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측보도가 난무하고 인권이 짓밟히는 현실에 격분하는 카타리나
우리는 진실을 가려낼 수 있나
4일 만에 살인자가 되다우리는 진실을 가려낼 수 있나
1974년 2월 20일 저녁 6시 45분 경, 카타리나 블룸은 무도회에 참석하기 위해 집을 나선다. 4일 후 그녀는 거의 같은 시각에 형사 주임 발터 뫼딩의 아파트를 찾아가서 “신문기자 퇴트게스를 사살했으니 나를 체포하라”고 말한다. 7시간 동안 시내를 방황했으나 어떠한 뉘우침도 떠오르지 않았다면서. 27세의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 왜 단 며칠 만에 살인자가 되었을까.
가정경제학교를 졸업한 카타리나 블룸, 깔끔하고 정직하게 살림을 대행하는 가정관리사이다. 오전 7부터 오후 4시30분까지 정기적으로 일하고 퇴근 후에는 다른 집에 가서 두 시간씩 일한다. 주말에도 리셉션, 파티, 결혼식, 무도회, 상점 등 부르는 곳이 많아 바쁘다. 요리사로 가정관리사로 단순한 급사로 쉬지 않고 일해 자신의 아파트와 차를 장만했으며 병든 어머니에게 매달 생활비를 보낸다.
이혼녀인 그녀에게 유혹이 많지만 끄떡도 하지 않는다. 어느 날 무도회에서 만난 괴텐에게 한 눈에 반했고, 그와 자신의 아파트로 간다. 다음날 정문이 아닌 다른 곳으로 나갈 수 있도록 도운 그 남자는 하필이면 경찰이 1년 넘게 추적해온 살인강도 용의자였다.
27세의 아름다운 여성과 범법자, 흥미로운 먹잇감을 발견한 퇴트게스 기자는 1면에 카타리나의 대형사진과 함께 갖가지 추측을 쏟아놓는다. 그동안 카타리나 집에 들른 ‘신사 방문객’들에 대한 의문을 표하고, 카타리나가 오래전부터 괴텐과 관련이 있었다고 단정하면서 고인이 된 아버지, 병석의 어머니, 감옥에 있는 오빠, 이혼한 남편까지 세상 앞에 낱낱이 드러낸다. ‘겨우 27세의 가정부가 자기 힘으로 비싼 아파트를 분양받고 차를 몰고 다니는 게 가능하냐’는 비아냥을 지면에 옮기고, 카타리나 주변사람들의 말을 교묘하게 각색해서 기사에 인용한다.
거짓말로 가득 찬 선동적인 내용이 계속 이어지자, 독자들은 전화를 걸거나 편지를 보내 카타리나를 성적으로 조롱한다. 급기야 퇴트게스가 페인트공으로 위장해 병실에 침입한 이후 카타리나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는 일까지 발생한다.
카타리나는 사실과 다른 기사를 마구 써대는 데다 어머니까지 갑자기 죽자 직접 인터뷰를 결심하고 기다리지만 퇴트게스는 나타나지 않는다. 카타리나가 아파트로 돌아온 후 초인종이 울리고, 집으로 찾아온 퇴트게스가 성희롱 발언을 하며 손을 대자 카타리나는 결국 권총을 발사한다.
나만의 관점을 가지라
3장에 미리 퇴트게스 살해 사실을 밝힌 뒤 경찰 심문 과정, 기사가 왜곡되는 상황, 괴텐을 피신시킨 이유와 방법, 권총을 습득하게 된 경위, 주변 사람들의 반응 등등이 보고서 형태로 58장까지 이어진다.
이 작품은 초판 10만부가 순식간에 팔리고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되는 등 사회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킨 베스트셀러이다. 1971년 최대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독일의 <빌트>지가 일련의 폭력사태를 바더 마인호프의 소행이라고 추측보도 한 일이 있었다. 하인리히 뵐이 ‘편파적이고 선동적’이라고 비판하자 <빌트>지가 한 달 이상 뵐을 공격했다. 이 과정에서 뵐은 아나키스트 옹호자라는 비난을 받으며 심적 고통을 겪었고, 그때 경험을 살려 <카타리나 불룸의 잃어버린 명예>를 집필해 1974년에 발표했다. 이 작품의 부제는 ‘언론의 폭력은 어떻게 일어나며,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가?’이다.
사건이 터지면 수많은 매체들이 경쟁적으로 보도를 쏟아낸다. ‘사실’을 캐내는 과정에서 ‘추측’이 난무하고 개인의 인권은 무참히 짓밟힌다. 사실과 거짓이 마구 뒤섞여 발가벗겨지는 카타리나, 독자들의 알 권리라는 명목 하에 무차별 보도를 일삼는 퇴트게스, 두 사람의 입장을 다 생각하며 읽어보라. ‘비인간이어도 인간적이어야 하는가?’라는 퇴트게스의 반문, 기자를 사살한 후 ‘후회도 없고 유감도 없었다’는 카타리나, 그 간극을 좁혀질 수 없는 걸까?
중간 중간 수록된 기사를 통해 어떤 식으로 사실이 왜곡되고 선정적으로 변색되는지 살펴보라. 불리한 위치에 처하면, 일일이 설명할 수 없는 순간들은 결국 범죄구성 요건이 된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수많은 보도가 쏟아질 때 정확한 관점을 갖고 사실과 진실을 가려내는 눈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