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2005년 6월14일자 A7면

한국경제는 잠재성장률이 정부가 주장하는 5%대가 아니라 4%대로 떨어졌고,성장잠재력은 이미 3%대로 하락한 상황이어서 섣불리 단기 부양책을 썼다가는 효과보다 부작용이 더 커진다는 분석이 나왔다.

최공필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13일 '성장잠재력 저하의 의미와 시사점'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성장잠재력이 3%대로 약해진 저성장 국면에서 거시정책 수단에 의한 단기 부양책은 상당한 부작용을 수반한다"고 경고했다.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제기된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이 적절치 않다는 평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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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한마디로 우리나라 경제의 체력이 워낙 많이 떨어져 경기를 살리기 위해 부양책을 쓰더라도 경기가 살아나기는커녕 오히려 물가 상승과 같은 부작용만 더 키울 우려가 있다는 내용이다. 예컨대 몸이 아파 소화능력이 많이 떨어진 사람에게 빨리 기운을 차리라고 좋은 음식을 잔뜩 먹인다면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당연히 체하거나 소화불량에 걸려 배탈이 날 것이다. 지금 우리 경제가 이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는 얘기다.

우리 경제의 체력이 약해졌다는 얘기는 오래 전부터 나온 문제다. 예시한 기사에서 잠재성장률이 4%대로 낮아졌다는 부분이 바로 그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잠재성장률이란 한 나라가 가지고 있는 토지 노동 자본 등 생산요소를 모두 활용했을 경우 달성할 수 있는 성장률 또는 추가 인플레를 유발하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 성장률을 말한다. 예를 들어 휴대폰을 생산하는 기업이 지금 있는 시설과 종업원으로 최대한 노력할 경우 작년 같은 때보다 10% 정도 더 많은 휴대폰을 생산할 수 있다면 이때의 잠재성장률은 10%로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다음 해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전년도에 비해 5% 정도밖에 더 생산할 수 없다고 가정하면 그 기업의 잠재성장률은 그만큼 낮아졌다고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일 것이다. 시설이 오래돼 성능이 예전만 못하거나 사람들이 더 게을러져 작업능률이 떨어졌을 수도 있다.

그렇게 기업이 생산해 낼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매출은 늘리고 싶어도 늘어나지 않을 것이고 종업원들의 수입도 올라가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먹여 살려야 할 식구들이 더욱 늘어난다면 어려운 지경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 경제가 그런 상황에 직면해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민간 기업들의 설비투자가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생산능력을 확충하지 못하고,인구구조가 고령화하면서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의 숫자도 줄어들고 있다. 그러니 생산해 낼 수 있는 물건의 양이 줄어들 것은 너무도 분명하다. 잠재성장률이 계속 낮아지고 있는 것이다.

경기가 나빠,다시 말해 물건을 살 사람이 없으니까 많이 만들어 내지 않는 것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과는 다르다. 즉 성장잠재력이 부족하다 보면 경기가 회복돼 물건 살 사람이 많아져도 필요한 만큼 공급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는가. 수요에 비해 공급이 모자라면 물건값이 오를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일. 결국 인플레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경기가 좋아지더라도 물건이 부족해 물가 상승이 일어나면 국민생활은 나아질 게 없다. 기회가 오더라도 그 기회를 살릴 수 없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정부가 경기부양책을 쓴다는 것은 시중에 돈이 많아지도록 금리를 낮추거나 아니면 정부 자금으로 여러 가지 사업을 벌여 민간에서 물건을 사들이고 인건비를 방출한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공급을 늘린다기보다는 수요를 부추기는 것이다. 그래서 성장잠재력이 낮은 상태에서 성급한 경기부양책을 쓰면 부작용만 키울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을 하고 있는 것이 위에 예시한 기사내용이다.

잠재성장률 저하의 문제는 비단 물가 앙등에만 국한하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높은 성장을 이뤄내야 고용이 늘고 국민소득도 증가하는데 원천적으로 높은 성장을 달성할 수 없을 만큼 체력이 약해져 있다면 그 경제는 활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이계민 한국경제신문 주필 lee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