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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회원 고두현 시인과 함께

    세상 향한 망치보다 나를 다듬는 정을…

    “모두가 세상을 바꾸려 하지만 정작 자신을 바꾸려는 사람은 드물다.”러시아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짧은 산문 <세 가지 개혁 방법>(1900년)에 나오는 명언이다. 톨스토이는 이 글에서 정치가와 혁명가들이 세상의 부조리를 탓하며 타인을 비난하고 제도를 뜯어고치려 하지만, 정작 자신은 탐욕과 이기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꼬집었다.그는 결국 세상을 바꾸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은 나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상을 향한 분노나 외침보다 인간 내면의 윤리적 결단을 중시한 그의 철학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톨스토이가 이 문장을 썼을 때 러시아는 혁명의 기운으로 들끓고 있었다. 지식인들은 황제의 폭정을 비판하고, 법을 바꿔야 한다고 외쳤으며, 체제를 무너뜨리면 유토피아가 올 것이라고 믿었다.나를 바꾸는 일은 고통스럽다. 남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도덕적 우월감을 주지만, 나의 밑바닥을 들여다보는 것은 수치심을 준다. 일상 습관 하나를 고치는 것이 헌법을 논하는 것보다 어렵다.톨스토이는 이런 비겁함을 꿰뚫어봤다. 그는 집단 속에 숨어 정의를 외치는 자보다 홀로 자신의 이기심과 싸우는 사람이 진정으로 세상을 바꾸는 주역이라고 생각했다.우리도 삶의 고비마다 환경을 탓하고, 정치를 탓하며, 운명을 탓하지만 톨스토이는 그 최면을 과감히 깨라고 권한다. 그의 지적처럼 세상을 향한 망치를 내려놓고, 나를 다듬는 정을 드는 데서 진정한 변화가 시작된다.고두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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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깊게 파려면 넓게 파라" [고두현의 인생명언]

    17세기 철학자 스피노자의 명언이다. 과학적 지식과 직관적 체험을 모두 중시한 그는 “나는 깊게 파기 위해 넓게 파기 시작했다”고 자주 말했다. 예나 지금이나 무언가를 깊게 파려면 넓게 파야 한다. 첼리스트 장한나가 ‘가야금 명인’ 황병기로부터 들은 덕담도 “우물을 깊게 파려면 넓게 파라”였다.어릴 때, 어머니가 “어느 구름에 비 들었는지 모른다”는 말을 하곤 했는데 일의 결과를 미리 재단하지 말고, 인생을 폭넓게 보라는 뜻이었다. ‘지혜의 왕’ 솔로몬이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거두지 말라. 이것이 잘될는지, 저것이 잘될는지, 혹 둘이 다 잘될는지 알지 못함이니라”고 한 것과 같다.구름이나 비, 씨앗의 원리는 오묘하다. 같은 씨앗도 싹을 틔우는 속도가 다르다. 비가 많이 와서 햇볕을 못 받으면 웃자라고 약하다. 늦더라도 햇빛과 양분을 제대로 받으면 잘 자라고 튼실하다. 파종하기 전에도 마찬가지다. 밭고랑을 깊이 파되 밭이랑을 넓고 높게 돋워야 한다. 거기에서 될성부른 떡잎이 자란다.사람은 어떤가. 두 살 때부터 골프를 시작해 최고의 경지에 오른 타이거 우즈는 ‘조기 영재’ 스타일이다. 타고난 재능에다 생후 7개월 때 골프채를 쥐여준 아버지의 열정이 더해졌다. 반면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는 다양한 운동을 폭넓게 접하고 뒤늦게 테니스로 진로를 결정했다. 어릴 때 스키·레슬링·수영·야구·핸드볼·탁구·배드민턴 등을 두루 섭렵한 다음에야 테니스를 택했다. 성공한 선수들은 의외로 페더러 스타일이 더 많다.‘조기 전문화’와 ‘늦깎이 전문화’베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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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북동에서 건진 만해시편 연작 [고두현의 아침 시편]

    심우장 가는 길고두현멀다.아직도 골목을 맴돌며소를 찾아 헤매는저 빈 집의오랜침묵!만해를 생각하면 두 장면이 먼저 떠오릅니다. 서울 성북동에 있는 심우장(尋牛莊)과 저 먼 만주의 굴라재 고개입니다. 하나는 현존하는 기념 공간이고, 하나는 역사 속의 기억 공간이지요. 이곳을 처음 방문한 날 저는 ‘만해시편’ 연작의 첫 번째 작품 ‘심우장 가는 길’을 썼습니다. 초고는 길게 썼는데 군말을 몇 번씩 헹궈냈더니 단출한 말만 남았습니다.“멀다.// 아직도 골목을 맴돌며/ 소를 찾아 헤매는// 저 빈 집의/ 오랜// 침묵!”심우장 가는 길은 예나 지금이나 고즈넉합니다. 도성 북쪽이어서 ‘성북’이라는 이름이 붙은 서울 성북동 산기슭 222의 1. 좁고 가파른 골목 사이로 올라가니 만해가 노년에 머물렀던 심우장이 나옵니다. 밖에서 본 심우장의 표정은 무심하고 무연합니다. 오랜 침묵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만해가 일제강점기인 1933년에 지은 이 집은 특이하게도 남향이 아니라 동북향입니다.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59㎡(17.8평) 규모의 소박한 단층집이 눈에 들어옵니다. 오른쪽 서재 앞에 ‘尋牛莊(심우장)’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심우장은 ‘소를 찾는 집’이라는 뜻이지요. 알다시피 불교 수행에서 ‘잃어버린 나’를 찾는 깨달음의 과정을 의미합니다.마당 한쪽에 만해가 심은 향나무 한 그루와 수령 90년이 넘은 소나무가 서 있습니다. 만해 시 ‘님의 침묵’ 중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이라는 구절이 두 나무의 그림자에 겹쳐지는 듯합니다.마루에 걸터앉아 한동안 상념에 잠겼습니다. 만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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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이룬 그 순간이 새로운 시작이다 [고두현의 아침 시편]

    우물 속의 달이규보산중의 스님이 달빛을 탐하여호리병 속에 물과 함께 길었네절에 들어가면 깨닫게 될 것병 기울여도 그 속에 달이 없다는 것을詠井中月山僧貪月色, 幷汲一甁中.到寺方應覺, 甁傾月亦空.고려 명문장가 이규보(李奎報, 1168~1241)의 시입니다. 그의 시풍은 당대 최고로 평가됐는데, 몽골군의 침입을 진정표(陳情表)로 격퇴해 더욱 유명해졌죠.청풍명월은 임자가 따로 없습니다. 누구나 마음대로 취해도 탓할 사람이 없지요. 산중의 바람이나 달은 다른 곳보다 더 맑고 밝으니 스님의 차지도 그만큼 풍족할 것입니다. 굳이 탐했다고 할 나위도 없겠네요.그런데 스님이 우물 속에 금빛으로 넘실거리는 달빛을 병 속에 물과 함께 길었다고 했습니다. 부질없는 짓이었죠. 달빛은 절 처마 밑으로만 들어가도 비치지 않고, 병 속의 물을 다 기울여도 나올 리가 없습니다. 그것은 그저 하나의 색(色)일 뿐이지요. 하긴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고 했습니다.인생은 가만히 보면 ‘색’이고 ‘공’이 시에도 ‘색’과 ‘공’이 함께 나오지요. 1구(山僧貪月色)의 마지막 글자인 ‘색’과 4구(甁傾月亦空)의 마지막 글자인 ‘공’이 색즉시공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인생이란 게 가만히 보면 ‘색’이고 ‘공’입니다. 어떤 모습을 드러내며 살더라도 죽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으니까요.이규보는 평소에 시·술·거문고를 좋아해서 ‘삼혹호 선생’(三酷好先生)으로 불렸습니다. 워낙 술을 좋아하고 풍류를 즐겨 과거시험에는 관심도 없고 시회(詩會)에 드나드는 것에 열중해서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사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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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 다람쥐, 춤추는 여인을 볼 틈도 없다면 [고두현의 아침 시편]

    가던 길 멈춰 서서                                  윌리엄 헨리 데이비스근심에 가득 차, 가던 길 멈춰 서서잠시 주위를 바라볼 틈도 없다면 얼마나 슬픈 인생일까?나무 아래 서 있는 양이나 젖소처럼한가로이 오랫동안 바라볼 틈도 없다면숲을 지날 때 다람쥐가 풀숲에개암 감추는 것을 바라볼 틈도 없다면햇빛 눈부신 한낮, 밤하늘처럼별들 반짝이는 강물을 바라볼 틈도 없다면아름다운 여인의 눈길과 발또 그…발이 춤추는 맵시 바라볼 틈도 없다면눈가에서 시작한 그녀의 미소가입술로 번지는 것을 기다릴 틈도 없다면그런 인생은 불쌍한 인생, 근심으로 가득 차가던 길 멈춰 서서 잠시 주위를 바라볼 틈도 없다면.방랑 생활을 오래 했던 영국 시인 윌리엄 헨리 데이비스(1871~1940)의 작품입니다. 그는 일에 쫓겨 허덕거릴 때마다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주위를 둘러보자고 말합니다. 근심에 잠긴 사람에게는 눈앞의 아름다움도 보이지 않지요. 희망의 눈이 감겨 있기 때문입니다. ‘나무 아래 서 있는 양이나 젖소처럼/ 한가로이 오랫동안 바라볼 틈’만 있어도 충분하지요. 직선의 세상, 보듬어 안는 곡선의 미학‘다람쥐가 풀숲에/ 개암 감추는 것’이나 ‘별들 반짝이는 강물’까지라면 더욱 좋습니다. 그 여유가 아름다운 여인의 눈과 발, 춤추는 맵시, 입술에 번지는 미소를 발견하게 해주고 진정한 인생의 의미도 깨닫게 해주니까요.뾰족한 직선의 세상을 둥글게 보듬어 안는 곡선의 미학! 그 오묘한 힘도 잠시 길을 멈추고 우리 주위를 둘러보는 것에서 나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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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돌을 주워다 물을 주어 기르는 마음 [고두현의 아침 시편]

    첫사랑의 시서정주초등학교 3학년 때나는 열두 살이었는데요.우리 이쁜 여선생님을너무나 좋아해서요.손톱도 그분같이 늘 깨끗이 깎고,공부도 첫째를 노려서 하고,그러면서 산에 가선 산돌을 줏어다가국화밭에 놓아두곤날마다 물을 주어 길렀어요.미당 서정주 시인이 살아 계실 때 서울 관악구 남현동 자택으로 찾아가 뵙곤 했습니다. 지금은 ‘미당 서정주의 집’이라는 문화공간으로 개방돼 있지요.그 집 정원 한편에 작은 쉼터가 있습니다. 일반인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단장하면서 새로 만든 공간이죠. 방문객들이 앉아 쉬거나 간혹 시낭송회를 여는 곳인데, 몇 해 전 찾아갔을 때 여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 미당의 시를 낭송하고 있었습니다.좋아하면 닮고 싶어지는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았지요. 저도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미당의 ‘첫사랑의 시’를 읊조려 보았습니다. 어릴 적 이쁜 여선생님을 좋아하던 열두 살 소년 시절로 금방 돌아간 듯했지요.좋아하면 닮고 싶어진다고 했습니다. 땟국 꾀죄죄한 시골 촌뜨기의 눈에 여선생님의 연분홍 손톱은 얼마나 맑고 고왔을까요. 부드러운 눈빛과 목소리는 또 얼마나 아름다웠을까요. 그런 여선생님을 닮고 싶었을 것입니다. 잘 보이고 싶어서 공부도 1등을 노려서 열심히 하고, 손짓발짓 온갖 행동도 더 착하게 하려고 노력했겠죠.여기까지는 그래도 열두 살짜리의 생각이라 납득이 갑니다. 그런데 그다음 생각은 어떻게 했을까요. 혼자 산에 가서는 속마음과 닮은 돌을 하나 주워 와서 국화밭에 놓아두고 물을 주다니요. 그렇게 물을 주어 기르는 생각을 했다니요! 날마다 물을 주어 기르면 산돌이 자랄 거라고 믿는 그 마음이 정말 이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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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잎 한 점 질 때마다 봄날이 줄어들거늘 [고두현의 아침 시편]

    곡강이수-1꽃잎 한 점 질 때마다 봄날이 줄어들거늘바람에 만 점 잎이 흩날리니 시름겹도다.막 지려는 꽃이 눈에 스치는 것 잠시 바라보고몸 상한다 하여 술 마시는 일 마다하지 않으리.강가 작은 집에 물총새 둥지 틀고동산 옆 높다란 묘 기린 석상 누워있네.천천히 물리를 헤아리며 마음껏 즐겨야지무엇하러 헛된 명예에 이 몸을 얽어매리요.곡강이수-2두보조회 끝나고 돌아와서는 봄옷 저당 잡히고날마다 강가에서 흠뻑 취해 돌아가네.외상 술값은 가는 데마다 깔렸느니인생 칠십이 예로부터 드물다 했지.나비들은 뚫을 듯이 꽃에 파묻히고잠자리는 물을 찍으며 천천히 날아가네.아름다운 풍광도 인생처럼 흘러가는 것이 좋은 경치를 어찌 아니 즐길 건가.* 두보(杜甫, 712~770) : 당나라 시인하룻밤 비바람에 한 봄이 오가는데…제가 참 좋아하는 시입니다. 사람 관계도 그렇듯이 오는 봄보다 가는 봄이 애잔하지요. 곡강(曲江)은 장안 동남쪽 끝에 있는 연못입니다. 주변 경치가 수려하고 서남쪽에는 부용원이 있지요.아름다운 곡강은 ‘안녹산의 난’ 이후 피폐해졌고, 주인 없는 집 처마에는 물총새가 둥지를 틀었습니다. 화려하던 부용원 근처의 큰 무덤 역시 돌보는 이 없어 석상이 나뒹굴고 있습니다. 이처럼 무상한 모습을 그리면서 시인은 세상 이치를 잘 헤아려 인생을 즐기는 게 중요하지 부질없는 공명에 몸을 묶어두면 되겠느냐고 묻습니다.조회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봄옷을 저당 잡히고 외상술을 마시는 것도 난분분 떨어지는 꽃잎처럼 세상이 허망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더구나 인생 칠십을 넘기는 사람이 드무니 어찌 술로 그 슬픔을 달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말이죠. 바로 이 구절 &ls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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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높은 곳에선 왜 잘못을 빌고 싶을까 [고두현의 아침 시편]

    발왕산에 가보셨나요고두현용평 발왕산 꼭대기부챗살 같은 숲 굽어보며곤돌라를 타고 올라갔더니전망대 이층 식당 벽을여기 누구 왔다 간다, 하고빼곡히 메운 이름들 중에통 잊을 수 없는 글귀 하나.‘아빠 그동안 말 안드러서좨송해요. 아프로는 잘 드러께요’하, 녀석 어떻게 눈치챘을까.높은 자리에 오르면누구나 다잘못을 빌고 싶어진다는 걸.* 고두현(1963~) : 시인용평 숲에서 사흘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나무의 입김이 손끝에 닿을 때마다 감미로운 추억이 밀려왔지요. 자작나무 숲으로 가는 오솔길은 책갈피 속의 행간처럼 아늑했습니다. 낙엽송이 군락을 이룬 능선의 공기는 또 얼마나 싱그럽던지요.그곳에 머문 지 이틀째 되는 날, 뒷집 아저씨처럼 마음씨 좋게 생긴 발왕산에 올랐습니다. 정상에 도착했더니 전망대 안 식당 벽에 수백 장의 편지가 매달려 있더군요. 아무개 왔다 간다, 하는 메모부터 가족의 건강과 성공을 기원하는 문구까지 온갖 ‘말씀’들이 사방 벽을 채우고 있었습니다.그중에서도 유쾌한 감동을 준 건 초등학교 1~2학년쯤 되는 녀석의 ‘고해’였습니다.산에서는 모두가 겸손해집니다‘아빠 그동안 말 안드러서 좨송해요. 아프로는 잘 드러께요’비록 맞춤법은 틀리지만, 제게는 가장 진솔한 마음의 표현으로 다가왔습니다. 녀석은 어떻게 알았을까요. 높은 곳에 오르면 누구나 잘못을 빌고 싶어진다는 것을.산에서는 모두가 겸손해집니다. 자연의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기 때문이겠지요. 얼굴도 모르는 그 개구쟁이의 글귀가 그래서 더욱 살갑게 다가왔습니다. 그것은 찬물에 세수하고 난 뒤의 청량감처럼 산에서 얻은 뜻밖의 깨우침이었습니다.그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