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기 50년 초장기 국채 발행…금리 연 1%대로 이탈리아·프랑스보다 낮아
"국가 신인도 제고 기대" vs "우리 경제의 장기 전망이 어둡다는 뜻"
◆ 50년 만기 국고채 발행"국가 신인도 제고 기대" vs "우리 경제의 장기 전망이 어둡다는 뜻"
만기 50년짜리 국고채가 발행됐다. 12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11일 신규 발행된 국고채 50년물 규모는 1조1000억원, 발행금리는 연 1.574%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2014년 이후 만기 50년 이상 국고채를 발행한 국가는 우리나라를 포함, 10개국에 그친다. -10월 12일 연합뉴스
정부가 만기가 무려 50년인 채권(국고채) 발행에 성공했다. 50년 뒤에 빚을 갚는 조건으로 민간으로부터 돈을 빌리는 데 성공한 것이다. 정부가 발행한 채권 중 만기가 가장 길다. 이전까지 만기가 가장 긴 국채는 30년이었다. 그런데 50년 동안이나 돈을 빌리는데도 이자는 연 2%도 안된다. 채권과 국채란 무엇이고, 국고채 50년물(物·물은 만기를 의미함) 발행은 어떤 의미를 갖는 걸까?
채권과 국채
채권(bond·債券)이란 기업이나 금융회사, 국가, 지방자치단체 등이 사업 등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돈을 빌리면서 그 돈을 빌렸다고 발행해주는 증서다. 쉽게 얘기하면 일종의 차용증이다. 채권은 보통 이자가 얼마고 언제 지급하며, 원금을 상환하는 날짜는 언제인지가 확정돼 있다. 이자율(금리)은 대체로 만기가 짧을수록, 채권을 발행해 돈을 빌리려는 기업들의 신용도가 높을수록 낮게 책정된다. 돈을 빌려주는 쪽에서 보면 떼일 우려가 적기 때문이다.
채권의 종류는 다양하다. 원금 상환기간을 기준으로 하면 △만기가 1년 이하인 단기채 △2~5년인 중기채 △5년 이상인 장기채로 구분한다. 또 발행주체에 따라 크게 △중앙정부가 발행하는 국채 △지방정부(지방자치단체)가 발행하는 지방채 △한국전력 같은 공기업이 발행하는 특수채 △일반 기업이 발행하는 회사채 △금융회사가 발행하는 금융채 등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지방채와 특수채를 합쳐 공채라고 한다. 따라서 국공채라고 하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이 발행하는 채권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국채는 정부의 지출이 세수(조세 수입)를 초과하는 경우 발행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발행되고 있는 국채에는 국고채권(나라의 금고를 채우기 위한 채권), 재정증권(정부가 일시적으로 부족한 국고금을 조달하기 위해 금융시장에서 발행하는 유가증권), 국민주택채권(국민주택 건설을 위해 발행되는 채권), 물가연동국고채(금리가 물가 변동에 따라 바뀌는 국채) 등 크게 네 종류가 있다. 원화 환율 안정 자금 마련을 위한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도 국채다.
“국가 신인도 올라갈 것”
우리나라에서 처음 국채가 선보인 것은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1949년 12월에 발행된 건국국채다. 나라를 세우는 데 필요한 자금을 모은다는 뜻에서 건국국채라는 이름이 붙었다. 현재 발행되는 국고채는 이번의 50년물을 포함해 3, 5, 10, 20, 30, 50년 등 여섯 종류다.
정부 부처 가운데 나라살림을 맡은 곳은 기획재정부다. 따라서 국고채 50년물 발행 주체도 기획재정부가 된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 11일 새로 발행된 국고채 50년물(만기 2066년 9월10일)은 총 1조1000억원 규모다. 이 국고채를 산 곳은 국민은행과 대신증권, 미래에셋증권, 현대증권 등 10개 금융회사다. 이렇게 10개사가 사들인 국고채 50년물 가운데 1조원가량은 국내 보험사와 연기금에 다시 팔렸고, 나머지 1000억원가량은 국내 채권 딜러 등이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정부는 파악하고 있다. 외국인들은 사지 않았다.
이자율(발행금리)은 연 1.574%로 결정됐다. 이는 발행 당시 10년 만기인 국고채 금리(1.534%)보다 4bp(0.04%포인트) 높은 것이다. 금리의 등락 표시 단위로는 bp(basis point)가 쓰이는 데 1bp=0.01%포인트다. 정부는 초장기 국고채의 저리 발행 성공이 정부의 자금조달 능력과 부채관리 능력을 증명한 것으로 해외 투자자 사이에서도 국가신인도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도덕적 해이’와 ‘장기 저성장’ 우려도
정부가 50년 뒤에 갚아도 되는 돈을 연 1%대 이자로 돈을 빌릴 수 있다는 건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꼭 좋게만 볼 일도 아니다. 낮은 금리가 장기 디플레이션의 신호이지 않을까라는 우려 때문이다. 디플레이션(deflation)은 물가가 떨어지는데도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이다.
국고채 50년물 발행금리는 연 1%대의 저금리였다. 일반적으로 국채 발행금리는 미래의 경제 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을 반영한다. 그래서 선진국보다 경제가 빠르게 성장할 가능성이 높은 신흥국의 국채 금리는 상대적으로 높다. 그런데 올해 50년 국채를 발행한 나라 중 이탈리아가 연 2.85%의 금리로 발행했고, 프랑스(1.75%), 스페인(3.45%)이 50년물을 내놓았다. 우리나라 국채 금리가 가장 낮다. 박종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국채 금리가 연 1.5%라는 것은 앞으로 50년 동안 기대수익률이 평균 연 1.5%에 불과하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모든 경제 주체가 앞으로 우리나라가 저(低)성장이 불가피할 것으로 생각한다는 신호라는 뜻이다.
게다가 이번에 발행된 50년 국채 금리는 10년 만기 국채금리보다 겨우 0.04%포인트 높았다. 10년을 빌리나 50년을 빌리나 이자가 거의 같다는 뜻이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국채 10년물과 50년물 간 금리가 거의 차이가 없다는 건 한국의 장기적인 경제 침체 가능성을 반영한 것”이라고 전했다.
초장기 국채 발행의 또 다른 문제점은 장기채를 통한 손쉬운 재정확충이 정부의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함부로 빚을 내 급하지도 않은 곳에 쓸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특히 선거를 앞둔 정부라면 이런 유혹에 빠지기 쉽다. 이 같은 도덕적 해이는 자칫 치명적 결과를 부를 수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성장률 하락세가 이어지고 복지비용과 정부 빚에 따른 이자 지출이 급증하면 2036년께 나라가 부도(디폴트)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