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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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100년 넘게 쓴 섭씨·화씨…태생은 외래어죠
“텨......ㄹ썩, 텨......ㄹ썩, 텩, 쏴......아./나에게, 절하지, 아니한 자가,/지금까지, 없거던, 통기하고 나서 보아라,/진시황, 나팔륜, 너희들이냐,/누구누구누구냐 너희 역시 내게는 굽히도다,/나허구 겨룰 이 있건 오나라./텨......ㄹ썩, 텨......ㄹ썩, 텩, 튜르릉, 콱.”한국 최초의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의 일부다. 육당 최남선이 1908년 잡지 <소년> 창간호에 권두시로 발표했다. 신체시는 우리나라 신문학 운동 초기에 나타난 새로운 시 형식으로, 한국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확고하다. 영국·미국 등 국명도 음역어이자 약어일부 표기를 지금의 맞춤법에 따라 바꾸긴 했지만 100년도 더 된 시 치고는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다. 그런데 중간에 보이는 ‘나팔륜’은 좀 낯설다. 알 듯 말 듯한 이 말은 ‘나폴레옹’을 한자음으로 적은 것이다. 이른바 음역어다. 음역어란 한자음을 가지고 외래어의 음을 나타낸 말이다. 외래어표기법이 따로 없던 시절 쓰던 방식이다. 나폴레옹은 나파륜(拿破崙), 피타고라스는 피택고(皮宅高), 워싱턴은 화성돈(華盛頓) 식으로 적었다. 심지어 이들을 언론에서는 ‘나 씨’니 ‘피 선생’이니 ‘화 씨’니 하고 성(姓)처럼 불렀다.‘섭씨, 화씨’도 그렇게 생겨났다. 온도 단위로 우리 일상에 깊숙이 들어온 이 말은 외래 인명의 약칭에서 유래했다. 섭씨(攝氏)는 고안자인 스웨덴의 셀시우스(Celsius)의 중국 음역어 ‘섭이사(攝爾思)’에서 따왔다. 화씨(華氏) 역시 온도 단위를 생각해낸 독일 물리학자 파렌하이트(Fahrenheit)의 중국 음역어 ‘화륜해(華倫海)’를 토대로 만들었다. 마치 ‘김 씨,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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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코로나19와 전염병, 그리고 돌림병
세밑이다. 코로나19와의 싸움 속에 지새우던 한 해가 저물어간다. ‘올해의 말’은 누가 꼽아도 코로나19가 될 것 같다. 말글 관점에서 코로나19는 신조어이면서 약칭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2월 11일 이 전염병의 공식 명칭을 ‘Coronavirus disease-2019’로, 약칭을 ‘COVID-19’로 발표했다. 코로나19, 한·중·일 적는 방식 달라그것을 우리 정부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라 하고, 줄여서 ‘코로나19’로 부르도록 정했다. 같은 한자어권이면서도 중국과 일본은 좀 다른 방식으로 표기한다.중국에서는 ‘新型冠狀病毒肺炎(신형관상병독폐렴)’이라 부르고, 약칭을 ‘新冠肺炎(신관폐렴)’이라고 한다. ‘관상(冠狀)’은 왕관 모양으로 생겼다 해서 붙인 코로나의 의역(意譯)이다. ‘병독(病毒)’은 말 그대로 병을 일으키는 독기라는 뜻으로 바이러스를 의역한 것이다. 거기에다 이 질병이 폐렴의 변종임을 알 수 있게 ‘폐렴’을 붙였다. 뜻글자인 한자의 장점을 살려 이름을 지었다. 언론에서는 이를 더 줄여 ‘新冠疫(신관역)’으로 쓰기도 한다.일본에서는 ‘新型コロナウイルス’로 쓴다. 한자와 가타카나를 사용해 옮겼다. 발음은 [고로나우이루스]쯤 된다. 바이러스를 [우이루스]라고 부르는 것은 라틴어 어원인 virus의 발음에서 따온 듯하다. 일본어 자모체계는 단순해 실제 발음을 온전히 옮기는 게 불가능하다. 가령 맥도날드 햄버거는 [마쿠도나루도 한바가](マクドナルド ハンバガ) 정도로만 옮길 수 있다.중국 한자나 일본 가나에 비해 우리 한글은 웬만한 로마자는 실제 발음과 비슷하게 얼마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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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덕률풍'에서 '스마트폰'까지
코로나19 사태는 우리 사회의 많은 것을 바꾸고 있다. 우리말에도 이미 영향을 끼쳤다. 관련 외래어가 새로 선보이거나 다시 부각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언택트’도 그런 말 중의 하나다. ‘언택트 마케팅, 언택트 소비, 언택트 서비스, 언택트 쇼핑, 언택트 문화….’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쓰인다는 점에서 이 말은 생산성이 꽤 높다.‘텔레폰’을 음역해 ‘덕률풍’으로 불러‘비대면’ ‘비접촉’ 정도로 번역되는 이 말은 사실 코로나19 이전부터 쓰였다. 금융업 등에서 ‘비대면(非對面) 계좌 개설’, ‘비대면 서비스’ 식으로 많이 소개됐다. 그러던 게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말 ‘비대면’보다 ‘언택트’가 전면에 부각돼 더 활발하게 쓰인다는 점은 다소 역설적이다. 현실 언어에서 외래어에 밀리는 우리말을 지켜봐야 한다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어찌됐든 ‘언택트’의 부상은 우리 커뮤니케이션의 행태와 질서에 놀라운 변화를 가져올 전조임에 틀림없다. 소통의 측면에서 보면 ‘언택트의 원조’로 전화를 꼽을 만하다.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는 사람끼리 서로 얘기를 나눌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전화기가 우리나라에 처음 선보인 것은 1898년, 지금으로부터 122년 전이었다. 개화기 서양문물이 한창 밀려들어 오던 시절이었다. 당시 궁내부(宮內部) 주관으로 궁중에서 각 아문(衙門)과 연락을 취하기 위해 덕수궁에 전화 시설을 마련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텔레폰(telephone)’의 발음을 본떠 한자식으로 음역해 ‘덕률풍(德律風)’이라고 불렀다(정확히는 중국에서 ‘德律風’으로 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