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과 경제의 만남 (92)
[직업과 경제] 초고령화 사회에서 주목할 직업…은퇴설계사
최근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당면 과제 중 하나로 고령화 문제를 꼽는 데 주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관련 분야 전문가 및 언론은 물론이고 일반인들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고령화가 우리 사회의 주요 담론 대상이 됐지만 많은 사람이 고령사회·고령화사회·초고령사회 등의 용어가 명확히 구분되는 용어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혼용해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고령화와 관련한 용어를 정확히 알고 구사하는 사람은 아직까지 많지 않은 듯하다.

국제기구를 비롯한 많은 국가는 인구를 나이에 따라 크게 세 그룹으로 구분하고 있다. 먼저 0~14세까지 인구는 유소년인구로 분류한다. 이들 유소년인구는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노동력을 제공하기 어려운 대상으로 평가하고 있다. 다음으로 15~64세 인구는 생산가능인구라고 부른다. 이들을 생산가능인구라 부른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생산가능인구는 실질적으로 해당 국가의 경제활동에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다음으로 65세 이상 인구를 고령인구라고 부른다.

박정호 KDI 전문연구원
박정호 KDI 전문연구원
이런 인구 구분 기준을 바탕으로 UN은 고령화사회·고령사회·초고령사회를 구분하는 기준을 제시했다. UN에 따르면,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7% 이상이면 해당 국가를 고령화사회로 분류한다. 또한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다시 20% 이상까지 올라가면 해당 국가를 후기고령사회 또는 초고령사회로 구분하고 있다. 현재 많은 국가가 UN에서 제시하는 기준을 준용해 자국의 상황을 진단하고 있다. UN의 분류체계는 국가마다 놓인 특수성으로 인해 모든 국가에 적합한 분류 기준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국가에서 UN의 분류 기준을 표준으로 삼아 쓰는 이유는 자신들이 처한 상황과 주변 국가와의 비교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역시 노동법 등에서 UN의 분류 기준을 준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UN이 이처럼 고령화를 진단하는 세부 분류 기준까지 제시하며, 이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고령화 문제가 비단 우리나라만 직면한 문제가 아니라 전 지구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전 지구적 고령화 추세는 의료기술 발달로 인해 기대수명이 연장된 반면 출산율은 둔화된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세계 평균 기대수명의 경우 1960년 54.1세였지만 2007년에는 79.6세로 크게 증가했다. 반면 출산율은 급격히 떨어져 1950년과 1965년 베이비붐 시기의 출산율은 5.7명이었지만, 2008년 이후 연평균 약 1.2명으로 크게 줄었다.

고령화 추세는 여러 사회적 문제임은 분명하나 신종 직업의 출현을 야기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그것은 고령화사회를 대비하기 위한 다양한 수요가 생기면서 이런 수요에 부응하기 위한 다양한 재화와 서비스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최근 금융 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이 은퇴설계사 내지 생애설계사다. 은퇴설계사는 은퇴 후의 삶에 대한 재무적 계획을 중심으로 해 비재무적 계획도 함께 설계해주는 전문가를 말한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의료 기술의 발달로 기대수명이 점차 길어져 이제는 그야말로 100세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하지만 이와는 대조적으로 경제활동을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기간은 잔존 기대수명 대비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추세다. 50대 초반이 되면 은퇴하는 직장인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이슈는 은퇴 이후의 삶을 어떻게 안정적으로 설계하느냐는 삶을 행복하게 영위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이슈라 할 것이다. 은퇴설계사 내지 생애설계사에 주목해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은퇴설계사 내지 생애설계사라는 직업이 아직까지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아, 해당 직업에 대해서도 편견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은 듯하다. 먼저 은퇴설계사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은퇴설계사로부터의 도움은 은퇴 이후부터 받아야 한다는 착각이다. 일반적으로 선진국의 경우 은퇴설계사의 업무 시작 시점은 30~40대 은퇴 이전부터 시작하거나 심지어 청소년기부터 시작하기도 한다. 즉, 안정적인 은퇴 설계를 위해서는 청소년 시기의 진로 선택과 사회생활 과정에서 경력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현재 국내외 은퇴설계사 관련 자격증 내지 교육 과정에서는 경력 관리 및 개발에 대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은퇴설계사에 대한 또 다른 오해는 은퇴설계사는 단순히 재무적인 측면만을 다룬다는 것이다. 은퇴 시점에 안정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느냐는 건강 문제와 직결돼 있다. 건강에 문제가 생길 경우 진료비 내지 치료비 등 추가적인 경제적 지출이 요구되기 때문에 건강문제는 재무적인 문제와도 직결된다. 따라서 은퇴설계 과정에서 건강은 가장 중요한 고려 요인이다. 이런 이유로 은퇴설계사들은 건강에 대한 다양한 관리 프로그램 등을 함께 서비스하는 방법을 구축하고 있다.

우리가 꿈꾸는 은퇴생활은 건강한 상태로 화목한 가정, 즐거운 여가생활 등을 함께 누리기 위함이다. 다시 말해 은퇴설계사에게 도움을 받고자 하는 이유는 단순히 자연스러운 소득 감소에 대비하기 위해 저축과 절약에 대한 컨설팅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은퇴설계사가 구축해야 할 업무 범위 역시 이에 부합하는 형태가 돼야 한다. 현재 은퇴설계사로 활동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 중에는 가족 및 사회관계 설정과 여가생활 및 취미 생활 코칭 등이 모두 포함돼 있다.

많은 사람이 국내에서 은퇴설계에 대한 서비스를 금융회사들로부터 받고 있다. 금융회사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금융상품과 연계돼 있는 은퇴 관리 프로그램을 통해 은퇴 설계 서비스를 받고 있다. 은퇴설계 관련 전문교육 역시 금융회사의 사내 교육을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

하지만 점차 개인적으로 은퇴설계 전문가로 활동하고자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은퇴설계사로 활동하기 위한 별도의 국가 공인 자격증은 없는 상황이다. 다만 은퇴설계에 대한 사회적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다양한 민간 교육 프로그램이 구축돼 있고, 이러한 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사람도 점차 그 수가 증가하는 추세다. 이러한 추세로 볼 때 머지않아 은퇴설계사라는 직업이 우리에게 더 이상 생소한 직업이 아닌 세상이 곧 다가오지 않을까 생각된다.

박정호 < KDI 전문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