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크본드로 거액벌며 명예 누리다 내부거래 혐의 징역살이..'마이클 밀컨'

금융시장에서 가장 큰 시장은 주식시장이 아니라 채권시장이다.우리나라에서도 하루평균 주식거래액이 4∼5조원이지만 채권시장 거래액은 15조원이다.현재 발행돼 유통되고 있는 채권액이 753조원에 달할 만큼 시장규모가 크다.


미국도 마찬가지다.미국의 채권시장 규모는 주식시장을 훨씬 능가한다.단지 채권시장의 참여자가 개인이 아닌 금융기관 등 기관투자가들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의 주목을 덜 받고 있을 뿐이다



채권시장에서 역사상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인물이 '정크본드(Junk Bond)의 제왕'으로 불리는 마이클 밀컨(Michael Milken)이다.


워런 버핏이 주식투자만으로 빌 게이츠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적인 부호가 됐고,조지 소로스가 헤지펀드를 이용한 환투자 등으로 부를 축적했다면 밀컨은 채권,특히 신용등급이 낮은 정크본드 시장에서 거액을 벌어들였다.


자금을 조달하려는 기업들은 회사채를 발행한다.


기업의 신용등급에 따라 회사채 이자율이 결정되는데 기업의 신용등급은 무디스나 S&P,피치 등 신용평가회사들이 맡는다.


회사채를 발행하려는 기업의 재무구조가 안정돼 있고 수익성도 높다면,예컨대 최고등급인 AAA 판정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AAA등급을 받으면 채권이자율이 매우 낮은 수준에서 결정되기 때문에 회사채 발행비용이 줄어들게 된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이자율이 낮기 때문에 수익도 적다.


반면 기업의 재무구조가 나쁘고 기업이익도 제대로 내지 못한다면 회사채 이자율이 높아지게 된다.


극단적으로 말해 회사가 부도 직전상태에 처해 있다면 아무리 높은 이자를 주더라도 채권을 발행하기가 어렵게 된다.


대우그룹이 바로 그렇게 망하게 되었다.


정크본드란 투자자들이 매입하기에는 위험성이 높은 채권을 말한다.


통상적으로 신용평가회사들이 'BBB 미만'으로 판정하는 채권(투자 부적격 채권)을 말하는데,발행기업의 신용등급이 낮은 만큼 이자율은 높아지게 된다.


만일 이 기업이 부도를 내지 않고 이자를 지급한다면 투자자는 큰 이익을 보게 된다.


그러나 부도가 나면 투자한 돈을 모두 날린다.


밀컨은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정크본드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꿰뚫어봤다.


그리고 이 시장에서 엄청난 돈을 벌었다.


1946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난 밀컨은 UC버클리대학을 나오고 와튼경영대학원(MBA)을 최우등 성적으로 졸업한 수재형 인물이었다.


그는 학교를 졸업한 뒤 드렉셀 번햄 렘버트(Drexel Burnham Lambert)라는 증권사에 취업했다.


그가 월스트리트에서 중요한 인물로 떠오른 것은 이 증권사에서 채권부장을 맡아 정크본드에 주목하면서부터였다.


그는 정크본드로 분류된 기업 회사채 중에서 부도위험이 적고 성장성이 큰 회사채가 많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리고 신용평가회사들이 '투자적격'(BBB 이상)으로 판정한 기업 중에서 오히려 부도를 내는 기업이 많은 것도 발견했다.


그는 정크본드로 분류된 채권 가격은 더 이상 내려갈 수 없으므로 투자위험이 오히려 적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들 채권을 '추락한 천사'(Fallen Angel)라고 불렀다.


천사들에게 투자해두면 언젠가는 상황이 변해 가격이 오르고 큰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밀컨은 펀드매니저들을 설득해 정크본드에 투자하도록 권유했다.


밀컨은 무디스나 S&P 같은 신용평가회사들이 기업의 과거를 볼 뿐이며,자신은 기업의 미래를 보고 평가한다고 큰소리를 쳤다.


그의 말을 믿고 투자한 투자자들은 높은 수익을 얻었다.


그리고 밀컨은 순식간에 월스트리트의 유명인사가 됐다.


많은 투자자들이 그가 추천하는 정크본드를 사려고 몰려들었다.


밀컨은 자금수요가 많은 벤처기업들과 투자자들을 연결해 주고 엄청난 돈을 챙겼다.


1987년 그의 연봉은 5억5000만달러(약 550억원)에 달했다.


밀컨은 미국 정크본드 시장의 40%를 주물렀다.


그러나 밀컨의 전성기는 거기까지였다.


1987년 10월19일부터 1주일 만에 주식시장이 22%나 폭락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른바 '블랙먼데이'의 시작이었다.


이로 인해 밀컨의 정크본드에 투자했던 저축대부조합들이 대거 부실화됐고,투자자들은 돈을 회수하지 못하는 금융사고가 났다.


('저축대부조합'은 우리나라의 상호저축은행과 비슷.)


검찰은 드렉셀 등 정크본드 관련 증권사들을 조사했다.


그 결과 밀컨이 엄청난 부를 쌓는 과정에서 내부자거래를 했다는 혐의가 드러났다.


검찰에 따르면 밀컨은 월스트리트의 기업사냥꾼으로 유명한 이반 보스키에게 기업 내부 정보를 제공하고 수익을 나눠 가졌다.


보스키는 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 '월스트리트'에서 주인공 마이클 더글러스가 열연했던 고든 게코의 실제 모델이었다.


밀컨은 1988년 11월 증권법 위반과 증권사기,내부자거래 등 98개 죄목으로 구속됐다.


보스키는 벌금 1억달러를 내고 집행유예로 석방됐으나 밀컨에게는 징역 10년에 6억달러의 벌금형이 내려졌다.


6억달러의 벌금은 미국 역사상 개인이 낸 벌금 중 최대 금액이었다.


밀컨이 구속된 후 미국 정크본드 시장은 완전히 붕괴됐다.


3000여개에 달했던 정크본드 발행사는 40여개로 줄었다.


정크본드의 상징이었던 드렉셀 증권사도 6억5000만달러의 벌금형을 받자 법원에 파산신청했다.


밀컨은 22개월 동안 수감생활을 한 뒤 1993년 초 가석방됐으나 미국 증권시장에서는 완전히 추방됐다.


그는 출소 후 공익시설에서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기업임원들을 대상으로 증권특강을 하기도 했다.


1995년에는 장거리통신업체에 지분출자를 했다가 이 회사가 인수합병되면서 5000만달러의 거액을 벌어들여 논란을 빚기도 했다.


김태완 한국경제신문 증권부 기자 tw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