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흑자는 저축>투자인 상황
수출 잘돼 벌었나, 내수 부진으로 덜 썼나
같은 흑자라도 경제적 의미 달라져
수출 잘돼 벌었나, 내수 부진으로 덜 썼나
같은 흑자라도 경제적 의미 달라져
한국의 올해 수출이 1조달러를 넘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에 힘입어 경상수지 흑자도 사상 최대인 45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국내총생산(GDP)의 20%에 이르는 큰 규모다. 그러나 자영업 폐업이 역대 최대를 기록하는 등 내수 경기는 상대적으로 부진하다. 경상수지 흑자가 커지면 외국에서 벌어오는 돈이 많으니 무조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은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 경상수지와 내수 경기의 관계경상수지 흑자의 이면을 살펴보기 위해 국민소득 항등식에서 출발해 보자. 국민소득 항등식은 GDP를 Y=C(소비)+I(투자)+G(정부 지출)+NX(순수출)로 나타낸다. 이 식을 변형하면 Y-C-G=I+NX다. 여기서 좌변은 한 나라가 번 돈에서 국민과 정부가 쓴 돈을 빼고 남은 것이다. 즉 그 나라의 저축(S)이다. 따라서 S=I+NX로 고쳐 쓸 수 있고, NX=S-I가 된다.
정리하면 한 나라의 총저축에서 총투자를 뺀 금액이 경상수지다. 총저축이 총투자보다 많으면 경상수지는 흑자가 되고, 총저축이 총투자보다 적으면 경상수지는 적자가 된다. 경상수지가 총저축과 총투자의 차이라는 사실을 최근 통계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2분기 총저축률은 45.6%로 관련 통계를 공표하기 시작한 1970년 이후 최고치였다. 총투자율은 24.2%에 그쳐 저축률과 투자율의 격차가 21.4%포인트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경상수지 흑자가 역대 최대인 것과 궤를 같이하는 통계다.
결국 경상수지 흑자만큼 외국으로 자본이 나간다. 그래서 경상수지 흑자는 곧 순자본유출이 된다.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대규모 초과 저축=대규모 자본 유출’이라는 등식이 성립한다. 경상수지 흑자만큼 국내에 투자될 수도 있었던 돈이 외국으로 나간다는 의미다. 4500억달러의 사상 최대 경상수지 흑자를 내는 것보다는 그중 일부라도 국내에서 소비되거나 투자되는 것이 내수 경기엔 훨씬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경상수지 흑자가 순자본유출이라면 경상수지 적자는 순자본유입이다. 경상수지 적자를 내는 나라는 외국에서 자본이 들어오는 나라다. 대표적 사례가 미국이다. 미국에 상품을 수출하고 달러를 받는 나라들은 그 달러로 다시 미국 국채나 주식을 매입한다. 미국은 그렇게 되돌아온 달러로 국내 투자 수요를 충당한다.나쁜 흑자와 좋은 적자 경상수지 흑자가 절대선은 아니라고 해서 경상수지 적자가 꼭 좋다고 할 수는 없다. 기축통화국이 아닌 한국이 미국처럼 오랜 기간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를 내면 대외채무 위기에 빠질 수 있다.
경상수지 적자를 내면서 대외 거래를 지속하려면 달러를 계속 빌려와야 하는데, 외국인이 어느 순간 한국 경제의 건전성에 의구심을 품으면 자본 유입이 갑자기 중단되는 ‘서든스톱’이 일어날 수 있다. 이에 따라 환율이 오르면 국내 기업과 금융회사의 외화 표시 부채 부담이 커져 부실 위험에 빠진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가 이런 식으로 발생했다.
흑자와 적자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그 배경이다. 기업의 수출 경쟁력이 높아져 생겨난 경상수지 흑자라면 좋은 흑자다. 이에 비해 내수 부진의 결과로 나타나는 흑자는 나쁜 흑자다. 경상수지가 적자를 내더라도 그것이 활발한 투자의 결과라면 좋은 적자일 수 있다. 수출 부진으로 나타난 적자라면 나쁜 적자다. 사상 최대 경상수지 흑자가 내수 부진을 반영하는 것은 아닌지, 투자와 소비를 가로막는 요소가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유승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