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4월3일 발간된 세계 주요 신문에는 미국의 한 펀드매니저에 대한 기사가 일제히 실렸다.
피터 린치(Peter Lynch)라는 월가의 한 펀드매니저가 사임한다는 내용이었다.
피터 린치의 사임 소식이 세계적인 화젯거리가 된 것은 그가 아직도 월가의 전설로 남아 있을 정도의 기적같은 수익률을 올렸던 유명 펀드매니저인데다 46세라는 한창 일할 나이에 전격적으로 월가를 떠났기 때문이다.
린치는 1969년 피델리티 인베스트먼트라는 투자회사에 입사해 1977년 2000만달러 규모의 마젤란펀드를 맡게 된다.
린치는 13년 동안 마젤란펀드 규모를 660배나 불어난 132억달러로 성장시켰다.
그에게 돈을 맡겼던 고객들은 이 기간에 투자자금의 28배,연평균 30%의 수익을 거뒀다.
그는 "이제는 가정에 충실하고 싶다"는 한마디 말을 남기고 월가를 떠났다.
◆피터 린치의 삶
피터 린치의 어린 시절은 넉넉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수학교수였으나 그가 10세 때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나 어머니가 생계를 책임졌다.
린치는 가족의 생계를 돕기 위해 골프장에서 캐디로 일했다.
그는 그곳에 오는 경제계 인사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주식시장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가 피델리티의 경영진을 알게 된 것도 골프장에서 손님과 캐디로 만난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보스턴대학에 진학했지만 경제학이나 수학이 아닌 인문학 정치 심리학 등을 주로 공부했다.
그는 대학 2학년 때인 1963년 플라잉타이거라는 항공사 주식을 주당 7달러에 매입하면서 처음으로 주식투자를 하게 된다.
2년 후 이 회사의 주식은 32.75달러로 올랐고 린치는 번 돈으로 와튼스쿨 석사과정을 다닐 수 있었다.
피델리티에서 근무하며 그는 열정적으로 일했다.
그는 투자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투자대상에 대해 연구하며 직접 발로 뛰면서 조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해마다 500개의 기업을 직접 방문했다.
그래서인지 투자대상도 중소형주에 집중돼 있었다.
그는 "펀드매니저의 수익률은 구두 뒤축이 얼마나 닳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고 말하곤 했다.
그는 펀드매니저를 그만둔 뒤 여전히 피텔리티의 명예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개인자산 및 자신의 재단기금 수천만달러를 직접 운용하고 있다.
그가 자신의 주식투자기법에 대해 쓴 'One up on Wall Street'는 전세계 투자자들의 필독서가 됐다.
그가 물러난 뒤 마젤란펀드는 10년 동안 시장평균지수를 상회하는 수익률을 유지하며 펀드자산 규모 1위를 굳게 지켰다.
그러나 최근 1년간 수익률이 3.14%에 그치는 등 수년째 부진한 성적을 내면서 미국 내 자산 규모 7위로 추락했다.
◆린치의 투자방법
그는 와튼스쿨 재학 중에 MBA 과정에서 가르치는 주식이론이 현실과 동떨어진 공허한 이론이라는 데 회의를 가졌다.
그는 경영학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이 오히려 더 훌륭한 투자자가 될 수 있다고까지 말했다.
비즈니스스쿨에서 배운 내용들을 잊어버려야 하는 과정이 필요없기 때문이다.
린치는 투자가 어렵고 심오한 것이라는 선입견을 타파하고 좋은 투자는 간단하고 이해하기 쉬운 것이라고 설파했다.
워런 버핏의 투자가 '가치 투자'라면 그는 '실용 투자'인 셈이다.
그는 일상생활에서,그리고 가족이나 친구 등 아주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주식투자에 대한 유용한 정보를 얻었다.
예를 들어 그의 모범적인 투자사례로 꼽히는 스타킹 회사인 '렉스'에 대한 투자는 그의 부인에게서 착안한 것이었다.
그의 부인은 방직업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소비자의 관점에서 좋은 스타킹을 판별할 수 있는 안목을 갖고 있었다.
렉스 스타킹은 품질이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편의점이나 동네 슈퍼마켓에서도 살 수 있을 만큼 쉽게 구매할 수 있었다.
이 제품이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는 거리의 상점을 돌아보면 쉽게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린치는 렉스의 주식을 적극 추천했고 투자자들의 관심을 끈 렉스 주가는 폭등해 10루타 종목이 됐다.
10루타란 주가가 10배나 뛴 주식을 말한다.
그는 이와 똑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딸들이 입고 싶어 하는 청바지 회사인 '갭',자신이 비즈니스 여행 중에 묵으면서 감탄한 모텔 체인업체인 '라퀸타모터인즈' 등을 발굴해냈다.
그는 워런 버핏처럼 좋은 회사를 일찍 발굴해 시장이 제대로 평가할 때까지 장기간 보유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버핏이 소수의 우량주를 통째로 구입하는 방법을 택했지만 린치는 상대적으로 많은 종류의 주식을 보유했다.
1990년 그가 은퇴할 당시 마젤란펀드가 보유한 주식은 1400종목이나 됐다.
그는 회사의 특징에 따라 주식의 종류를 저성장주 우량주 고성장주 경기순환주 턴어라운드주 자산주 등 6개 범주로 나누고 전략적으로 접근할 것을 권고했다.
항상 고성장주를 발굴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저성장주와 경기순환주를 피하라는 것이다.
우량주라고 판단되면 과감히 투자해야 한다.
그리고 고성장주나 우량주를 발견하지 못하면 차선책으로 턴어라운드주나 자산주에 투자하도록 권고했다.
김태완 한국경제신문 증권부 기자 tw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