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떠돌이 생활을 해왔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귀국했다.
1999년 10월 중국의 대우자동차 공장 준공식에 참석하기 위해 해외로 나간 지 5년8개월 만이다.
그의 귀국에 맞춰 대우그룹과 김 회장에 대한 재평가 문제도 거론되고 있다.
'잘못도 있지만 공(功)도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과 '방만한 기업 경영으로 국가 경제에 피해를 준 범법자인 만큼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양측의 의견차는 김 회장과 대우가 우리 경제에 미쳤던 영향만큼이나 크다.
사실 김 회장은 한때 '샐러리맨의 우상'으로 불렸던 인물이다.
평범한 회사원이던 그는 1967년 대우실업을 창업한 뒤 30년 만에 재계 2위의 그룹으로 키워냈다.
그는 '세계 경영'을 통해 396개 해외 법인을 설립,전세계에 대우와 한국의 이미지를 심었다.
하지만 김 회장은 '실패한 경영인'이기도 하다.
그가 회장직을 맡았던 대우그룹은 99년 무려 60조원이 넘는 엄청난 부채를 해소하지 못해 결국 해체됐다.
김 회장이 해외에 나가 있는 동안 법원은 전직 대우 경영인들에게 부실 경영의 책임을 물어 수십조원을 추징하고 또 실형을 선고했다.
현재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김 회장 역시 사법 처리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김 회장의 잘한 점은 무엇이고 잘못한 점은 또 무엇일까.
김 회장의 공(功)을 말할 때 가장 먼저 드는 것이 '세계 경영'이다.
비록 결과는 좋지 않았으나 김 회장의 진취적인 기업가 정신과 열정적인 활동이 우리 경제가 세계화하는 데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실제 김 회장은 의류 수출업체를 시작으로 조선 자동차 기계 등 다양한 업종에 걸쳐 세계를 무대로 경영활동을 펼쳤다.
93년 '세계 경영'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이후에는 전세계에 대우 법인을 설립해 수출 강국의 위상을 높였다.
김 회장이 당시 국제 사회에서 얻은 별명은 칭기즈칸에 빗댄 별명인 '김기즈칸'이었다.
끊임없이 새로운 사업을 찾아 나서는 모습이 칭기즈칸과 닮았다는 점에서 붙여진 별명이다.
김 회장의 국제 감각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1998년 당시 대우의 해외법인은 모두 396개.김 회장은 국내 다른 기업들이 가지 않던 폴란드 루마니아 체코 등 사회주의권 국가에도 적극 진출했다.
그렇다면 김 회장의 과(過)는 어떤 게 있을까.
우선 은행 빚에 의존해 무리하게 덩치를 키우면서 그룹의 부실을 유발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지난 99년 대우그룹 해체 당시 대우의 부채는 60조원이었다.
대우는 20조원이 넘는 분식회계를 통해 은행으로부터 9조2000억원을 사기 대출받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대우 계열사들에 27조9000억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이중 10조원이상 회수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엄청난 돈이다. 대우의 '세계 경영'을 가리켜 '빚더미 경영'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국민 경제에 미친 후유증도 컸다.
대우 몰락으로 대우 주식에 투자했던 소액주주 30만명이 피해를 입었고 공적자금을 통해 국민에게 큰 손해를 입히기도 했다.
이태명 한국경제신문 산업부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