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연합과 나부행성 전쟁
평화 중재하려던 제다이 기사단
우주선 고장나 불시착
레이스 대회의 상금과 부품 두고
고물상 주인과 거래하는데
‘스타워즈 에피소드1’ 로 본 자유무역 vs 보호무역
아주 먼 옛날 은하계 저편. 평화롭던 은하계가 분쟁에 휩싸인다. 은하계 외곽의 무역항로를 독점하려는 무역연합이 아미달라 여왕(내털리 포트먼 분)이 다스리는 나부행성의 무역로를 차단하면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은하 공화국 의회에서 제다이 기사 콰이곤(리엄 니슨 분)과 그의 제자 오비완(이완 맥그리거 분)이 파견되지만 무역연합은 이를 무시하고 나부행성을 공격한다. 1999년 개봉한 ‘스타워즈 에피소드1, 보이지 않는 위험’은 은하계의 평화를 깨는 요인을 무역분쟁에서 찾는다. 우주 평화의 수호자 제다이 기사들이 무찔러야 하는 나쁜 편은 기존 무역질서를 뒤흔드는 세력으로 묘사된다.평화 중재하려던 제다이 기사단
우주선 고장나 불시착
레이스 대회의 상금과 부품 두고
고물상 주인과 거래하는데
이런 설정은 1977년 시작된 오리지널 스타워즈 3부작(에피소드4~6)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당시 악의 축은 전체주의를 연상시키는 사악한 독재권력이었다. 에피소드1 개봉 당시 미국 영화 전문지 ‘버라이어티’는 흥미로운 영화평을 내놨다. 냉전시대 스타워즈가 미국의 적을 전체주의로 간주했다면 통상전쟁 시대에 제작된 오늘날의 스타워즈는 자유무역을 위협하는 세력을 잠재적 위협으로 설정했다는 것.
콰이곤과 와토의 첫 거래 실패 이유
에피소드1은 스타워즈 시리즈의 다른 작품과 달리 교역을 다룬 장면이 영화 곳곳에 들어있다. 우주 평화의 수호자 제다이 기사들의 첫 임무가 나부행성과 무역연합 간 무역협상을 중재하는 역할이란 점부터가 그렇다. 위기에 빠진 아미달라 여왕을 구해 공화국 수도로 향하던 콰이곤 일행이 무역연합의 공격을 받고 타투인행성에 불시착하면서 벌어진 일도 흥미롭다.
콰이곤 일행은 고장난 우주선 부품을 구하기 위해 고물상을 찾지만 고물상 주인 와토는 단칼에 거래를 거절한다. 콰이곤 일행이 부품 값을 ‘공화국 돈’으로 지급하겠다고 하자 “여기선 그런 건 안 통해”라며 타투인행성 통화인 ‘우피’로만 받겠다고 한 것.
이 장면은 국제무역에서 기축통화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기축통화는 국제무역이나 국제금융 거래의 기본이 되는 통화다. 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영국 파운드화가 그 역할을 했고, 이후에는 미국의 달러화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유럽연합(EU) 국가 간에는 유로화도 기축통화로 쓰인다. 기축통화가 없다면 국제무역이 이뤄지기 어렵다.
콰이곤과 와토에게 이익이 된 교역
난감한 상황에 빠진 콰이곤 일행이 찾아낸 희망은 포드 레이스(우주 자동차 경주대회) 우승상금. 이 돈만 있으면 우주선 부품을 얼마든지 살 수 있다. 레이스에 참가할 선수는 와토의 고물상에서 만난 노예 소년 아나킨 스카이워커(훗날 다스베이더)다. 아직 꼬마지만 콰이곤은 아나킨이 강력한 포스(스타워즈에 등장하는 신비한 힘)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한다. 하지만 레이스 참가비가 없다.
콰이곤은 와토에게 다시 거래를 제안한다. 거래 내용은 이렇다. 와토는 레이스 참가비를 낸다. 대신 와토는 아나킨이 우승하면 부품 값을 뺀 상금 전체를, 우승하지 못하면 콰이곤의 우주선을 가진다. 부품 값을 뺀 상금이나 우주선 모두 와토의 부품값보다 비싸다. 와토로선 결코 손해보지 않는 장사다. 와토는 흔쾌히 거래를 승낙한다. “정말 어리석은 친구야”라고 중얼거리며….
하지만 와토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해보이는 이 거래는 콰이곤에게도 나쁜 거래가 아니다. 어차피 우주선 부품을 구하지 못하면 타투인행성에 꼼짝없이 발이 묶이는 처지기 때문이다. 콰이곤으로선 가만히 두 손 놓고 기다리는 것보다 다소 모험을 걸더라도 레이스에 베팅하는 게 더 유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콰이곤은 와토가 눈치채지 못한 아나킨의 능력을 알고 있다. 불안해하는 오비완에게 콰이곤이 “결론은 하나야. 그 부속품 없이는 우린 꼼짝도 못해. 그리고 난 그 꼬마를 믿어”라고 말하는 이유다. 다행히 아나킨이 우승컵을 거머쥐면서 콰이곤 일행은 우주선을 수리해 타투인 행성을 빠져나온다. 콰이곤과 와토의 거래는 다소 극단적인 상황이긴 하지만 경제학 교과서는 이런 상황을 ‘자유로운 거래는 거래 당사자 모두에 이익’이라고 설명한다.
중상주의 닮은 무역연합
국가 간 교역도 마찬가지다. 나라마다 서로 경쟁력 있는 분야가 다르기 때문에 무역을 통해 모두 이익을 누릴 수 있다. 무역이 봉쇄되면 이 같은 이점이 사라지기 때문에 국민
생활은 피폐해진다. 공화국 수도에서 “국민이 죽어 나가고 있다”는 아미달라 여왕의 외침은 이런 상황을 대변한다.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맨큐의 경제학’에 “최선의 무역정책은 자유무역”이라고 썼다. 이런 자유무역론은 15~18세기 유럽에서 위세를 떨쳤던 중상주의를 비판하면서 탄생했다. 중상주의는 국부의 척도를 금·은으로 보고 국가의 금·은 보유량을 늘리는 정책을 옹호했다. 수입품에 대한 관세 부과, 수입 금지, 독점면허 부여, 국제수지 관리 등이 핵심 정책이었다. 스타워즈 속 무역연합의 무역항로 독점 시도는 이런 중상주의 정책을 연상시킨다.
반면 애덤 스미스에서 시작된 고전파 경제학은 국부의 척도를 금·은이 아니라 국민이 소비할 수 있는 생활필수품과 편의품으로 봤고 노동생산성 향상과 자유무역을 국부 증진 수단으로 인식했다. 이를 뒷받침한 게 ‘각국이 특화된 분야에 집중해 거래하면 모두에 이익’이라는 비교우위론이다. 관세 등 무역장벽이 경제적으로 손해라는 생각도 고전파에서 유래했다.
보호무역, 보이지 않는 위험?
고전파 이후 중상주의는 경제학에서 힘을 잃었지만 대신 새로운 보호무역 논리가 싹텄다. 이른바 유치산업보호론이다. 유치산업(infant industry)은 아직 걸음마 단계 산업을 말한다. 성장 잠재력이 있지만 지금 당장은 국제 경쟁력이 없으니 경쟁력이 생길 때까지 국가의 보호가 필요하다는 이론이다. 덕분에 관세 등 중상주의 정책은 계속 살아남았다.
이는 19세기 선발 공업국인 영국에 눌린 독일 미국 등 후발 공업국의 경제 논리였다. 알렉산더 해밀턴 미국 초대 재무장관이 주창했고 독일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리스트가 체계화했다. 리스트는 선진국이 보호무역으로 성장한 뒤 후발국에 자유무역을 요구하는 행태를 ‘사다리 걷어차기’라고 꼬집었다.
유치산업보호론은 1970년대 일본 한국 대만 등 아시아 신흥국이 급부상하면서 선진국에서 ‘노후산업 보호론’으로 변형돼 나타났다. 자유무역이 대세로 자리 잡은 요즘도 통상전쟁이 불거질 때마다 보호무역은 어김없이 등장한다. 선진국이든 신흥국이든 크게 다를 건 없다. 그걸 ‘보이지 않는 위험’으로 보든 말든.
주용석 한국경제신문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