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재 박사의 '그것이 알고 싶지?'
가슴 설레게 하는 황금 보물선 이야기, 조선은행 금괴 200t은 어디로 갔을까
보물섬, 보물선은 로망이다. 비밀 지도, 음모, 바다의 모험, 반전 그리고 마침내는 일확천금. 1883년 영국의 소설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발표한 소설 <보물섬>은 해적들이 숨긴 보물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지만 현대에도 보물섬이 엄연히 있다. 지난 5월16일 이스라엘의 다이버 두 명이 자국의 카이사레아 항구 근처에서 고대의 청동상 등 다수의 유물을 우연히 발견했다. 조사 결과 1700여 년 전에 침몰한 고대 로마의 상선이었다. 더 극적인 예는 콜롬비아 앞바다에 묻혀 있는 스페인 상선이다. 1708년 6월8일 카르타헤나 인근에서 영국 군함의 공격을 받고 산 호세호는 침몰 후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군인과 선원 등 570명 외에 신대륙에서 약탈한 금은보화를 가득 싣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 <콜레라 시대의 사랑>에 산 호세호의 침몰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문제는 돈이다. 산 호세호에 실린 보물의 가치는 물경 170억달러(약 20조원)다. 미국의 인양 회사 SSA는 ‘산 호세 호 인양 펀드’를 모아 30여년간 탐사작업을 계속하다 잭폿을 터뜨렸다. 2015년 11월 보물선의 정확한 위치를 찾아낸 것이다. 흥분한 콜롬비아 대통령이 곧바로 공식 기자회견을 열었을 정도였다. 산 호세 호의 보물은 현재 SSA, 콜롬비아 정부 그리고 배의 원주인인 스페인 정부 사이에 소유권 분쟁 혹은 협상이 진행 중이다. 카리브해에는 산 호세 호 이외에도 여러 ‘보물선’이 더 묻혀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가슴 설레게 하는 황금 보물선 이야기, 조선은행 금괴 200t은 어디로 갔을까
동양의 보물선 신화 ‘야미시타 골드’
동양의 대표적인 보물신화는 ‘야마시타 골드’다. 2차 대전 패망 전 일본은 한때 한반도, 만주, 대만, 중국 일부, 동남아 대부분, 태평양 섬들의 상당수를 점령했다. 그리고 모든 지역에서 공개적으로 금과 보물을 징발했다. 1920~1930년대 한반도 전역에서 금광 개발 붐이 인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1935년 김유정이 발표한 소설의 제목도 <금 따는 콩밭>이고 같은 해 계용묵이 쓴 소설 <백치 아다다>에서도 아다다의 첫 남편이 광산 투기로 떼돈을 벌어 아다다를 버린다.
하지만 종전 후 일본이 모은 금괴가 모두 사라졌다. 동남아에서 수집한 모든 금을 필리핀으로 운송하고 주둔 사령관 야마시타 도모유키의 지휘 아래 ‘모처에 묻었다’는 소문이 떠돌 뿐이었다. 소문이 사실로 확인된 시점은 1970년대다. 도로 건설을 위해 땅을 파다 구덩이가 발견되었고, 그 안에서 일본이 묻은 ‘금괴’가 나왔다. 천문학적 규모의 백금이었다. 당시 마르코스 대통령의 장기 집권을 가능케 한 자금이 여기서 나왔다는 것이 정설이다. 금괴의 소유권을 두고 미국에서 재판이 열렸고 그 과정에서 야마시타 골드에 대한 수많은 ‘소문’이 사실로 확인되었다. 보물창고 혹은 구덩이는 필리핀 각지에 모두 175개가 만들어졌으며 황실의 둘째 왕자인 지치부 야스히토가 총책임자였다는 것, 공사 완공 시점은 1945년 6월이라는 것, 공사에 동원한 엔지니어들을 사고를 가장해 살해했다는 것 등이다.
일제시대 금괴 200t이 부산에?
문제는 한반도의 보물이다. 조선은행 지하에 금괴 200t이 있었는데(지금 시세로 환산하면 몇 조원에 해당하는 천문학적 금액이다) 일본의 패망 후 열어보니 금고가 텅 비어 있었다는 소문부터 금을 싣고 비밀리에 부산에서 일본으로 출항하던 선박이 미국의 폭격을 받고 대한해협 어딘가에 침몰했다는 전설도 있다.
1980년대 초에는 ‘비밀 수장고’처럼 보이는 시설이 공사 중 우연히 발굴된 적이 있다. 방송 및 신문기자들이 모인 가운데 부산시 공무원이 철문을 열고 안으로 진입했으나 내부가 텅 빈 요인대피용 방공호여서 구경꾼들을 실망시켰던 사실도 있다. 일본이 패망 직전에 한반도에 있는 금을 모두 갈무리해 숨겨두었던 곳이 부산시 문현동이라는 구체적(?)인 풍문도 있는데, 이 풍문을 사실로 믿고 평생동안 탐사를 진행하는 인물만도 여럿에 이른다. 팩트는 있다. 패전을 감지한 일본 수뇌부가 1944년 말부터 중국과 한국에 있는 보물을 일본 본토로 운반하는 작전을 수행했다는 사실이다. 작전명은 ‘황금백합작전(黃金白合)’ 일본어로는 긴노유리라는 극비리의 공작이었다. 각지에서 순차적으로 도착한 보물을 일본으로 실어 보냈던 항구도 부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