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에서 가장 중요한 방정식 가운데 하나는 돈과 물가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는 교환방정식이다.
화폐 수량설이라고 일컬어지는 이 이론은 간단히 말해 '물건을 거래하기 위해서는 물건 값에 해당되는 만큼의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방정식의 형태로 표현하면 MV=PQ라고 쓴다.
여기서 M은 돈의 양이고 V는 돈이 도는 속도,P는 물건의 가격,Q는 생산된 물건의 양이다.
예를 들어 100원짜리 물건 100개를 생산해서 거래하려면 돈이 1만원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돈이 5000원밖에 없으면 두 번 왔다갔다 해야(통화의 유통속도=2) 거래가 이루어진다.
화폐수량설에 따르면 통화량이 늘어나면 물가는 상승한다.
위의 방정식에서 V와 Q가 일정할 때 M이 증가하면 P가 올라야 등식이 성립하는 것이다.
따라서 물가를 적정한 수준에서 유지하기 위해서는 통화량을 조절하는 정책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이때 시장에서의 이자율은 어떻게 될까.
화폐 시장에서 돈의 공급이 늘면 돈을 빌리는 데 대한 대가인 이자율은 당연히 떨어진다.
결과적으로 물가와 이자율 사이에는,통화량이 증가하여 물가는 오르고 이자율은 떨어지는 역(-)의 관계가 나타나야 한다.
(실제로 한국은행의 통계 자료를 가지고 두 변수 사이의 관계를 알아보자)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두 경제 변수 사이에 정(+)의 관계가 관찰되는 경우가 있다.
케인즈는 이를 '깁슨의 역설(Gibson's paradox)'이라고 불렀다.
깁슨은 물가가 떨어지면 실질 소득이 증가하므로 가계의 운용 자금이 늘어나고,따라서 저축은 증가한다고 설명했다.
저축이 증가하면 자본 시장에서의 자본 공급이 늘어나는 것을 의미하므로 이자율이 떨어지고,따라서 물가와 이자율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피셔는 이에 대해 금융 거래의 당사자들이 예상 물가를 기준으로 이자율을 정하기 때문에 이 같은 현상이 발생하는 것으로 설명했다.
'피셔 효과'로 알려진 이 이론은 물가가 상승하는 경우 돈을 빌려주는 사람은 장래에 손해를 보게 되기 때문에 금융 거래를 하면서 더 높은 이자를 요구하게 되고 따라서 물가 상승이 이자율의 상승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즉 이자율이 5%인데 물가가 5% 오르면 실질적으로 아무런 이자를 받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
따라서 돈을 빌려주는 사람은 물가가 5% 오를 것으로 예상되면 명목 금리로 5% 이상을 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물가와 이자율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케인즈는 투자 수요의 변동에서 이러한 역설의 해답을 구하고자 했다.
즉 민간 부문에서 투자 수요가 늘면 이자율이 상승한다.
그러면 중앙은행은 통화의 공급을 증대시킴으로써 이에 대처한다.
이때 증가한 통화량이 물가를 오르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논쟁이 화폐수량설에 대한 공격의 양상을 띠면서 화폐수량설을 옹호하는 통화론자들은 '깁슨의 역설'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거시경제학계에서는 케인시언과 통화론자들이 이론적으로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 즉 통화량의 증가가 반드시 이자율 하락으로 연결되는지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통화량의 증대가 이자율을 상승시킬 수도,하락시킬 수도 있다면 물가와 이자율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을 굳이 역설이라고 부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최근의 한 연구에 따르면 영·불전쟁(1793~1815) 기간에 존재했던 이 같은 '깁슨의 역설'은 전쟁 때문에 불가피했던 전비 지출의 결과였다는 것이다.
정부가 전비 지출을 위해 국채 발행을 늘림으로써 시중 자금을 끌어들이니까 이자율이 상승했다는 것이다.
또한 전쟁 상황에서 물가가 오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결과라는 것이다.
물가와 이자율이 모두 전쟁이라는 특수 상황 때문에 상승했을 뿐 상호 연관성이 없다는 주장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tsroh@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