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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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기타
"정치의 역할은 자유 확장"…진리 포기한 노예의 삶 경계
바뤼흐 스피노자(1632~1677)는 ‘철학자 중의 철학자’로 불린다. 게오르크 헤겔(1770~1831)은 “철학자가 되고자 한다면 우리는 단지 스피노자주의자가 될 수 있을 뿐”이라고 했다. 생전에 거의 주목받지 못한 그의 철학은 20세기 중후반부터 재평가돼 ‘스피노자의 귀환’이라는 말을 유행시켰다. 신과 자연, 정신과 자유, 지성과 국가 등에 대한 그의 생각은 니체와 프로이트 등에게 영감을 안기며 현대 철학과 사회 속으로 파고들었다. 포스트구조주의 철학의 대표로 손꼽히는 질 들뢰즈가 스피노자를 ‘철학자들의 예수’라고 부른 이유다.윤리학을 뜻하는 《에티카(Ehtica)》는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해야 자유인으로 살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답하는 책이다. 개인, 자유, 진리에 대한 각성이 분출되고 있는 요즘 한국에서도 ‘스피노자 읽기’가 확산되고 있다. “진리 포기하면 노예의 삶 못 벗어”네덜란드 유대인 상인 집안에서 태어난 스피노자의 삶은 힘겹고 파란만장했다. 어떤 구도자보다도 처절하고 비타협적으로 자유와 진리를 좇은 결과였다. 17세기 절대왕정 시대를 살아낸 스피노자는 공동체로부터 배척당했고, 그의 사상은 금기시되기까지 했다. 모든 학문과 철학이 권력의 이데올로기 역할을 수행한 시대에 개인과 자유를 철저하게 옹호했기 때문이다. “야훼는 없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아 유대사회로부터 스스로 고립되고 추방당하는 선택을 하기도 했다. 권력자들은 시대와의 불화에 개의치 않고 비판적 자유정신을 설파한 스피노자를 압박하고 핍박했다.스피노자의 대표 저작 《에티카》는 자유의 본성을 밝히고 자유에 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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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이야기
(29) 스피노자의 범신론
철학자 스피노자는 법칙이나 관습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했다. 그는 모든 예속을 부정적으로 보 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고자 했다. 심지어 그는 유대인 전통의 인격신을 부정하고 모든 것이 신이며 신은 곧 자연이라는 범신론을 주장하였다. 이런 이유로 그는 유대인이었지만 유대 인 사회에서 파문 결정을 받은 뒤, 저주받고 추방되어 가족과 친지들과의 만남뿐만 아니라 서신 왕래조차 불가능한 상황에 처했다.범신론 주장···유대사회에서 파문당해하지만 이런 사건은 오히려 스피노자가 자초한 셈이다. 그는 유대교의 억압 아래 고독한 운명 속에서 철학적 자유를 꿈꾸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주장을 표명함으로써 그는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었고 이를 선택한 것이다. 그는 “이성에 의해 인도되는 인간은 그가 살고 있는 법의 체계하의 상황에서보다 자신에게만 오직 복종하는 고독의 상태에서 더욱 자유롭다”고 말했다. 이는 그가 자신의 이성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전통적인 관습이나 개념들을 수동적으로 따르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예속에서 벗어나 ‘자유로움’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존재 이유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모든 예속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사람이 될 수 있는가? 이는 스피노자 철학의 핵심 과제이다.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뜻은?스피노자는 “내일 비록 세계의 종말이 온다 할지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는 말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말은 일반적으로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 오더라도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