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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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기타
"어느 왕국 악단이 더 뛰어나냐"…경쟁이 모차르트 낳아
생전에 이런 장면을 보게 될 줄이야. 지난해 8월 미국 시카고 초대형 록 페스티벌 ‘롤라팔루자’에서 7만 관중을 쥐락펴락하며 압도적인 무대를 보여준 걸그룹 ‘뉴진스’ 이야기다. 세 번 놀랐다. 중간중간 관중과 영어로 대화하는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무대 매너가 당당해서, 그리고 도무지 우리나라 여자아이들 같지 않아서(한 명은 호주, 베트남 이중 국적이지만 뭐). 일찍이 선각 이수만 선생께서 고등학생 시절 클리프 리처드의 내한 공연을 보며 “외국 가수에게 한국 팬들이 열광하는 것이 가하다면 그 역 또한 불가할 것이 없지 않은가” 각오를 다지신 지 반세기, 그리고 그걸 실현하겠다고 클론과 H.O.T의 손을 잡고 그것도 외국이라고 중국 음악 시장으로 출격하신 지 불과 20년 만에 벌어진 일이다. 한국 아이돌이 빌보드 차트를 안방 드나들 듯하는 모습이 당연해 보이는 10대들에겐 별로 신기한 일도 아니겠지만, 나 같은 ‘아재’ 입장에서는 뉴진스 노래를 따라 부르는 외국인들의 모습이 경천동지할 일이다.예술에 필요한 게 재능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세상에 재능만큼 흔한 게 없다. 그리고 더 흔한 게 실패한 재능이다. 그보다 중요한 것, 예술을 하려면 ‘운’이 따라야 한다. 운은 사람과 때다. 마이클 잭슨이 200년 전 미국 남부에서 태어났다고 생각해보라. 그저 재롱 잘 떠는 ‘검둥이’ 취급받다가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람 운도, 활동 시기도 죄다 나빴던 게 모차르트다.신을 찬미하는 게 음악 예술가들의 유일한 활동 영역이던 중세가 저물면서 르네상스가 시작된다. 이때부터 세속 음악이 종교음악과 헤어지는데, 이어지는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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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기타
왕실·교회·귀족에 고용돼 창의력 잃었던 고전음악…'천재' 모차르트, 19세기 자유화 타고 독립해 대활약
모차르트는 ‘음악의 신동’으로 불렸다. 이미 네 살 때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었고, 다섯 살 때는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직접 곡을 만들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라 모차르트는 어렸을 때부터 어떤 곡이라도 30분 내에 완벽하게 연주할 수 있었고, 한 번 들은 음악은 아무리 복잡한 곡이라도 악보에 정확히 옮겨 적을 수 있는 천재였다.모차르트와 자유그래서 모차르트는 35년이라는 짧은 인생에도 불구하고 온갖 장르를 넘나들며 빼어난 음악을 수도 없이 작곡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만약 모차르트가 자유를 누릴 수 없는 음악가였다면, 그의 주옥같은 세레나데나 흥겨운 행진곡은 물론 ‘피가로의 결혼’ ‘마술피리’ 같은 위대한 오페라도 결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본래 서양의 고전 음악은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를 목적으로 발달해 종교적인 성격이 강했다. 게다가 18세기 전후의 음악가들은 왕실 또는 교회, 혹은 재력 있는 귀족 가문에 고용돼 음악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래서 당시 음악가들은 주로 교회 음악을 만들거나 연주했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보다는 고용주가 원하는 쪽으로 음악활동을 펼칠 때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아무리 뛰어난 음악가라도 창의적인 예술가로 대우받기보다는 하인처럼 부림을 당하거나 무시받는 일이 많았다.귀족에서 대중으로하지만 이런 시대에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자유롭게 펼치며 아름다운 곡들을 왕성히 만들어낸 음악가가 바로 모차르트다. 물론 모차르트도 처음엔 궁정음악단에 소속돼 쥐꼬리만 한 봉급을 받으며 연주자로 일했다. 그러나 천재적인 재능을 지니고도 언제나 하인 취급만 당하던 모차르트는 자신의 처지를 견디다 못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