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과 경제의 만남] (16) '15초의 미학' 광고와 신호발송
누구나 한번쯤은 마트 안 진열대 앞에서 서성거린 적이 있을 것이다. 무엇을 살지 고민하면서 말이다. 더 정확하게는 유사한 상품들 중에서 어떤 것을 구매할지 결정하는 순간을 말한다. 상품을 고르는 일은 삶을 좌우하는 일생일대의 중요한 선택은 아니다. 하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짬뽕과 짜장면 중 어느 것을 먹을지 선택하는 것만큼이나 고민되는 순간이 상품을 고를 때다. 사람들은 무슨 이유로 상품을 고를 때 고민에 빠지게 될까? 시장에는 기능과 효능이 비슷한 상품들이 무수히 많이 존재한다. 그 중에는 겉모습까지 흡사해 사용해보지 않고서는 차이를 구별하기 힘든 상품들도 많이 있다. 일례로 약국만 가도 비슷한 성분과 효능을 가진 의약품들이 수십 종에 이른다. 우유와 같은 식료품도 마찬가지로, 맛도 비슷하고 생김새도 대동소이하다 보니 고르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다. 전자 제품도 디자인만 조금 다를 뿐 기능 면에서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상품들이 부지기수다. 이렇다 보니 사람들은 어느 것이 자신의 선호에 맞는 상품인지 가늠하기 어렵고, 또 어느 것이 불량 상품인지 구분하기도 쉽지 않다. 이때 사람들의 선택의 고민을 어느 정도 해결해 주는 것이 있으니, 상품을 선전하는 ‘광고’가 바로 그것이다.

하루 수천개 광고 노출

광고란 기업이 상품 판매를 증가시키기 위해 상품의 정보를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행위를 말한다. TV 광고가 대표적이다. 현행법상 지상파 TV 프로그램은 방송 시의 10분의 1 이내에서 광고를 편성하도록 되어 있다. 광고 1편이 15초라고 가정하면 1시간짜리 프로그램의 경우 24편까지 광고를 내보낼 수 있는 것이다. 2012년 현재 우리나라의 1일 평균 TV 시청 시간이 3시간가량인 점을 고려하면 사람들은 하루 평균 70여 편에 이르는 광고를 TV를 통해 접하고 있는 셈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프로그램 방송 중에도 자막광고, 간접광고 등 다양한 형태의 광고가 전파를 통해 기업의 상품을 소비자에게 전달하고 있다. 이 중 프로그램 상에 특정 상품을 직접 노출시키는 간접광고가 최근 활성화되고 있는데, 그 시장 규모가 최근 4년간 900억원에 육박하고 있을 정도다. 이외에도 광고는 여러 매체를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기업의 상품을 홍보하고 있다. 운전하거나 일을 할 때는 라디오를 통해 광고를 접하게 되고, 길을 걸을 때는 전광판이나 옥외 간판이 보행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신문을 읽거나 잡지를 볼 때도 광고는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이동할 때도 마찬가지다. 최근에는 요즘의 추세를 반영하듯 온라인과 모바일을 이용한 광고가 새로운 광고 매체로 각광받고 있다. 이쯤 되면 광고를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세상이라고 해도 전혀 무리가 아닌 상황이다. 사람들이 하루에 수천개에 달하는 광고에 노출되고, 죽을 때까지 수백만 개의 광고를 접하게 된다고 한 어느 영국 작가의 말이 허언처럼 들리지 않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정보의 비대칭’ 해소

만약 광고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해 보자. 광고가 없다면 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상품들 중에서 진정 자신이 원하는 상품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잘못하면 원하는 상품을 발견할 때까지 몇 번이고 원치도 않은 상품을 구매하고 사용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럴 경우 금전적인 손해도 손해거니와 지불되는 기회비용 또한 막대해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닐 수 없다. 심한 경우 불량 제품을 사거나 적정가격보다 비싸게 값을 치르고 상품을 구매하는 ‘역선택’의 상황에 빠지게 될 수도 있다. 이런 현상은 생산자와 소비자가 가지고 있는 상품 정보의 양이 차이(비대칭)가 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물론 생산자가 상품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보유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경우 소비자는 효율적인 소비를 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소비자가 가진 정보가 제한적이다 보니 시장에 어떤 상품이 존재하고, 적정가격은 얼마이며, 어디에서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지 등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불량상품도 시장에서 거래되고, 역선택에 빠지는 소비자도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광고의 힘은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발휘된다. 광고를 통하면 상품의 존재와 가격에 대해 알 수 있고, 직접 써보지 않고도 기능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광고가 상품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광고조차도 광고로서의 기능은 충분히 나타낼 수 있다. 상품의 질에 자신이 없는 생산자는 광고를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억지로 돈(광고비)을 써가며 불량 상품을 홍보할 용감한 생산자도 없을 것이다. 경제학에서는 이러한 광고의 기능을 가리켜 ‘신호발송’이라고 한다.

카피라이터·프로듀서 등 다양

신호발송이란 정보를 가진 경제주체가 정보의 비대칭을 해소하기 위해 정보를 제공하는 행위를 말한다. 즉 광고는 판매 증진을 통해 생산자의 이윤을 증가시킬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상품에 대한 정보를 전달함으로써 정보의 비대칭을 해소하는 기능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광고와 관련된 직종에는 어떤 것들이 있고, 그 일을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과연 무엇일까? 기업(광고주)이 광고회사에 광고를 의뢰하면 광고회사는 광고주의 의견과 요구사항을 바탕으로 광고의 방향을 설정하고 광고 제작을 준비하게 된다. 이러한 일을 담당하는 사람을 광고기획자라 하는데, 광고기획자는 광고회사의 직원이자 광고주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광고회사와 광고주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수행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광고기획자에게는 리더로서의 자질과 함께 뛰어난 영업 능력이 요구된다. 또한 광고기획자는 시대의 흐름과 유행에 민감하고 소비자의 성향을 통찰하고 있어야 하며, 광고 제작을 전반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회계적인 측면에서도 이해가 높아야 한다. 광고기획자에 의해 광고 제작의 기본적인 방향이 설정되면, 다음 과정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게 넘어간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쉽게 말해 실질적인 광고물을 제작하는 사람을 말한다. 광고기획자가 구상한 광고의 방향을 어떻게 가시적으로 나타낼 것인지를 고민하고, 이를 실제로 구현하는 일을 수행하는 사람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것이다. 따라서 직명이 말해주듯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게 있어 최고의 덕목은 바로 창의성이라고 할 수 있다.

[직업과 경제의 만남] (16) '15초의 미학' 광고와 신호발송
한편 광고기획자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외에도 광고와 관련된 직종은 수없이 다양하다. 광고 문안과 광고 멘트를 작성하는 카피라이터도 대표적인 광고 관련 직종 중 하나다. 또한 광고의 시각적 요소를 책임지는 아트디렉터, 광고 영상물을 제작하는 프로듀서와 그 영상물에 출현하는 배우, 광고에 쓰일 사진을 촬영하는 사진작가와 모델, 그리고 제작된 광고물을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일련의 과정을 계획하고 관리하는 미디어 플래너 등 한 편의 광고물이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이처럼 수많은 사람들의 협업과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 용어 풀이

광고기획자/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광고기획자는 광고주의 의견과 요구사항을 바탕으로 광고의 방향을 설정하고 광고 제작의 전반적인 과정을 수립하고 관리하는 사람을 말한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광고기획자가 설정한 광고의 방향을 토대로 구체적인 광고물의 제작을 진행하고 관리하는 사람을 말한다.

신호발송(signaling)

상대적으로 정보가 풍부한 경제주체가 그렇지 않은 거래 상대방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행위를 말한다. 광고가 신호발송의 대표적인 예이며, 구직자들이 스펙을 쌓는 것도 신호발송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정원식 < KDI 전문연구원 kyonggi96@kdi.re.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