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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글기자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의 역할을 되새겨보자

    ‘언론’이라는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흔히 텔레비전 뉴스 혹은 종이신문을 떠올린다. 최근에는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인터넷 뉴스와 1인 저널리스트 등이 생겨남에 따라 언론의 범위가 더욱 넓어지고 있다. 이처럼 언론은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소중함을 잊기가 쉽지만, 언론은 우리 삶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존재다. 언론은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다. 우리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언론을 통해서 접한다. 특히 민주주의 국가에서 언론의 역할은 중대하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주권을 가지고 국민에 의해 정치를 행하는 제도다. 국민이 사회에 대한 정보와 견문이 없다면 민주주의 사회는 실패할 것이다. 언론은 시민에게 정확한 결정을 내리는 데 토대가 되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주권자로서 현명한 판단을 하는 지혜로운 시민을 만드는 데 이바지한다.그렇다면 과연 현재 언론은 민주주의 국가의 ‘식견 있는 시민’을 만드는 데 올바르게 기여하고 있을까? 대부분 언론은 세상에 일어나고 있는 일을 불편부당하고 공정하게 전달하고 사실을 파헤치고자 노력하고 있다. 반면 부풀려진 사실과 편향된 입장을 보도하는 부패한 언론도 더불어 늘어나고 있다. 보수와 진보의 갈등이 커지고 정치적 양극화가 심한 오늘날 일부 언론은 특정 정파의 견해를 대변하는 존재가 되고 있다.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그의 저서 《대변동(Upheaval)》에서 이를 ‘틈새정보(niche information)’라 칭하면서, 사람들이 자신이 선호하는 ‘정치적 틈새’에 파묻히고, 자신만의 ‘사실’에 집착해 타협을 거부함에 따라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 생글기자

    첫 투표를 하며 느낀 몇 가지 궁금증

    나는 만 18세 유권자다. 생애 첫 투표를 했다. 어른들께서 ‘학생이 무슨 정치냐. 너는 세상을 제대로 겪어보지 못했다’고 말씀하실 수 있지만, 학생의 짧은 생각으로 나름대로 열심히 고민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다.투표한 뒤 정치를 잘 모르는 평범한 학생으로서 몇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첫째, 국회의원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하다. 분명히 지역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자주 소통하려 노력하겠지만, 평범한 국민인 나는 정치에 관한 정보를 전해 듣기 힘들다. 우리 지역구 의원은 어떤 발언을 하고, 어떤 주장을 했을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언론사나 국회방송, SNS 등이 전부다. 하지만 언론은 구체적인 입법 활동보다는 의원 개개인의 가십, 논란이 될 만한 발언, 선거운동에 주목한다. 국회방송은 너무 길고, 일일이 챙겨보며 입법에 관심을 갖기엔 시간이 부족하다. SNS는 클립 단위로 짧게 보여주기 때문에 군맹무상의 오류를 범하기 쉽다. 가짜뉴스도 SNS를 믿을 수 없게 만드는 요인이다. 결국 우리가 빠르고 정확하게 정치에 대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정보망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정보 공유와 소통의 부재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조각의 지식만을 갖고 제한된 범위에서 판단하도록 만든다.둘째로 우리는 왜 의견이 다른 사람을 존중하지 못하는 것일까? 팸플릿을 읽거나 선거운동을 보고 있으면 ‘특정 정당에 지역구를 빼앗겼다. 나쁜 세력을 몰아내겠다. 승리하겠다’는 표현이 자주 나온다. 정당이 다르고 의견이 달라서 나쁘고 잘못된 사람은 아니다. 다른 정당을 나쁜 세력으로 몰아세우고 지지층 결집을 도모하는 선거운동은 당선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올바

  • 생글기자

    코로나 사태의 근원은 마음속의 방심

    이제 우리나라의 중요한 사건인 총선이 끝났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미국 정찰기가 격추된 날짜이기도 하다. 1969년 4월 15일 미 정찰기가 소련을 거쳐 북한을 정찰하다 북한의 전투기에게 걸려 격추됐다. 정찰기에 있던 미국인 31명 전원이 사망했다. 미국은 당연히 화가 났지만 정찰하다가 일어난 사고였고 정부가 베트남에 집중하던 때라 흐지부지됐다. 북한의 준비력을 간과한 것이 화근이었다.비슷한 일은 약 400년 전에도 일어났다. 누르하치는 명나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했고 이후 명나라는 조선을 끌어들여 10만 군대를 이끌고 3만 정도의 청나라군을 공격한다. 이전부터 오랑캐라 부르고 우습게 여겨서 병력을 분산하는 오판을 저질렀다. 이 전투는 사르후 전투, 여기에 참전한 조선군의 사령관은 강홍립이었다. 30년도 되지 않아 명나라는 청나라에 무너졌다. 사르후 전투 패배 이후로도 한 여러 오판들의 결과였다.또 다른 일은 약 800년 전이다. 칭기즈칸이 몽골을 통일하고 여러 나라와 국교를 맺고 있을 때 중동 호라즘 왕국의 성주가 몽골의 사신을 능욕하고 재물을 빼앗았다. 칭기즈칸은 사과를 요구했지만 호라즘 왕은 몽골을 우습게 여기고 무시했다. 이에 칭기즈칸은 호라즘을 침공한다. 몽골 군사가 10만, 호라즘 군사가 40만이었지만 왕은 수성을 고집해 결국 나라 전체가 망했다. 이때 이후로 몽골은 우리가 아는 제국이 됐다. 헝가리의 실권자 우그릴도 몽골을 우습게 여기고 철저하게 방비하지 않았다. 그 대가로 수도 전체가 초토화됐다. 현재 수도인 부다페스트는 이후 옮긴 수도다.이제 현재로 돌아가자. 코로나는 어디서 시작되었는가? 물론 사실로 말하면 중국 우한이지만 냉정하게 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