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이 어느 날 공정거래위원회에 진정서를 냈다.

"사람들이 짬뽕보다 나를 훨씬 더 많이 찾습니다.

짬뽕보다 더 일찍 선보여 서민들의 입을 즐겁게 하는 데도 일등공신이고요.

소비자물가지수(CPI)를 내는 품목에 내가 당당히 자리잡고 있는 게 그 증거지요.

그런데 왜 짬뽕은 짬뽕이라 부를 수 있는데 나만 짜장면이라 못하고 '자장면'으로 해야 하나요? 사람들은 나를 짜장면으로 알고 있다고욧! 이건 불공정한 것 아닙니까."

짬뽕과 짜장면은 같은 외래어면서도 우리말 속에서 대접받는 위상이 천양지차다.

짬뽕은 어엿하게 표준어로 대우받는 데 비해 짜장면은 여전히 '자장면'의 잘못이다.

그러니 짜장면이 불만을 가질 만도 하다.

짜장면이 이렇게 차별대우를 받는 데는 까닭이 있다.

우선 짬뽕이나 짜장면이나 모두 중국 음식이 변형돼 들어온 것이지만 그 경로가 다르다.

짬뽕의 발상지는 일본 나가사키로 알려져 있다.

그 이름은 '밥 먹었느냐'는 의미의 중국말 '츠판(吃飯)'이 일본에서 '찬폰(ちゃんぽん)'으로 변했다는 것이 통설.그러니 우리의 '짬뽕'은 일본말을 거쳐 한국식으로 바뀐 말이다.

이에 비해 짜장면은 한자어가 직접 들어와 변한 것이다.

유래는 1882년 임오군란 때 인천 지역에 들어온 청나라 사람들이 간편하게 한 끼를 때우는 음식으로 먹기 시작한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짜장면의 원어는 '炸醬麵(작장면)'이고 이를 외래어표기법에 따라 적으면 '자장멘'이다.

여기서 '-멘'만 우리 음으로 부른 게 바로 '자장면'이다.

짬뽕은 일본에서 왔지만 어원이 희박해져 순우리말처럼 뿌리를 내렸다고 보는 반면에 '자장면'은 아직 외래어란 의식이 남아 있다고 본 까닭에 중국어 표기방식에 따라 적게 된 것이다.

'끼'와 '빽'의 관계도 이와 비슷하다.

연예인에게는 예나 지금이나 '끼'가 필수요소다.

이때의 '끼'는 '연예에 대한 타고난 재능이나 소질'을 뜻한다.

"빽이 든든하다"라는 말도 살아가면서 흔히 듣는다.

'끼'라는 말은 '기(氣)'에서 온 것이다.

'끼'도 처음에는 사전의 올림말로 대접받지 못했다.

그러다 1999년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을 통해 드디어 사전에 올랐다.

'기(氣)'와 구별해 독립적인 쓰임새를 갖는 말로 성장한 것이다.

반면에 비슷한 처지에 있던 '빽'은 여전히 속어 언저리에서 맴돌고 있다.

언어세력으로 치면 '빽'이 결코 '끼'만 못하지 않을 뿐더러 시기적으로도 이미 1950년대부터 유행하던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끼'는 오늘날 당당히 사전 표제어로 오른 반면,빽은 아직도 '백(back)'의 잘못이라 하여 배척받는다.

짬뽕이나 끼가 어엿하게 표준어 또는 속어 반열에 올랐듯이 우리에게 친숙한 빽이나 짜장면을 마음놓고 쓸 수 있는 날은 언제쯤일까.

한국경제신문 교열부 부장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