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세 글에 공통적으로 들어 있는 사고 방식의 특성을 설명하고,그러한 사고 방식이 우리에게 끼친 영향과 그 한계를 논하라.

--------------------------------------------------------------------

(가) 사람들이 진리가 아닌 것을 진리로 보지만 않는다면,그리고 논증에 요구되는 순서를 신중히 따르기만 한다면,도달할 수 없는 아주 먼 진리란 없으며,또 발견하지 못할 만큼 깊이 감추어진 진리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어디에서부터 시작할 것인가를 찾는 데 별로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가장 간단하고 또 가장 알기 쉬운 것부터 시작해야 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전에 여러 학문에서 진리를 찾았던 사람들 가운데 수학자들만이 확실하고 분명한 추리와 논증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나도 수학자들이 출발한 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을 확신했다.(중략)

나는 가장 간단하고도 가장 일반적인 원리로부터 출발했으며,내가 발견한 각각의 진리들은 다른 진리를 발견하기 위한 하나의 규칙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옛날에 내가 매우 어려운 것으로 여겼던 여러 난제를 해결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결국에 가서는 미해결의 문제가 어느 정도 풀릴 수 있는지,그리고 그것을 해결하는 데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를 결정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서 나는 주어진 문제에 하나의 해답만이 있으며 누가 발견하든지 다른 모든 사람도 그것을 알 수 있음을 감안할 때,내 방법이 전혀 헛되어 보이지는 않을 것으로 믿는다.

예를 들면 산술을 배운 아이가 산술의 규칙에 따라서 올바로 덧셈을 했을 때,그 아이는 자신이 계산한 덧셈의 합계에 대해서는 인간의 정신이 발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발견했다고 확신할 것이다.

왜냐하면 올바른 절차를 따르고 또 우리가 탐구하고자 하는 것의 모든 여건을 정확하게 진술하는 방법이야말로 산술의 규칙에 최상의 확실성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법이 내게 가장 만족스러웠던 것은 바로 그 방법을 통해서,완벽하지는 않지만 내 능력이 미치는 범위 안에서,내가 모든 것에 대해 이성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Descartes 'Discourse de la Methode'


(나) 1830년대에 레옹 포쉐가 작성한 '파리 소년 감화원을 위한 규칙'은 다음과 같다.

제17조 재소자의 일과는 겨울에는 오전 6시,여름에는 오전 5시에 시작한다.

노동시간은 계절에 관계없이 하루 9시간으로 한다.

하루 중 2시간은 교육에 충당한다.

노동과 일과는 겨울에는 오후 9시,여름에는 오후 8시에 끝낸다.

제18조 기상.

첫 번째 북소리가 울리면 재소자는 조용히 기상하고 옷을 입고 간수는 독방의 문을 연다.

두 번째 북소리가 울리면,재소자는 침상에서 내려와 침구를 정돈한다.

세 번째 북소리가 울리면 아침기도를 하는 성당에 가도록 정렬한다.

각 신호는 5분 간격으로 한다.

제19조 아침 기도.감화원 소속 신부가 주재하고,기도 후에 도덕이나 종교에 관한 독송을 행한다.

이 일은 30분 이내에 마치도록 한다.

제20조 노동.

여름에는 5시45분,겨울에는 6시45분에 재소자는 마당으로 나와 손과 얼굴을 씻고 빵 배급을 받는다.

뒤이어 즉시 작업장별로 정렬하여 일을 하러 나가야 하는 데,여름에는 6시,겨울에는 7시에 시작해야 한다.

제21조 식사.

10시에 재소자는 노동을 중단하고 마당에서 손을 씻고 반별로 정렬하여 식당으로 간다.

식사 후 10시40분까지를 휴식 시간으로 한다.

제22조 학습.

10시40분에 북소리가 울리면 정렬하여 반별로 교실로 들어간다.

읽기,쓰기,그림 그리기,계산하기의 순서대로 한다.

- Michelle Foucault, Surveiller et Punir


(다) 섬에 도착하고 10일쯤 지났을 때,필기 도구를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의 경과를 알 수 없어서 노동일과 안식일의 구별조차 못하게 되지 않나 하는 걱정이 생겼다.

그래서 이런 일을 방지하려고 커다란 나무 기둥에 주머니칼로 크게 "나는 1659년 9월30일 이곳에 상륙했다"고 새기고,그 나무 기둥으로 커다란 십자가를 만들어 첫발을 디딘 해변에 세웠다.

이 나무 기둥의 옆면에다 매일 V자형의 눈금을 새기고 7일째 되는 눈금에는 나날의 눈금보다 두 배로 길게,달의 처음 눈금은 다시 주의 눈금보다 두 배로 길게 새겨 두었다.

이런 식으로 달력,즉 시간의 흐름을 요일,달,해에 맞추어 기록했던 것이다.(중략)

나는 이제 겨우 내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내가 빠져 있는 이 현실에 대하여 좀 더 진지하게 생각을 해 보았다.

우선 지금 상황을 정리하여 펜으로 적어 보았다.

그것은 뒤를 따르는 자를 위한다기보다는-나의 후속자 같은 것이 있을 것 같지도 않았고-오히려 이것저것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들로 인해서 괴롭기 짝이 없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래 볼까 해서였다.

이성이 차차 우울을 눌러 주었기 때문에 될 수 있는 한 나 스스로 위안토록 노력하고,자신의 상황을 더 나쁜 상황과 구별하는 하나의 기준으로 삼고자 나를 둘러싸고 있는 현상을 길과 흉의 두 가지로 나누어 대비해 보았다.

나는 그것을 극히 냉정하게,그리고 회계장부에 있는 대차대조표처럼 내가 기쁘게 받아들이는 행운과 내가 당하고 있는 불행을 대조하는 식으로 써 본 것이다.(중략)

다음에는 내가 꼭 있어야 되겠다고 생각한 필수품,특히 테이블과 의자를 만드는 작업에 들어갔다.(중략)

그래서 일을 시작했던 것인데 여기서 나는 다음과 같은 일도 말해 두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즉 이성이라는 것이 수학의 본질이요 원형이므로,모든 일을 이성적으로 정리하고 조정하고 판단한다면 아무리 어렵고 복잡한 일이라도 끝내는 완수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지금까지 공작 기구를 손에 쥐어 본 일이 없었지만 그래도 세월이 흐르는 동안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일에 열중하며 연구에 거듭한 결과,마침내 나 자신에게 필요한 물건이라면 무엇이든지 만들어 내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그것도 연장도 없이 때로는 손도끼만으로 오늘날까지 그 누구의 손에 의해서도 만들어진 일이 없을 것 같은 물건들을 수없이,그리고 굉장한 노력을 기울여 만들어 냈다.

- Daniel Defoe, Robinson Crusoe

-------------------------------------------------------------------------

이 논제는 연세대 자연계에서 출제되었던 문제의 핵심적인 부분만 간추린 것이다.

논제가 요구하는 대로 (1)각 제시문에 나타난 공통적인 사고방식을 찾아내 정리하는 동시에 (2)그것이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미친 영향과 한계를 논의해야 한다.

데카르트는 (가)에서 낙관적인 이성관을 보여주는데,확실한 방법론에 따르면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믿음은 이성에 대한 신뢰이다.

프랑스 철학자 푸코의 '감시와 처벌'에서 발췌한 (나)에서는 이성에 대한 신뢰가 인간에 대한 이해에까지 확대돼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사회의 '불량품'들을 개조,교화하기 위해 그들을 '규칙적으로''근면하게' 생활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인간을 기계로 파악하는 것이며 '합리적인 기계'로 살아가는 인간이야말로 정상적인 인간이라고 보는 근대적 인간관이기도 하다.

(나)의 이러한 사고방식은 대니얼 디포의 유명한 소설 '로빈슨 크루소'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인간이 자신의 삶을 영위하고 평가하는 방식에까지 확장된다.

(다)에서 로빈슨 크루소는 외딴 섬에 유럽식 생활방식을 그대로 옮겨오려고 마음먹는다.

그는 이성을 사용해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영위할 수 있다는 믿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사고 방식은 '규칙'을 존중하고 정리하는 사고방식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규칙을 존중하는 사고방식'을 좀 더 파고들어가자면,그것은 '이성의 규칙'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이 글 모두에는 수학적으로 계산될 수 있는 합리성에 대한 믿음이 표현되어 있다.

조금만 더 멋지게 마무리짓자면 계산적인 합리성이야말로 근대적 정신의 핵심적인 부분이라고,데카르트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사고방식이라고 말하면 된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근대 기술 문명,자본주의 문명의 기초를 이루었고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제는 근대적 합리성의 허점을 냉정하게 짚어볼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인간의 삶은 보다 풍부한 합리성과 불합리한 부분을 담고 있고,계산적 합리성은 그 작은 일부일 뿐이다.

작은 것으로 큰 것을 재단하려고 하면 문제가 발생한다.

푸코의 글이 보여주듯이 근대적 합리성은 사회 전반을 하나의 거대한 공장,병영,교도소로 만들어버린다 (시키는 대로,규칙대로 움직여라!).

그래서 이 근대적 사회는 스트레스를,더 나아가 폭력적인 일탈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인간은 몇 개의 합리적인 규칙으로 움직여지는 기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근대적 사고방식은 종종 이 점을 간과한 근본적인 한계점을 보여왔다.

우리는 합리성의 지평을 다시 넓힘으로써 근대의 공과를 뛰어넘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김원기 초암논술아카데미 선임연구원 closely@naver.com

[ 약력 ]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서울대 철학과 석사

△(현)초암논술아카데미 논술.구술 강사

△<대중문화 속 과학읽기> <포스트모더니즘과 유대인 대학살의 부인> 등 다수 교양서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