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재 박사의 '그것이 알고 싶지?'

국가 의사결정의 최우선 고려사항
Security (안보)
Power (힘)
Prosperity (번영)
Prestige (위신)

한스 모겐소 SPPP 이론
1816~2000년 사이 207개국 존재했으나 지금은 66개국이 사라졌어요.
66개국 가운데 50개국이 이웃 나라의 폭력에 의해 사라지는 비극을 겪었죠.
‘대한제국’도 ‘사라진 나라’ 가운데 하나입니다.
국가도 이제 SPPP 무장해야 ‘생존’ 가능한 시대죠.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은 많은데 무엇부터 먼저 처리하면 좋을지 몰라 갈등합니다. 어느 식당을 가야 할지 몰라 길을 헤매고, 어렵게 한 곳을 찾아가도 메뉴판 앞에서 음식을 고르지 못해 시간을 보내지요. ‘선택 장애’입니다. 일의 대소경중(大小輕重)을 살피고, 급한 일과 급하지 않은 일을 나누면 좋지만 사라진다지만, 사실은 기준을 어떻게 정하는지부터가 쉽지 않죠.
미국과 베트남은 전쟁을 한 사이였으나 지난해 미국이 베트남에 대한 무기수출 금지 조치를 해제하면서 두 나라가 가까워지고 있다. 국제관계에서 영원한 적은 없다.
미국과 베트남은 전쟁을 한 사이였으나 지난해 미국이 베트남에 대한 무기수출 금지 조치를 해제하면서 두 나라가 가까워지고 있다. 국제관계에서 영원한 적은 없다.
그렇다면, 국가도 행동의 우선 순위가 있을까요? 있습니다. 국제 정치학자로 현실주의 이론을 설파한 한스 모겐소(Hans Joachim Morgenthau: 1904~1980)가 말한 SPPP 이론입니다. 국가 의사결정의 최우선 고려사항은 Security(안보)입니다. 나라는 생존이 우선이며, 나라가 무너지면 그다음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국가’는 영구불멸의 존재가 아닙니다. 미국의 국제정치학자 타니샤 파잘(Tanisha Fazal)이 2007년에 펴낸 《국가의 죽음(State Death)》은 ‘국가의 소멸’을 주제로 다룹니다. 그녀에 의하면, 1816년부터 2000년까지, 즉 근대국민 국가체제 성립시기를 살피면 이 기간 동안 모두 207개의 나라가 존재했습니다.

2000년 현재 이 가운데 66개국이 사라졌습니다. 66개국 가운데 50개국이 이웃 나라의 폭력(전쟁)에 의해 사라졌습니다. ‘대한제국’도 ‘사라진 나라’ 가운데 하나입니다. 파잘 교수는 다가올 세계에서는 국가의 죽음이 더욱 빈번하게 나타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안보와 힘이 없으면 사라진다

SPPP의 두 번째 요소는 Power(힘)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힘’이란 군사력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국가의 전체적인 능력, 국가통제력을 의미합니다. 왜 ‘힘’이 중요할까요. ‘힘’은 안전을 보장합니다. 국제사회는 기본적으로 모든 나라가 서로를 두려워하는 세계입니다. 민주국가든 독재국가든 ‘힘’을 기르는 이유는 그것이 생존을 보장하는 가장 확실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국가 이익을 지키기 위한 세 번째 요소는 Prosperity(번영)입니다. 번영은 안보와 힘을 기르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국민들의 복지수준을 높여 자아실현의 계기를 마련합니다. 복지 이야기가 아닙니다. 경제적으로 번영한 사회는 시민들의 직업선택권을 늘리고 다양한 적성을 발휘할 기회를 제공합니다.

선택의 폭이 좁으면 개인의 개성을 발휘할 기회가 줄어듭니다. 삶의 만족도도 떨어집니다. 마지막 P는 Prestige(위신)입니다. 국가 브랜드, 예술작품, 스포츠를 통한 국위선양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국민들을 감정적으로 행복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베트남은 왜 ‘원수’ 미국과 손잡았나

가장 이상적인 경우는 이 네 가지 요소가 골고루 늘어나는 것이겠지요. 문제는 위 요소들 사이에 충돌이 벌어지는 경우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안보와 경제적 이익이 충돌하는 경우입니다. 나라의 부가 줄어들더라도 그러한 상황이 나라의 존립을 위협한다면, 이 경우 어느 한 쪽을 선택해야 한다면, 국가 지도자는 안보를 택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최근 들어 미국과 군사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베트남 지도자들에게 외신기자들이 물었습니다. ‘미국과 베트남이 전쟁을 치르고 그렇게 많은 세월이 지나지 않았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인가.’ ‘우리는 현재와 미래가 다급한 나라이기 때문에 과거에 연연할 여유가 없다.’

중국의 위협에 베트남이 맞서는 가장 효율적인 길은 미국과의 협력이라는 답변이었지요. 위신보다는 안보가 중요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베트남 지도자들의 이와 같은 언급이 ‘국제정치의 맥락을 제대로 파악한 당당한 발언’이었다고 평가합니다.

어떤 문제점이 발생하거나 선택의 기로에 직면했을 때, 두 선택지의 비중을 먼저 살피면 실수할 확률이 줄어듭니다. SPPP이론이 중요한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