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과 경제] 예술가와 업무 분담하는 '큐레이터'
경제학이란 학문이 없던 시절 철학자로 활동하던 애덤 스미스가 경제학의 시초로 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게 된 이유는 그가 저술한 책 국부론의 내용 때문이다. 『국부론』의 정확한 이름은 『국가의 부의 본질과 원인에 대한 조사』이다. 이름에서도 드러나듯이 국부론의 내용은 어떻게 하면 국가의 부를 증가시킬 수 있는가에 대해 기술한 서적이다. 애덤 스미스는 국가의 부를 증가시키는 방법으로 생산의 분업화와 전문화를 꼽았다.

애덤 스미스가 국가의 부를 증대시키는 대표적인 방법으로 분업과 전문화를 꼽은 이유는, 이들이 생산의 효율성을 높이는 가장 근원적인 방식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생산 과정에서 필요한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기보다는 특정 한두 가지 업무에 특화할 경우 생산성이 더욱 높아진다. 뿐만 아니라 해당 업무에 대해서는 남다른 노하우와 지식을 축적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 이 과정에서 전문성을 갖게 된다. 사실 오늘날 개별적인 직업으로 분류되는 것들 중에는 이러한 분업과 전문화 과정을 거쳐 탄생하게 된 것들이 많다.
[직업과 경제] 예술가와 업무 분담하는 '큐레이터'
예술품 창작과 영업의 분담

큐레이터 역시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이다. 큐레이터란 미술관의 모든 일을 처리하고 수행하는 사람. 보통 학예원(學藝員)이라고 한다. 원래 근대 이전까지 큐레이터라 부를 수 있는 직업은 없었다. 과거 미술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주로 귀족과 왕족을 상대로 만들어 판매했다. 미술품을 구매할 만큼의 구매력을 갖춘 계층이 귀족과 왕족뿐이었기 때문이다. 귀족과 왕족 역시 미술가들의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자임했다. 따라서 근대 이전에는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자신의 예술품을 구매해 주는 소수 귀족들의 주문 내지 후원에 의해 예술활동을 전개해 왔으며, 미술품 거래만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사람이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근대사회로 접어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왕족과 귀족이 몰락하자 미술가들은 스스로 그림을 판매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미술가들은 작업실로 사람들을 부르기도 하고 직접 그림을 들고 다니면서 판매하기 위한 활동을 전개하기도 했으며, 작업을 거리에서 수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창작 활동과 영업 활동을 병행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미술가들은 자신들은 작품을 그리는 데 몰두하고 자신의 작품을 전문적으로 판매해 주는 사람이 필요하게 됐으며, 이것이 미술품 거래상인이 등장하게 된 배경이다.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미술에서도 분업화와 전문화가 필요해진 것이고 바로 이러한 과정을 통해 탄생한 직업이 바로 큐레이터이다.

전시품 관한 모든 책임 담당

큐레이터(curator)는 ‘보살핀다’ ‘관리한다’는 뜻의 라틴어 ‘큐라(cura·영어의 care)’에서 유래한 용어이다. 큐레이터의 어원에서도 알 수 있듯이 큐레이터의 주된 업무는 미술관 전반에 대한 관리다. 미술관에서 전시할 작품의 수집과 보존에 대한 모든 책임을 담당할 뿐만 아니라 관람객에게 해당 전시물이 제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전시 현장에 대한 부분, 작품 전시에 투여되는 예산 관리까지 수행한다. 최근에는 해외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작품을 대여해 전시회를 여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전시물의 해외 운송과 보험처리 등의 업무까지 수행하며 그야말로 ‘미술관에 대해 최종적으로 책임을 지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큐레이터가 해당 미술품을 관람객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해당 전시물에 대한 연구작업이 수반돼야 한다. 해당 작품에 대한 이해의 폭이 깊어질수록 작품 전달력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큐레이터의 업무 영역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큐레이터는 해당 작가 내지 작품에 대한 저변을 보다 넓히기 위해서 해당 분야에 문외한인 일반인 역시 작품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위한 교육 기능도 한다.

이상에서 설명한 큐레이터 업무 내용에서도 알 수 있듯이 큐레이터는 미술 분야 지식만으로는 수행할 수 없는 융복합 전문직업이다. 미술 관련 지식은 기본이며, 전시 기획 및 구성을 위한 글쓰기, 기획능력, 미술관 경영지식, 관람객을 대상으로 한 교육 등 큐레이터로 활동하기 위해 갖춰야 할 기초 역량은 다양하다.

아키비스트 등 전문·세분화

현재 우리나라는 큐레이터의 이러한 전문성을 일찍부터 인식해 1984년 제정된 박물관법 제5조 1항을 통해 큐레이터 제도의 의무적인 법적 적용을 해왔다. 그 내용을 소개하면 ‘박물관에는 박물관 자료의 수집, 보존, 관리, 전시, 조사, 연구, 기타 이와 관련되는 전문적인 사항을 담당하는 직원을 둬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해리 파커는 “현대의 미술관은 자료 전문가를 필요로 한다”고 전제하며 전문가를 훈련·양성하는 프로그램으로 미술, 미술관, 사회학 등 관련 항목을 포함한 교육 이론, 교육 관찰, 미술관 관찰, 시청각 전시 기획, 지각력, 시험과 평가, 지역 사회와 프로젝트 등을 제안한 바 있다.

최근에는 큐레이터라는 직업이 다시 더욱 세분화되고 전문화되는 추세다. 전시하는 대상에 따라 미술관 큐레이터, 박물관 큐레이터, 독립 큐레이터 등으로 구분하기도 하며, 해외 관련 업무를 주로 하는 아키비스트(기록연구사), 컨서베이터(소장품 관리), 레지스트라(작품 대여 및 구입), 에듀케이터(교육) 등으로 더욱 전문화되는 추세다.

앞서 언급한 애덤 스미스가 제시한 국부의 방법인 분업화 전문화는 오늘날에도 국가경제의 발전을 도모하는 데 있어 여전히 유효한 방식임은 당연하다. 이뿐만 아니라 경제 그외 다양한 분야에서도 전문화와 분업화를 통해 자신들의 분야를 발전시키고 있다. 큐레이터 역시 예외는 아닌 듯하다.

■ 분업화

단독으로 행하는 일을 여러 부분으로 분할해 진행하는 것을 말한다. 한 가지 물건을 만들 때, 작업과정을 여러 단계로 나눠 진행하고 그 과정에서 효율성을 높이게 된다. 분업의 이런 효과는 비교우위를 생산에 도입했기 때문에 가능하다.

■ 전문화

전문화 역시 일을 분할해 서로 다른 사람에 의해 수행되도록 한 것은 분업과 동일하다. 하지만 분업이 주로 개인이나 집단에 주어진 과제를 분할한다는 국한된 의미에서 사용된다면, 전문화는 단순히 일의 분할을 넘어 그런 과정에서 축적된 개인이나 집단, 기관만의 독특한 특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박정호 < KDI 전문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