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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예/아니오' 말고 '예/아니요'로 답하세요

    기업인들이 국회에 불려가 진땀을 빼는 것은 미국도 비슷한 모양이다.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등 미국 거대 정보기술(IT)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얼마 전 미 의회 청문회에서 곤욕을 치렀다. SNS에서의 가짜뉴스 확산에 대해 집중추궁을 받으면서였다. 이 과정에서 의원들이 CEO들에게 “예, 아니오로 대답하라”며 일방적으로 호통을 쳤다는 것이다. ‘예’ 상대어는 ‘아니오’가 아니라 ‘아니요’일상에서도 퀴즈풀이 등 ‘예/아니오’ 답변을 요구받는 경우는 흔하다. 그런데 이런 데 쓰이는 ‘예/아니오’는 실은 틀린 말이다. ‘예/아니요’라고 해야 바르다. “다음 물음에 ‘예/아니요’로 답하시오”와 같이 ‘예’에 상대되는 말은 ‘아니요’를 쓴다. 이때의 ‘예/아니요’는 각각 감탄사로 독립적인 단어다.우리말에서 ‘아니오’와 ‘아니요’는 서로 다른 말이다. 지난 호에서 살핀 ‘책요?/책이요?’의 관계와도 연관성이 있어 많이 헷갈리는 사례 중 하나다. ‘아니오’와 ‘아니요’는 어떤 상황에서 쓰일까? 다음과 같은 대화를 그려보자.“이게 당신 책이오?” “아니오.”(또는 “그건 내 책이 아니오.”) 이때의 ‘책이오/아니오’가 종결어미로 쓰인 ‘-오’다. 경어법으로는 ‘하오체(體)’다. 즉 ‘아니오’는 형용사 ‘아니다’의 활용형으로써, 어간 ‘아니-’에 하오할 자리에 쓰이는 종결어미 ‘-오’가 결합한 형태다. 하오체는 상대가 친구이거나 아랫사람일 때 격식을 갖춰 대접해 말하는 표현이다. 게다가 화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하늘길' '쓴소리'…北에서 다듬은 말이죠

    계절은 춘분(3월 20일)을 지나면서 봄기운이 더욱 완연해졌다. 온갖 꽃이 피어나 본격적으로 봄을 맞이하는 계절이다. 그것을 ‘봄맞이’ 또는 ‘봄마중’이라고 부른다. 예로부터 “들로 산으로 봄맞이(또는 봄마중) 가는 철이다”라고 했다. 그런데 ‘봄마중’에 대해서는 우리 국어사전들이 좀 인색한 듯하다. ‘봄마중’은 아직 사전에 오르지 못해‘애기종달새 푸른하늘 놉히떠서 노래부르네 욜로절로 하로종일 날러다니며 봄마중을 나가자고 노래부르네….’ 일제강점기 때인 1930년 5월 4일자에서 조선일보는 ‘종달새 노래’란 시로 이땅에 봄이 왔음을 알렸다. ‘봄마중’은 ‘봄맞이’와 함께 오랜 세월 우리 일상에서 쓰인 익숙한 단어다. 하지만 아쉽게도 사전에서는 이 말을 찾아볼 수 없다.50여만 단어를 수록해 가장 큰 규모라는 인터넷 《표준국어대사전》(국립국어원)에도 ‘봄마중’은 나오지 않는다. 정식 단어로 인정받기 전의 개방형 사전인 《우리말샘》에서는 이 말을 ‘봄맞이의 북한어’로 올렸다. 그런데 이 풀이는 실은 《표준국어대사전》이 처음 간행된 1999년판 종이사전에 실렸던 것이다. 2016년 《우리말샘》을 개통하면서 《표준국어대사전》에 있던 표제어 ‘봄마중’을 옮겼을 것이다. ‘봄마중’은 지금도 여전히 ‘북한말’이라는 굴레를 쓴 채 사전에 오르지도 못하고 홀대받는 셈이다.남산 케이블카는 언제 생겼을까? 1962년 5월 19일자 조선일보는 ‘장안을 한눈 아래’라는 제목으로 남산 케이블카 개통(5월 12일) 소식을 알렸다. “「은하수」 「무지개」라고 고운 이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갈매깃살'은 왜 '갈매기살'에 밀렸나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어진 원화 강세 흐름이 요즘은 오르락내리락 혼조세를 보이고 있다. 무역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원화 환율 움직임에 늘 촉각을 곤두세운다. 원화도 외환시장에서 사고파니 가격이 매겨진다. 그게 ‘원화값’이다. 이를 규범에 맞게 적으려면 ‘원홧값’이라고 해야 한다. 합성어(원화+값)이고, 뒷말이 된소리[원화깝]로 나므로 사이시옷을 넣을 음운론적 조건을 갖췄다. 그런데 이 표기는 낯설다. [갈매기쌀]이 아니라 [갈매기살]로 발음해사이시옷은 합성어에서 두 말이 결합할 때 발음상의 충돌을 보완하기 위한 장치이다. 우리말 적기의 양대 기둥인 소리적기와 형태적기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게 불가능하다 보니 나온 현상이다. 가령 ‘원화+값’의 결합에서 소리 나는 대로 적자니 말의 원형이 사라지고(원화깝), 그렇다고 ‘원화값’으로 형태를 살리자니 실제 발음을 반영하지 못하는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대안으로 나온 게 사이시옷을 받쳐 적기로 한 것이다. 이는 사잇소리 현상의 원인이 옛 관형격 조사 ‘ㅅ’의 흔적이라는 점에 착안해 빌려온 방식이다.합성어에서 나는 사잇소리 현상을 표기에 반영한 것은 꽤 오래됐다. 조선어학회(한글학회 전신)에서 1933년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발표할 때부터 규범으로 정해졌다. 하지만 맞춤법에서 사이시옷은 여전히 아킬레스건이다. 시각적으로 자칫 거부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쓰는 사람에 따라 표기가 들쭉날쭉이다. ‘원화값’ 역시 규범에 맞게 ‘원홧값’으로 적으면 대부분 불편해한다. ‘공부벌레’라고 쓰고 싶지만 사전은 ‘공붓벌레&rs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전세(傳貰)'와 '전세(專貰)'

    도무지 멈출 줄을 모르는 ‘전셋값’ 오름세는 서민의 삶을 힘들게 하지만, 우리네 말글살이에도 곤혹스러움을 안겨준다. ‘값’은 본래 물건을 사고팔 때 치르는 대가를 말한다. 1957년 완간된 <조선말 큰사전>(한글학회) 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지금은 ‘값’의 용법이 10여 가지는 된다. 의미가 더해지면서 말의 쓰임새가 확대됐다는 뜻이다. 전셋값과 전셋돈은 달라…구별해 써야‘전세(傳貰)’의 ‘세’는 ‘세낼 세(貰)’ 자다. ‘세내다’란 빌리다, 즉 일정한 삯을 내고 남의 소유물을 빌려 쓴다는 뜻이다. 이 임차제도는 특이하게도 기한이 만료되면 보증금을 돌려준다. 그 앞에 ‘전할 전(傳)’ 자가 쓰였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계약기간 동안 ‘일정한 삯’을 주인한테 ‘전하는 또는 맡기는’ 것이다. 그 돈을 전세금 또는 전셋돈이라고 한다. 민법상 용어도 ‘전세금’이다. “전세금(전셋돈)을 내야 하는데, 아직 마련하지 못했다”라고 한다. 이를 “전셋값을 내야 하는데~” 또는 “전셋값을 아직 마련하지 못했다” 식으로 말하면 어색하다. 전셋돈과 전셋값의 용법 차이가 드러난다.이 ‘전세’가 지금과 같이 자리 잡기까지에는 다소 우여곡절이 있었다. 한글학회에서 1957년 펴낸 <조선말 큰사전>에는 ‘전세’가 傳貰로 나온다. 그런데 1986년 나온 <새우리말사전>에는 專貰로 올랐다. 이어 1992년 발간한 <우리말 큰사전>에는 ‘전세’ 표제어에 傳貰와 專貰를 함께 처리했다. 말의 유래와 용법에 혼란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전세(專貰)’는 ‘전세(傳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이차[함수] 혹은 이차[함쑤]

    우리말 역사에서 1933년은 꼭 기억해야 할 해이다. 그해 10월 29일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 나오면서 비로소 우리말 정서법의 토대가 마련됐다. 당시 통일안을 발표할 때 외래어 표기법과 띄어쓰기는 본문에 함께 다뤄졌다. 표준어와 문장부호는 따로 부록으로 실렸다. 그뒤 1936년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이 나오면서 표준어는 독립 규범으로 떨어져 나왔다. [함쑤]가 예전 표준발음…이젠 [함수]도 허용문장부호는 지금도 한글맞춤법의 부록으로 실려 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표준발음은 존재하지 않았다. 표준발음법이 따로 독립 규범으로 자리잡은 것은 그로부터 50년도 더 흐른 1988년 와서다. 이렇게 오랜 세월이 걸렸다는 것은 발음의 기준을 세운다는 게 그만큼 힘든 일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표기에 비해 발음은 훨씬 더 각양각색이고 불분명하기 때문이다.가)“사람은 제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한다.” 나)“아는 문제였는데 마지막 ‘분수’ 계산에서 분모와 분자를 헷갈려서 틀렸다.” 두 문장에 쓰인 ‘분수’는 한글 형태도 같고, 한자도 ‘分數’로 똑같다. 하지만 의미는 서로 다르다는 것을 누구나 직관적으로 안다. 가)에선 ‘자기 신분에 맞는 한도’란 뜻이다. 나)는 수학에서 ‘몇 분의 몇’ 할 때의 그 분수다. 우리는 그 차이를 문맥을 통해 자연스럽게 구별할 수 있다.그런데 구별하는 수단이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발음’에 의한 것이다. 가)의 분수는 예사소리로 [분ː수], 즉 ‘분~수’라고 길게 읽는다. 나)의 분수는 [분쑤], 즉 짧게 된소리로 읽는 말이다. ‘분수를 지키다’라고 할 때의 ‘분수[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책요? 책이요?…변신 꾀하는 보조사 '-요'

    지난 9일은 574돌 한글날이었다. 이날은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해 반포한 1446년을 기점으로 삼아 제정됐다. 한글이 탄생한 지 500년이 훨씬 넘었으나 우리 정서법 체계가 제대로 자리잡은 것은 100년이 채 안 된다. 일제강점기 때인 1933년 조선어학회(한글학회의 전신)에서 ‘한글마춤법 통일안’을 내놓은 게 밑거름이 됐다. 종결형으로 쓰인 ‘책이요’는 규범에서 벗어나그 사이 우리 맞춤법은 많이 변했다. 그중 하나로 요즘도 늘 헷갈리는 게 어미 ‘-이요’와 ‘-이오’, 그리고 보조사 ‘-요’ 용법의 구별이다.1933년 한글마춤법 통일안에서는 이를 어떻게 제시했을까? <‘이요’는 접속형이나 종지형이나 전부 ‘이요’로 한다.>고 했다. 가령 “이것은 붓이요, 저것은 먹이요, 또 저것은 소요.”처럼 썼다. 현행 한글맞춤법에서는 다르다. 제15항 어간과 어미를 적는 방식에 관한 얘기다. <종결형에서 사용되는 어미 ‘-오’는 ‘요’로 소리 나는 경우가 있더라도 그 원형을 밝혀 ‘오’로 적는다.>고 했다. “이것은 책이오./이리로 오시오.”(책이요×/오시요×)가 현행 규범이다. 또 <연결형에서 사용되는 ‘이요’는 ‘이요’로 적는다.>고 했다. 이에 따라 “이것은 책이요, 저것은 붓이요, 또 저것은 먹이오.”처럼 구별해 써야 한다. 정리하면 ‘-이요’는 연결어미로만, ‘-이오’는 종결어미로만 쓸 수 있게 했다. 이들은 모두 [이요]로 소리 나지만 각각의 쓰임새에 따라 구별해 적도록 한 것이다. 현실언어에서는 쓰임새 활발…규범화 진행 중2019년 5월 국립국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라면'의 변신은 무죄?

    “지금껏 환자를 조기 발견하고 격리하는 방식의 방역 전략을 ‘취했다면’ 이제는 재택근무 등으로 사람 간 거리를 넓혀 코로나19의 확산 속도를 늦춰야 한다.”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하기 시작한 지난 2월 말. 감염병 전문가들 사이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방안이 제시됐다. 우리의 관심은 여기에 쓰인 ‘취했다면’에 있다. 이 말이 보는 이에 따라 문장 안에서 자연스럽게, 또는 어색하게 느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본래 ‘가정적 조건’문에 쓰던 연결어미어미 용법 가운데 최근 들어 ‘-라면/-다면’은 전통적 쓰임새와 좀 다른 양상을 보여 주목할 만하다. 이들은 ‘어떤 사실을 가정해 조건으로 삼는 뜻을 나타내는’ 연결어미다. “내가 너라면 그런 일은 하지 않겠다.” “네가 그 꼴을 보았다면 아마 기절했을 것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보이는 이들의 전형적인 용례다.그런데 앞의 ‘취했다면’ 문장과 다음 사례는 이들과 좀 다르다. ①그동안 우리 경제가 성장에 중점을 둬 왔다면 이제는 분배에 신경을 써야 할 때다. ②유럽 축구가 힘을 바탕으로 한다면 남미 축구는 기교를 중시한다. ③20세기 제조업 혁신 모델이 포드자동차의 컨베이어 시스템이라면 서비스 혁신은 맥도날드가 시발점이었다.모국어 화자들이 느끼는 이 문장의 자연스러움은 어느 정도일까? 누군가 어색하게 느낀다면 그들은 전통적 어법에 익숙해 있는 사람들이다. 반면에 별 문제를 느끼지 않는다면 이들은 현실언어에 길들어 있는 사람들이다.‘-라면/-다면’ 용법의 핵심은 ‘가정적 조건’을 나타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덕률풍'에서 '스마트폰'까지

    코로나19 사태는 우리 사회의 많은 것을 바꾸고 있다. 우리말에도 이미 영향을 끼쳤다. 관련 외래어가 새로 선보이거나 다시 부각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언택트’도 그런 말 중의 하나다. ‘언택트 마케팅, 언택트 소비, 언택트 서비스, 언택트 쇼핑, 언택트 문화….’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쓰인다는 점에서 이 말은 생산성이 꽤 높다.‘텔레폰’을 음역해 ‘덕률풍’으로 불러‘비대면’ ‘비접촉’ 정도로 번역되는 이 말은 사실 코로나19 이전부터 쓰였다. 금융업 등에서 ‘비대면(非對面) 계좌 개설’, ‘비대면 서비스’ 식으로 많이 소개됐다. 그러던 게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말 ‘비대면’보다 ‘언택트’가 전면에 부각돼 더 활발하게 쓰인다는 점은 다소 역설적이다. 현실 언어에서 외래어에 밀리는 우리말을 지켜봐야 한다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어찌됐든 ‘언택트’의 부상은 우리 커뮤니케이션의 행태와 질서에 놀라운 변화를 가져올 전조임에 틀림없다. 소통의 측면에서 보면 ‘언택트의 원조’로 전화를 꼽을 만하다.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는 사람끼리 서로 얘기를 나눌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전화기가 우리나라에 처음 선보인 것은 1898년, 지금으로부터 122년 전이었다. 개화기 서양문물이 한창 밀려들어 오던 시절이었다. 당시 궁내부(宮內部) 주관으로 궁중에서 각 아문(衙門)과 연락을 취하기 위해 덕수궁에 전화 시설을 마련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텔레폰(telephone)’의 발음을 본떠 한자식으로 음역해 ‘덕률풍(德律風)’이라고 불렀다(정확히는 중국에서 ‘德律風’으로 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