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7월22일 야당인 A당에서 갑자기 임시국회 소집을 요구했다.

소집 이유는 조속한 국회 정상화였지만 실질적으로는 당시 비자금사건으로 구속 위기에 처했던 자당 의원 이모씨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는 지적이 많았다.

원내총무 B씨는 "국회가 열리지 않는 동안 우리 당 의원들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방탄조끼를 입을 필요가 있다"라고 말해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방탄조끼' 발언은 시간이 가면서 언론에 의해 '방탄국회'로 탈바꿈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방탄조끼'라는 말이 그대로 인용됐으나 대략 한 달이 지나면서 '방탄국회'로 은유화해 지면에 등장했다.

방탄조끼론이 방탄국회라는 말을 만들어낸 모태인 셈이다.

방탄국회란 소속 의원이 불법행위 등으로 구속될 위기에 처했을 때 이를 막기 위해 일부러 임시국회를 소집하는 것을 빗댄 말이다.

국회의원에게 주어진 '회기 중 불체포 특권'을 적절히 활용(?)하는 국회 행태를 신문이 풍자해 만든 조어다.

'방탄'이란 말 그대로 '탄알을 막는 것'이다.

방탄조끼 외에 방탄복 방탄유리 방탄차 등으로 쓰이는 말이다.

이들은 원래 있던 말이다.

이와 함께 신문의 정치 기사에서 가끔 등장하는 말에 '식물국회'도 있다.

국회의 무기력함을 빗댄 용어다.

이 역시 이왕에 있는 말 '식물인간'을 연상케 하는 풍자어로 신문이 잘 쓰는 은유 표현 가운데 하나다.

방탄국회는 특히 세풍사건(1997년 15대 대선에서 당시 여당 후보를 돕기 위해 국세청을 동원해 기업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사건)과 맞물리면서 99년 들어 대유행하게 됐다.

이후 거의 매년 신문 지면을 타 대중화되더니 지난해 6월 출발한 17대 국회마저 초장에 '방탄국회'의 오점을 남겼다.

하지만 이 말은 아직까진 그 쓰임새가 일상적인 빈도를 보인다고 할 수는 없는 것 같다.

또 다양한 연령층에서 고루 쓰인다고 보기에도 무리가 있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방탄국회라는 말은 태어난 지 7년 가까이 지났지만 아직 사전에 오르지는 않았다.

어떤 새로운 말이 사전에 오른다는 것은 정식으로 단어가 된다는 뜻이다.

사전에 오르기까지에는 오랜 기간 광범위한 지역과 계층에서 꾸준히 사용되고 있음이 검증돼야 한다.

가령 공주병,재테크,사납금,찜하다,알콩달콩,왕따,짝퉁,얼짱,맞짱,대포차,몰빵,고삐리 따위가 그런 것들이다.

이들 중 일부는 표준국어대사전(국립국어원,1999년)에서,일부는 훈민정음국어사전(금성출판사,2004년) 등에서 표제어(올림말)로 다루고 있다.

어쨌거나 '방탄국회'는 아무리 시간이 가도 사전에 오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언젠가 사전에 오른다면 그것은 우리 사회가 여전히 정치적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재삼 확인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교열부 부장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