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호 기자의 '말짱 글짱'] '사랑이 뭐길래'가 '뭐기에'

"지하철 승강장에는 어딜 가나 노란 안전선이 쳐져 있죠.지금은 고쳐졌지만 전에는 지하철이 들어올 때 '안전선 밖으로 물러나 주십시오'라고 안내방송을 했습니다.


전철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안전선 '밖'으로 나가라니,말이 됩니까?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런 방송이 나온 사연이 있더군요."


그 사연이란 무엇일까.


"이 방송을 역 사무실에서 하는 게 아니라 열차에서 하는 것이더군요.


그러다 보니 자연히 기다리는 사람은 '안전선 밖'이 된 것입니다.


이는 상대를 의식하지 않고 자기중심으로 말을 하는 우리의 잘못된 언어 습관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우리 국어정책을 이끌고 있는 국립국어원의 남기심 원장이 지난해 10월 한 인터뷰 자리에서 한 말이다.


남 원장은 국어학자 치곤 꽤 유연한 언어관을 갖고 있다.


그는 우리 어법을 정하는 사람 따로,쓰는 사람 따로 식의 일방적 어문정책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그래서 이른바 "대중 속으로!"라는 모토 아래 실용국어 중심으로 국어정책을 펴고 있다.


그 결과 그동안 방언 또는 잘못으로 규정해 온 '나래,내음,뜨락' 같은 말들이 표준어로 대접받게 됐다.


하지만 우리가 실생활에서 쓰는 말들을 들여다보면 아직도 표준어보다 더 흔하게 쓰이는,그래서 더 표준어 같은 비표준어들이 많이 있다.


'서울대가 뭐길래.' '줄기세포가 뭐길래.'


입말에서는 물론 신문에서도 가끔 볼 수 있는 표현이다.


하지만 '뭐길래'는 사실 바른말이 아니다.


이 말은 십수 년 전 큰 인기를 끌었던 TV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 이후 널리 퍼졌지만 아직 표준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럼 뭐가 맞을까?


원인이나 이유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뭐기에'라고 해야 바른 표현이다.


일상적인 대화에서는 '~길래'를 훨씬 더 많이 쓰지만 표준말은 '~기에' 하나뿐이다.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서 보이는 '뗄래야'는 '떼려야'로,'맞습니다, 맞구요' 할 때의 '맞구요'도 '맞고요'라고 해야 바른 말이다.


참고로 북한에서는 우리가 아직 인정하지 않는 이런 말투를 모두 허용하고 있다는 것도 알아두자.


북한에서는 표준어를 문화어라고 하는데 문화어에선 입말투 등 통속적으로 쓰는 말을 넓게 인정한다.


그러고 보면 이런 말들이 남과 북에서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너 자꾸 딴지 걸래?" 할 때의 '딴지'도 바른말이 아니다.


아마도 종아리의 도도록한 부분을 가리키는 '장딴지'를 연상해 쓰는 듯하지만 '딴죽'이 맞는 말이다.


'딴죽'이란 씨름에서 발로 상대방의 다리를 잡아당겨 넘어뜨리는 것.


내친 김에 다음 말들도 한번 생각해 보자.


몇 개나 맞힐까?


'궁시렁거리다,으시시하다,두리뭉실하다,남사스럽다,맨날,허접쓰레기.'


구어에서 흔히 쓰는 말들인데 각각 '구시렁거리다,으스스하다,두루뭉술하다,남우세스럽다,만날,허섭스레기'가 맞는 말이다.


신문에서는 이런 경우 비록 표준말은 아닐지라도 때로 입말투를 채택해 쓰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독자의 눈높이를 의식한 '일탈'일 뿐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다.


학교에서나 일반적인 경우의 글쓰기에서는 당연히 표준말을 사용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교열부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