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식시장에서 공매도 논쟁이 한창이다. 2030세대들이 증시로 대거 몰려 코스피지수가 사상 최고치에 오르면서 ‘과열 논란’ ‘거품 경고’까지 나오는 와중에 찬반 주장이 뜨겁다. 문제는 ‘영끌’(영혼까지 끌어들인 투자), ‘빚투’(빚내서 하는 투자)라는 말이 퍼져가는 단기 과열 현상이다. 공매도는 빌려온 주식을 판 뒤에 주가가 하락하면 싸게 사서 되갚는 투자기법이다. 공매도가 뜨거운 관심사가 된 것은 주가 하락을 공매도가 부채질할 수 있다는 주장 때문이다. 공매도가 주가 하락의 명확한 요인이라는 분석은 없지만, 하락장일 때 주로 쓰이는 매매기법이기는 하다. 지금은 공매도에 대한 정책이 그 자체로 시장의 판세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돼 버렸다. 2020년 3월16일 금융감독 당국은 1년간 한시적으로 공매도를 금지했다. 당시 코로나 쇼크로 주가가 폭락하자 하락 방지책으로 내놓은 것이었다. 1년이 지났고 코스피지수는 당시에 비해 급상승했다. 금융위원회는 공매도 금지 조치를 풀어 원래대로 가능하게 하겠다는 계획을 최근 밝혔다. 그런데 거대 여당이 제동을 걸고 나섰다. ‘영끌’ ‘빚투’에 나선 개미투자자들이 주가 하락을 걱정해 청와대에 ‘공매도 금지 유지’ 청원을 넣는 등 여권에 압력을 가하면서 금융위원회에 공매도를 (당분간) 계속 금지하도록 압박하는 상황이다. 공매도는 과연 나쁜가. 계속 금지해야 할까.
[찬성] 개인과 기관투자가 정보 불균형…'기울어진 운동장' 바로잡는 수단공매도 금지를 한시적으로 해왔지만 계속 유지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주식시장의 구조적인 문제로 지적되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자는 취지다. 주식도 없이 빌려서 파는 공매도 제도를 실제 이용하는 쪽은 대부분 기관투자가와 외국인 투자자다. 자금력이 있는 기관과 외국인 투자자들은 공매도를 이용해 현실적으로 수익을 내고 있지만 개인 투자자들은 그렇지 못하다.2017~2019년 한국 유가증권시장에서의 공매도 거래 가운데 외국인 비중은 74%였다. 국내 기관투자가들도 24%를 차지했다. 개인 비중은 1%도 채 되지 않았다. 주로 기관투자가들인 외국인과 국내 기관은 기관 간 대차(주식 빌리기)시장을 통해 주식을 쉽게 빌릴 수 있다. 그 규모가 67조원에 달한다. 개인들도 신용융자 담보로 주식을 빌릴 수 있지만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다. 금융위원회가 이런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개인도 공매도를 할 수 있도록 ‘대주시장’을 확대한다는 방침은 세웠으나 아직 변한 것은 없다. 여전히 개인 투자자들이 불리할 수밖에 없다.
기관과 외국인 투자자들이 공매도를 이용해 수익을 내는 과정에서 개인과 ‘정보의 불균형’이 있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증권가에서 쉽게 끊이지 않는 시세조종 같은 불공정거래에 악용될 가능성도 있다. 나중에 증권사의 실수로 판정나기는 했지만, 2018년도 골드만삭스의 대규모 공매도 사건 때도 시장의 충격이 컸다. 고의성 여부는 언제나 판단이 쉽지 않은 문제인 만큼 악용될 소지가 있는 제도라면 원천적으로 제한할 필요도 있다. 때로는 공매도 제도 자체가 잘못이라기보다는 이 제도가 주식시장의 모든 참여자에게 똑같이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부정적 시각 때문에 ‘폐지론’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반대] 한국만 금지하면 국제자본 이탈 예상…'글로벌 스탠더드'로 필요한 제도개인 투자자들이 공매도 제도를 잘못 이해한 채 금지와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공매도는 17세기 네덜란드의 동인도주식회사 때부터 있어온 주식 거래기법이다. 한국에 제도적으로 도입된 것도 1996년이다. 이제는 제도를 정착시킬 때다. 금지가 아니라 잘 가꾸면서 주식시장을 선진화해 나가야 한다. 보완요인이 있어 수정·보완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공매도 정도도 수용하지 못한다면 증권시장의 많은 파생상품이나 관련된 투자기법은 어떻게 인정하나. 공매도는 주식 투자자에게 자금을 빌려주는 신용융자와 같은 성격으로, 대칭적 기능을 한다. 공매도가 안 된다면 돈 빌려서 주식을 사는 것도 금지할 텐가. 다른 주체의 자산을 빌려 매매차익을 얻는다는 점에서 같은 성격이라는 게 증권학계의 주된 학설이다.
주식시장을 떠받치기 위해 한시적으로 금지한 것도 무리인데, 공매도 금지를 계속해 간다면 한국은 세계시장에서 완전히 ‘외딴 섬’으로 전락할 것이다. 일정 규모나 수준의 증시를 가진 국가 가운데 공매도를 금지하고 있는 곳은 한국과 인도네시아 정도뿐이다. 공매도를 금지하면 해외 투자자금이 새로 들어오기는커녕 있던 자금도 빠져나갈 것이다. 주식시장은 온통 위험투성이인데 ‘리스크 관리’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시장에 어떤 자본이 투자하러 오겠나. 글로벌 자금이 대거 빠져나가는 것이야말로 국내 주가를 떨어뜨리는 초대형 악재다. 벼룩 잡겠다고 초가삼간 다 태우는 어리석음을 저지를 수는 없다.
공매도를 금지한 지난해 3월 이후 유가증권시장은 38%가량 올랐고, 공매도가 허용돼 있는 미국은 26% 오르기는 했다. 하지만 주가 변동에는 변수가 너무 많아 이 차이가 공매도 때문이라는 명확한 분석도 없다. 오히려 금융위기가 왔던 2008년에는 공매도 금지 조치에도 불구하고 코스피지수는 더 내려갔다.
√ 생각하기 - 불법 공매도가 문제…불법·편법 행위 차단 등 엄정 대처해야 공매도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그 과정에서 위법행위, 즉 ‘불법 공매도’가 문제다. 금융감독 당국이 불법 공매도에 대한 엄단 의지를 밝혀왔으면서도 ‘적발 시 처벌 강화’ 차원에 머무르고 있는 것도 적발과 대응에 기술적 한계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소액 개인 투자자들이 일종의 단체행동 같은 청원 넣기에까지 나서면서 공매도 금지에 매달리는 것은 어떻게든 주가 하락을 막아보겠다는 욕심일 수 있다.
하지만 공매도 금지가 주가 하락을 부추긴다는 실증적 증명은 없는 데다 금융위기라든가 주식시장에 이상이 생겼을 경우 오히려 주가 하락을 부채질한다는 반론도 있다. 공매도제도가 ‘적정가격’을 찾는 순기능도 있다. 대부분 선진시장에서 다 활용하고 있는 매매 방식을, 그것도 이미 해오던 것을 금지할 경우 해외 시각도 고려해야 한다. 공매도를 금지하면 한국 증시에서 국제자본이 이탈할 것이라는 경고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글로벌 스탠더드의 문제이기도 하다. 결국 제도의 틀은 유지하되, 불법·편법 행위를 최대한 예방하면서 적발 시 엄정 대처하는 것도 보완 방법이 된다. 이것 외에도 예방하고 보완해야 할 증시 불공정 행위는 더 많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