격도 있다.부동산을 종중 명의로 등기를 할 수 있고,소송의 당사자가 될 수도 있다.종중이 관리하는 재산은 조상이 물려준 땅이 대부분이다.종중의 명의로 된 땅은 종중 전체 구성원의 소유로 종손이나 어느 한 개인의 소유가 될 수 없다.

*생각 플러스

·우리 주변에 있는 종중 문화
·소가족 사회에서 종중의 역할
·종중원이 된 여성의 달라질 점들
·족보 중심 기록의 장단점
·종중과 족보의 현대적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