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된 후 100년 지나 관측된 중력파
50여년 숙성 끝 탄생한 딥러닝과 알파고
기초과학은 장기 지원 필요하다는 증거

염한웅 < 포스텍 교수·물리학 >
[전문가 포럼] 중력파와 AI, 야누스의 기초과학
로마신화에서 시작의 신은 야누스다. 1월의 영어명 ‘January’도 ‘Janus’라는 이름에서 왔다. 우리는 야누스를 두 개의 얼굴로 기억한다. 신화에서는 농사와 법을 다스리는 얼굴, 그리고 성과 가정의 문을 지키는 얼굴을 앞뒤로 가진다고 한다. 모든 시작은 뒤로 지나온 과거의 끝이면서 앞으로 다가올 미래라는 두 얼굴을 가진다. 시작의 신 야누스가 두 개의 얼굴을 가지는 것은 이런 뜻이 아닐까?

2017년의 뒷면 2016년, 과학계 최대의 화제는 중력파의 발견 및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로 상징되는 인공지능(AI)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한 다음해인 1916년에 한 번, 그리고 1918년에 또다시 논문을 발표해 중력파를 예견했다. 중력파는 별의 폭발과 같은 중력의 이상현상이 우주의 한 부분에서 생긴 후 이것이 파동으로 전 우주로 전파되는 것이다.

중력은 자연계의 네 가지 기본 힘 중 하나로 매우 중요한 힘이지만 전자기력과 같은 다른 힘에 비해 크기가 10의 40제곱분의 1로 너무나도 미약해 우주의 멀고 먼 구석에서 전해져오는 중력파를 지구에서 관측하는 것은 아인슈타인조차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했다. 중력파를 직접 관측하려는 노력들은 1960년에 그 이론이 제시된 후, 1980년대에 이르러 미국과학재단의 지원으로 MIT와 캘리포니아공과대(칼텍)의 물리학자들에 의해 프로토타입 실험이 시작됐다. 그 후 수천억원의 지원과 노력이 실로 30여년간 이어져 마침내 2016년에 성공했다. 아인슈타인의 예측으로부터 100년이 지났으며, 우주를 이해하려는 인류의 지적 여정에 또 하나의 큰 발자취를 남겼다.

그런데 이 모든 노력과 투자의 대가는 감격과 자부심이라는 정서적인 것과 인류의 지적 자산이라는 문화적인 것 이상으로는 분명하지 않다. 물론 중력파 발견 실험이 길이에 대한 정밀측정기술에 큰 진보를 가져왔다. 하지만 세계의 어떤 언론도 이번 발견이 산업과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따져 묻지는 않는다. 인류를 현재에 이르게 한 과학의 가치를 의심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기 때문이다. 기초과학이라는 야누스의 한쪽 얼굴이다.

야누스의 다른 쪽 얼굴은 AI에서 볼 수 있다. 지금 AI는 미래산업의 총아로서 엄청난 시장을 이미 확보하고 있고, 향후 생산과 서비스 경제 전체에 쓰나미로 다가올 것이라 예측되고 있다. AI는 1950년대 중반 다트머스대, 스탠퍼드대, MIT 등의 과학자들에 의해 기초적인 틀이 만들어졌다. 그 후 1960년대의 초기 연구와 1980년대의 발전을 거쳐서 딥러닝과 알파고로 이어졌다. 즉, 기초과학으로 탄생해 연구되고 숙성되는 50년의 오랜 시간을 거쳤다. 이 기간 동안 미국에서는 미국과학재단과 국방부 등의 투자가 몇몇 선구적인 연구자와 연구중심대학에 집중됐다.

경제적으로 막대한 가치를 가지며 현재 물질문명의 큰 부분을 차지한 대부분의 혁신기술은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의 실험실에서 태동했다. 해서 기초과학의 경제적 가치를 묻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다. 앞으로 나올 미래 먹거리의 많은 부분이 또한 과학자들의 실험실에서 나올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야누스의 두 얼굴을 잘라서 분리할 수 없듯이 돈 되는 기초과학과 돈이 안 되는 기초과학을 분리해서 발전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아울러 인류가 공유할 중요한 지적 자산으로서의 기초과학이든, 산업을 송두리째 뒤바꿀 경제 가치를 내포한 기초과학이든 오랜 세월에 걸친 지속적인 노력과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에는 차이가 없다.

새 정부가 들어서는 해다. 기초과학의 양면성 정도는 정확히 이해하고 장기적인 투자 안목을 가진 리더십과 정부를 기대한다. 아니, 사실은 5년마다 바뀌는 정부를 관통해 기초과학에 대한 일관되고 장기적인 지원이 가능하도록 하는 국가과학의 탈정부적, 탈정치적 방향타와 틀이 필요하다.

염한웅 < 포스텍 교수·물리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