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는 미국과 같은 합중국(United States)을 만들기 위해 헌법을 제정하려 하고 있다.

회원국 만장일치로 헌법이 발효되면 회원국은 미국의 캘리포니아주 뉴욕주처럼 하나의 주(州) 단위로 바뀐다.

회원국이 번갈아가며 의장을 맡는 현행 제도를 바꿔 EU를 대표하는 대통령과 외무장관을 신설하는 게 헌법 제정안의 핵심이다.

하지만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헌법비준 부결로 유럽 합중국(United States of Europe)의 꿈은 깨지기 일보직전이다.

○일자리 감소 우려

프랑스와 네덜란드 유권자들이 EU헌법을 부결시킨 것은 명분보다 실리 때문이다.

지난해 동유럽 국가들이 회원국으로 가입하면서 프랑스 사람들 사이에는 일자리를 빼앗기고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프랑스의 실업률이 10%를 넘어선 것을 저임금의 동유럽 근로자들이 대거 몰려왔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이와 함께 서유럽 기업들은 인건비가 싼 동유럽에 공장을 건설하는 등 투자를 늘리고 있다. 이런 사정 때문에 프랑스와 네덜란드 유권자들은 유럽 통합의 명분보다는 일자리를 지키겠다는 실리를 선택하기 위해 EU헌법을 국민투표에서 부결시켰다고 볼 수 있다.

○이슬람교에 부정적인 정서

오는 10월부터 EU 회원국으로 가입하기 위한 협의를 시작하는 터키는 이슬람 국가다.

이슬람과 오랜 대결의 역사를 갖고 있는 유럽인들로서는 터키를 회원국으로 받아들이는 데 주저하고 있다.

네덜란드는 터키의 EU 가입에 처음부터 반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이슬람 여성을 학대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굴종'을 제작한 테오 반 고흐 감독이 이슬람 교도를 모독했다는 이유로 암스테르담 근교에서 이슬람 극렬주의자에 의해 살해된 뒤 터키 가입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후 네덜란드에서는 이슬람 사원과 교회에서 방화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는 등 이슬람 교도들과 네덜란드 극우주의자들 사이에 긴장이 고조됐다.)

프랑스에서도 일부 이슬람 교도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등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실험의 한계 노출?

미국은 처음부터 합중국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유럽은 각국마다 독특한 문화와 제도 이념을 수백 년 이상 지속해오다가 새로운 제도를 신설,합중국으로 태어나려는 것이기 때문에 미국과는 출발점이 다르다.

영국 덴마크 노르웨이 등은 EU 회원국이면서 아직도 유로화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유럽 통합은 사상 초유의 실험을 통해 거대 국가를 만들려는 것이다. 그러나 실험의 한계가 하나둘씩 노출되면서 통합에 부정적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김호영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hy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