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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지털 이코노미

    후발 페북의 급성장 비결은 '로컬네트워크의 공감효과'

    연결의 막강한 힘을 눈치챈 것은 마크 저커버그만이 아니었다. 벨 전화회사의 두 번째 CEO였던 시어도어 베일은 1908년 연말 결산 보고서에서 네트워크 연결의 경제적 힘을 소개했다. 보고서를 통해 그는 “전화선의 반대쪽 끝에 다른 전화기가 연결되지 않는다면 전화기는 과학도구나 심지어 장난감도 되지 못한다. 전화기의 가치는 연결과 그 연결의 증가에 있다”고 설명했다.베일의 설명은 디지털 경쟁과 플랫폼 전략에 영향을 미치는 ‘네트워크 효과’와 정확히 통한다. 네트워크 효과란 제품이나 시장의 가치는 이에 연결된 사람이 많을수록 올라간다는 것이다. 시난 아랄은 그의 책 《하이프 머신》을 통해 네트워크 효과를 중력에 비유한다. 한 네트워크에 모이는 사람의 수는 ‘질량’과 같고, 사람이 많아져 질량이 커지면 ‘중력’ 또한 커진다는 것이다. 중력이 커지면 새로운 고객을 끌어들이는 흡입력이 강해져 고객들이 현재 궤도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다. 직간접 측면으로 주로 정의되는 네트워크 효과에서 가장 알려지지 않은 부분은 ‘로컬 네트워크 효과’다. 이는 가치가 네트워크 내 연결의 지리적 인접성에 비례하는 현상을 의미한다.서울에 사는 새로운 사용자 한 명이 SNS에 가입한다면, 이로 인해 서울에 사는 사용자들의 서비스는 향상되지만, 창원에 사는 사용자들의 서비스 질에는 거의 영향을 주지 못한다. 로컬 네트워크 효과는 지리적 인접성 외에 사회적 인접성에도 영향을 받는다. 한 제품의 사용자들이 네트워크 내 다른 소수 사용자, 즉 자신과 ‘연결된’ 다른 사람들에게 직접 영향을 받을 때 그 제품은 로컬 네트워크 효과를

  • 디지털 이코노미

    트위터 사용자 급증한 게 오프라 윈프리 덕분이었다고?

    오프라 윈프리의 첫 번째 트윗은 자신의 토크쇼에서 이뤄졌다. 2009년 4월 17일, 윈프리는 수백만 시청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트위터에 첫 번째 트윗을 올렸다.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그달 말에 트위터는 사용자 수가 약 2800만 명으로 불어났다. 윈프리 스토리는 스타트업 성공에 인플루언서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믿음을 형성하기에 충분했다. 네트워크 주변부의 중요성하지만 윈프리가 트위터를 사용한 것은 트위터의 성공 원인이 아니라 트위터 성공의 결과였다. 윈프리가 첫 번째 트윗을 올릴 무렵 이미 트위터는 성장 곡선에서 가장 빠른 구간에 진입한 상황이었다. 2009년 1월부터 매달 기하급수적인 성장을 거듭하던 트위터는 사용자가 2월 800만 명에서 4월 초 약 2000만 명으로 치솟았다. 윈프리가 트위터를 사용한 것이 바로 이 무렵이다. 네트워크다이내믹스 그룹의 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데이먼 센톨라 교수는 그의 책 《변화는 어떻게 일어나는가》를 통해 “어떻게 윈프리의 힘을 빌려 트위터를 확산시켰느냐?”가 아니라 “윈프리마저 트위터를 사용해 이익을 얻을 만큼 트위터가 크게 성장한 비결은 무엇인가?”라고 질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답으로 작은 스타트업을 누구나 아는 기업으로 알리기 위해서는 연결이 많은 소셜 스타가 아니라 주변의 행위자들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한다.물리학자 라다 아다믹 역시 네크워크 효과의 핵심은 인플루언서가 아니라 주변의 행위자들이라고 강조한다. 2008년 그는 연구를 통해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어떤 행동을 하는 사람들의 전체 수보다 자신이 아는 사람 중에서 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의 비율에 영향을

  • 커버스토리

    넷플릭스의 남다른 '선구안'…K드라마 투자 대박

    9부작 TV 드라마 ‘오징어 게임’으로 초대박을 터뜨린 넷플릭스의 진면목을 들여다 보는 것은 좋은 공부거리입니다. 넷플릭스를 보면 세계 시장에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들이 얼마나 격렬하게 싸우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또 넷플릭스를 분석하면 세계가 얼마나 촘촘하게 연결돼 있는지, 그로부터 얻는 네트워크 효과가 얼마나 큰지, 글로벌 마케팅이 얼마나 일상화돼 있는지를 보게 됩니다. 우리의 시야를 넓혀준다는 뜻입니다.넷플릭스(Netflix)는 인터넷(net)과 영화(flicks)를 합쳤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영화를 인터넷으로 보내서 보게 하겠다는 사업목표가 브랜드에 명확하게 나타납니다. 넷플릭스의 시작은 보잘 것 없었습니다. 넷플릭스 창업자 리드 헤이스팅스는 원래 소프트웨어 개발자였습니다. 그가 1997년 넷플릭스를 설립한 것은 40달러에 달했던 비디오테이프 연체료 때문이었습니다. 집에서 먼 대리점, 반납의 불편함, 과도한 연체료에 불만이었던 그의 머리에 사업 아이디어가 번쩍 떠올랐습니다. 기업가를 말할 때 등장하는 야성적 기질(animal spirit), 그것이었죠. 훗날 리드 헤이스팅스가 가졌던 불만은 ‘세기의 분노’로 명명됐습니다.넷플릭스도 초기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당시 인터넷 속도는 빠르지 않았고 연결망도 전국적, 세계적이지 않았기 때문이죠. 당시 성업 중이던 비디오 대여 기업인 블록버스터의 자금력과 마케팅력도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블록버스터는 미국 전역에 9000개가 넘는 매장과 4000만 명이 넘는 회원을 둔 거대기업이었죠. 이런 기업을 상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리드 헤이스팅스는 2000년 블록버스터에 회사를 5000만달러에 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