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과 경제의 만남 (78)
도시가 형성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에 경제원리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도시의 탄생은 생산활동의 변화에서 기인한다. 과거 원시시대에 자급자족하며 살아가던 시절에는 굳이 함께 모여 살 필요가 없었다. 엄밀히 말하면 함께 모여 살면서 도시를 형성할 경우 오히려 경제적 손실만 더 커질 가능성이 높았다. 모여 살면 도난의 위험성도 그만큼 더 커질 뿐만 아니라 위생상의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또한 땅값이 상승하기 때문에 거주비용이 추가로 발생하거나 농산물 생산에 투여된 비용이 늘어나 오히려 자급자족마저 어려워지는 경우도 발생한다. 따라서 자신이 필요한 물건을 스스로 조달하며 살아가는 경제시스템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모여 사는 것은 이익보다 비용이 더 많이 유발되는 행위였던 것이다.하지만 신분제도의 등장과 함께 신분과 출신 지역에 따라 다른 경제활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그 과정에서 직업의 전문화 내지 분업화가 등장하면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각 개별 경제주체들은 각자 특정 생산활동에만 전념하기 시작했고, 이런 전문화를 통해 추가로 얻은 잉여생산물을 다른 사람들과 교환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훨씬 풍요롭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과정에서 서로 간의 생산물을 교환하며 살기 위해서는 함께 모여 사는 것이 훨씬 편리했다. 다시 말해 많은 사람이 함께 모여 사는 것이 교환경제 하에서는 거래비용을 낮춰 비용보다 혜택이 더 많은 상황으로 변했던 것이다. 세계 인구 절반 이상 도시에 거주
가장 초창기 도시라 할 수 있는 4대 문명은 이런 과정을 거쳐 형성된 것이다. 이후 인간의 주거지는 도시화로 귀결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 인구 대부분이 도시에 살고 있다.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 살고 있으며, 매달 500만명에 가까운 인구가 도시를 향해 이주하고 있다. 이런 추세를 감안할 때, 머지않아 도시는 우리 인류의 보편적인 거주 지역이 될 것이다.
이상에서 열거한 바와 같이 인간의 주거 문화가 좁은 공간에서 함께 모여 살아야 하는 방식으로 전개되면서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주거방식, 주거문화, 법과 제도 등이 연이어 수립되기 시작하였다. 그 중 하나가 공동주택이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공동주택이란 여러 가구가 한 건축물 안에서 각각 따로 생활을 할 수 있게 설계하여 지은 큰 집을 지칭한다. 대표적인 공동주택 형태 중 하나가 아파트다. 과거 1970년대와 80년대에는 단독주택 비중이 전체의 약 90% 이상으로 대표적인 거주 형태를 차지한 바 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대대적인 주택 공급 확대 정책 추진으로 고층 아파트 공급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단독주택 비중은 점차 감소했다.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국내 주택유형별 구성비는 아파트가 전체의 60% 수준이고, 단독 및 다가구 주택이 27.3% 선이며, 다세대 연립이 12.6%에 이른다. 이런 통계 결과는 전체 거주 방식 중 공동주택 비중이 80%에 이르는 절대적인 수준임을 알 수 있다.
韓, 아파트 60% 단독 주택 등 27%
이처럼 공동주택에 거주하는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이들 공동주택과 관련된 다양한 직업이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그 중 하나가 주택관리사다. 주택관리사란 공동주택의 운영 관리 유지 보수 등을 시행하고 이에 필요한 경비를 관리하며, 공동주택의 공용부분과 공동소유인 부대시설 및 복리시설의 유지·관리 및 안전관리 업무를 수행하는 자를 말한다.
주로 수행하는 업무로는 공동주택을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공동주택 입주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공동주택의 운영 관리 유지 보수 등을 시행하고 이에 필요한 경비를 관리하며 공동주택의 공용부분과 공동 소유인 부대시설 및 복리시설의 유지 관리 및 안전관리를 시행하는 등 주택관리서비스를 수행한다.
현행법상 300가구 이상 500가구 미만의 공동주택은 주택관리사 또는 주택관리사보를 배치해야 한다. 500가구 이상일 경우에는 주택관리사만 근무할 수 있다. 300가구 미만이지만 150가구 이상으로서 승강기가 설치되어 있거나, 중앙난방방식의 공공주택은 관리사무소장으로 주택관리사나 주택관리사보를 배치해야 한다. 주택관리사 중 약 40%가 아파트 관리소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정년 없이 근무가능한 주택관리사
현재 주택관리사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국가에서 시행하는 관련 자격증을 취득해야 한다. 이를 주택관리사보 시험이라 한다. 주택관리사보 시험은 1차와 2차로 구분되어 있으며, 객관식으로 진행되는 1차 시험은 주택 관리에 필요한 필수 지식인 민법, 회계원리, 공동주택시설개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관식, 객관식 혼합 형태로 구성된 2차 시험의 경우에는 공동주택관리를 위한 세부 지식에 해당하는 주택관리 관계 법규와 공동주택 관리 실무로 구성되어 있다. 주택관리사보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1차와 2차 시험 모두 각 과목당 40점 이상, 평균 60점 이상을 획득해야 한다. 현재 연평균 합격생 수는 2000명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시험을 통해 주택관리사보 시험에 합격한 사람이 주택관리 관련 실무 경력을 인정받으면 별도의 시험 없이 주택관리사가 될 수 있다.
주택관리사보는 연평균 2만명 내외의 응시 규모를 보일 만큼 많은 사람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이는 주택관리사보가 정년이 따로 없기 때문에 중장년층 중 재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관심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많은 중장년층이 재취업을 준비하기 위해 다양한 자격증을 취득하고 있다. ‘국가기술자격 통계(2014년)’에 따르면 50대 이상 국가기술자격 취득자의 비율은 2011년 전체 4.6%에서 2012년 7.3%, 2013년 8.8%로 꾸준히 상승하고 있는데, 이 역시 중장년층이 재취업을 위해 자격증을 취득하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대목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자격증이 주택관리사보이다. 최근 시행된 주택관리사보 자격검정 시험의 경우 40~50대 합격자 비율이 전체 응시자의 80%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경제적인 유인으로 인해 형성된 도시와 그 속에서 대표적인 거주 형태로 발돋움한 공동주택, 그리고 이런 시장 상황의 변화로 인해 태동한 공동주택관리사라는 직업을 생각할 때, 하나의 직업이 태동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요인은 역시 경제원리가 아닌가 생각된다.
■경제적 유인(incentive)
처벌 가능성이나 보상과 같이 사람이 행동하도록 만드는 그 무엇을 의미한다. 합리적인 사람은 어떤 행동을 하고자 할 때 그 행동에 따른 이득과 비용을 비교해서 의사결정을 하기 때문에 경제적 유인에 반응하는 것이다. 마부가 말을 잘 다루기 위해 채찍을 사용하거나 당근을 줄 수 있다. 채찍을 휘두르거나 당근을 줄 때마다 말이 움직인다면 채찍과 당근이 유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박정호 < KDI 전문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