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재 박사의'그것이 알고 싶지?'
"미친 놈! 전선이 없는데 통신 된다고?"
정신나간 아이디어가 세상을 바꿨다
어떤 발명품은 인류의 생활패턴 자체를 바꿉니다. 기술 혁신이 문명사적 전환으로 이어지는 경우입니다. 굴리엘모 마르코니(1874~1937)가 발명한 무선통신도 그중 하나입니다. 당대인들은 이 아이디어를 ‘정신 나간 짓’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아이디어를 적은 마르코니의 편지를 받고, 당시 이탈리아 체신청 장관은 ‘마르코니를 룬가라로 보내라’고 기록했습니다. 로마 룬가라 거리에는 정신병원이 있었습니다. 1897년에는 영국 왕립학회 켈빈 경(卿)이 ‘무선통신에는 미래가 없다’고 단언합니다.
정열의 사나이 마르코니"미친 놈! 전선이 없는데 통신 된다고?"
정신나간 아이디어가 세상을 바꿨다
마르코니는 정열적인 사람이었습니다. 포기를 몰랐습니다. 전파를 ‘발견’한 독일 물리학자 하인리히 헤르츠가 1894년에 사망합니다. 그의 추도기사를 읽으며 마르코니는 무선통신을 연구하리라 결심했답니다. 그해 여름, 마르코니는 버튼을 누르는 것만으로 반대편 벽에 달린 벨을 울리는 실험을 합니다. 숨은 전선의 유무를 확인한 뒤 부자였던 마르코니의 아버지가 실험비용을 지원합니다. 유일한 후원자였던 셈이지요.
1895년 무선통신장치 완성, 1896년 3㎞ 무선통신 성공(겨울이었습니다. 마르코니가 보낸 무선교신 내용을 받아 적은 누군가가 3㎞ 밖 수신 지점에서 단숨에 뛰어와 실험 성공을 알렸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1897년 무선회사 설립, 1899년 영국 남서쪽 콘월과 프랑스 사이의 도버해협을 가로지르는 통신에 성공합니다. 1901년 영국에 높이 45m의 기둥을 두 개 세운 안테나를 만들고, 11월 미국으로 건너가 안테나를 설치합니다. 12월12일 영국에서 발신한 전파를 2900㎞ 떨어진 미국에서 수신하는 ‘기적’을 보여줍니다(통신 내용은 ‘S’라는 한 글자였습니다. 여담입니다만 ‘떴다 떴다 비행기’라고 우리가 부르는 동요 Mary had a little lamb은 에디슨이 축음기를 만들고 실험실에서 최초로 녹음한 노래입니다. 시작은 늘 소박합니다).
최초의 대서양 횡단통신
1903년 영국 왕 에드워드 7세와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모스부호 교신은 최초로 대서양 횡단 실시간 무선통신 ‘대화’였습니다. 1912년 4월, 타이타닉호 침몰 소식을 인근을 항해하던 선박들에 알려 인명을 구한 것도 무선통신입니다. 마르코니는 타이타닉호의 ‘유명인사 무료탑승’ 초대장을 받았지만, 일정상 사흘 먼저 다른 배를 이용해 화를 면했다고 합니다. 타이타닉호 사고 당시, 72시간 동안 혼자 기지국을 지킨 데이비드 시노프도 기억해야 합니다.
마르코니 덕분에 인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를 통해 정보를 빠르고 정확하게 그리고 광대한 지역에 전달하는 일이 가능해졌습니다. 신호나 정보를 보내려면,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 사이에 전선을 연결해야 한다는 것이 당대의 상식이었습니다. 산 넘고 물 건너 골짜기를 가로질러 전신주를 세우고 그 사이를 전선으로 연결하는 경우의 시설물 설치비 및 유지보수비와, 무선으로 통신이 가능한 경우를 비교해 보십시오. 핵심은 정보의 유통비용이 획기적으로 줄어들었다는 것입니다. 값이 싸지면 정보와 뉴스의 소비자가 늘어납니다. 특정 소수의 지식인이 아니라 일반 대중 모두가 정보와 뉴스를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시노프는 무선통신을 오락의 매개체로 활용한 최초의 인간입니다. 무선통신으로 보낸 정보를 누구 한 사람이 받을 수 있다면, 동일한 주파수를 사용하는 10명, 100명, 1000명이 같은 정보를 종시에 받을 수도 있다는 발상에 눈을 뜬 것입니다. 축음기 음악을 녹음해서 발신하자는 것이 시노프의 아이디어였습니다. 역시 당대의 반응은 부정적이었지요. ‘들을 사람을 특정하지 않은 메시지를 돈을 내가며 들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 그의 아이디어는 1920년대에 비로소 빛을 봅니다. 라디오의 탄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