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스러운 스마우그
산더미 같은 금은보화 온몸에 두르고 쌓아놔
화폐금융 마비로 경제 피폐

난쟁이들 스마우그 잡으려 엄청난 '금' 쏟아부었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가

글로벌 금융위기 대응…무제한 양적완화 정책
세계경제 활로 찾을지 관심
영화로 쓰는 경제학원론 ‘호빗:스마우그의 폐허’ 로 본 화폐의 경제학
[시네마노믹스] 무한정 '금화 찍어내던' 난쟁이족 위기에…인간 마을 교역도 금융도 모두 다 멈췄다
난쟁이족(드워프)들의 영토였던 외로운 산의 에레보르 궁전 지하에는 어마어마한 금은보화가 쌓여있다. 산 밑의 금광이 보고(寶庫)였다. 난쟁이들은 부지런히 금광을 채굴해 이를 금화나 장식으로 가공해 에레보르 주변에 사는 인간들의 마을인 ‘너른골’과 활발한 교역을 했다. ‘스로르’가 다스리던 이 왕국은 날로 번영해갔다. 하지만 거대한 붉은 용 ‘스마우그’가 에레보르와 너른골을 공격하면서 고난이 시작됐다. 난쟁이족들은 터전을 버리고 다른 나라를 떠돌 수밖에 없게 됐다.

시간이 지나 스로르의 손자인 ‘소린’(리처드 아미티지 분)이 왕가를 섬기던 12명의 가신을 모아 에레보르를 탈환하기 위한 모험에 나선다. 마법사 ‘간달프’(이언 매켈런 분)와 그가 추천한 호빗족 ‘빌보 배긴스’(마틴 프리먼 분)가 여정에 합류한다. 지난해 개봉한 ‘호빗’ 2탄은 영국의 언어학자이자 소설가인 존 로널드 루엘 톨킨의 작품 ‘호빗’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이 작품은 톨킨의 다른 소설 ‘반지의 제왕’처럼 피터 잭슨 감독에 의해 3부작 영화로 만들어졌다. 1편인 ‘호빗:뜻밖의 여정’이 개봉한 데 이어 이번에 ‘호빗:스마우그의 폐허’가 선을 보였다. 올해 마지막편인 ‘호빗:또 다른 시작’이 나올 예정이다.

난쟁이족 탐욕 위기 불러와

포브스가 지난해 가상 캐릭터들의 재산 순위를 집계한 결과 스마우그가 약탈을 통해 모은 재산은 최소 620억달러에 달했다. 압도적 1위였다. 영화에서는 궁전 지하에 금은보화가 산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게 다가 아니다. 지하 광산에서 광석을 채굴해 금화를 만들기도 한다. 난쟁이들에게 있어 이곳은 모든 재산이 보관된 곳이자 새롭게 화폐를 찍어낼 수 있는, 지금으로 치면 중앙은행인 셈이다.

[시네마노믹스] 무한정 '금화 찍어내던' 난쟁이족 위기에…인간 마을 교역도 금융도 모두 다 멈췄다
사람들이 화폐를 필요로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물건을 사기 위해서다. 아무리 많은 재산을 갖고 있어도 부동산뿐이라면 정작 오늘 점심 끼니를 걱정해야 할 수도 있다.

이 같은 이유로 화폐를 보유하려는 것을 ‘거래적 동기’에 의한 화폐 수요라고 한다.

예기치 않게 닥칠 일에 대비해 화폐를 갖고 있어야 할 때도 있다. 이는 ‘예비적 동기’에 의한 화폐 수요다. ‘투기적 동기’도 있다. 부동산 가격이나 주식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될 때는 현금을 갖고 있는 편이 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난쟁이들에게 화폐는 어떤 의미였을까. 영화에는 난쟁이 왕국을 이끌었던 스라인의 탐욕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많은 금을 채굴했고, 그로 인해 스마우그를 불러오게 됐다는 내용이 나온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난쟁이들은 거래를 위해 화폐를 갖고 있었을 것이다. 이들은 풍족한 화폐(금)를 바탕으로 인간 마을로부터 물건을 구입했다.

금화 공급 줄자 교역·금융 마비

반면 스마우그가 에레보르를 습격하고 난쟁이들을 내쫓은 것은 탐욕 때문이다. 톨킨의 세계관에서 스마우그는 신적인 존재다. 스마우그가 돈을 들고 시장에서 먹을 것을 사오지는 않을 것이다. 이 위협적인 용이 에레보르를 점령한 뒤 하는 일이라곤 산더미처럼 쌓인 금은보화를 온몸에 두르고 자는 것이 고작이다.

스마우그의 탐욕 탓에 시중에 돌아다니는 화폐량이 급감하게 된다. 요즘 표현으로 바꾼다면 외부적 요인에 의해 화폐 공급이 줄어든 것이다.케인스는 화폐시장의 균형을 통해 이자율이 결정된다고 봤다. 이를 ‘유동성 선호 이론’이라고 부른다. 이에 따르면 화폐 공급과 이자율은 반비례 관계다. 화폐 공급이 감소하면 이자율은 오르게 된다. 이자율 상승은 사회적 투자 감소를 가져오고 이는 결과적으로 국민소득 감소로 이어진다. 스마우그가 모든 화폐를 틀어쥐면서 난쟁이들은 경제적으로 궁핍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이런 영향은 꼭 난쟁이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산 아래 살고 있는 인간 역시 영향을 받는다.

난쟁이족·인간마을 생활 궁핍

너른골은 일종의 무역도시였다. 에레보르에서 나오는 금과 외부에서 생산되는 각종 물건들을 교환해주는 매개체 역할을 했다. 하지만 너른골은 스마우그가 내뿜는 거대한 불덩이로 폐허가 돼버렸다. 인간들은 너른골을 뒤로한 채 좁은 호수마을에 들어와 살게 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스마우그가 모든 돈을 틀어쥐면서 금융은 전면적으로 마비된다. 상품을 소비해주던 난쟁이들마저 사라지는 바람에 돈을 벌 기회도 차단된다.

마을 주민들이 마을에 잠입한 소린 일행을 열렬히 환영하는 것은 이들이 용을 퇴치하고 보물을 나눠줄 것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보다 더 큰 이유는 용이 사라지고 난쟁이들이 돌아오면 화폐 공급이 늘어남에 따라 국민 소득이 늘어나는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금 쏟아 붓고 돌파구 찾는데

빌보는 아르켄스톤을 찾기 위해 홀로 궁전 지하로 내려가지만 결국 스마우그에게 들키고 만다. 화려한(?) 언변으로 스마우그에게 목적을 숨기려 했으나 실패로 돌아간다. 결국 소린을 비롯한 난쟁이들과 빌보는 용을 퇴치하기 위한 싸움을 시작한다. 스마우그가 내뿜는 불꽃으로 잠들어 있던 대장간을 가동시킨 난쟁이들은 거대한 주물틀에 액체 상태의 금을 가득 채워 스마우그를 덮치도록 하는 데 성공한다. 작전이 성공했다는 기쁨도 잠시, 스마우그는 금물을 털고 다시 하늘로 날아오른다. 스마우그는 “나는 불이다. 나는 죽음이다”라고 울부짖으며 호수마을을 향해 날아가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난다.

난쟁이와 인간마을에 돌연 나타난 스마우그는, 돌이켜보면 2008년 느닷없는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것이었다. 아무도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일순 모든 것들을 초토화시키며 주변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점에서 그렇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엄청난 금을 투입하고도 스마우그 퇴치에 실패한 것 역시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무제한 양적완화를 펼치고도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는 세계 경제를 닮아있다.

스마우그와의 싸움이 어떻게 끝날지, 난쟁이들은 에레보르를 되찾을 수 있는지는 1년쯤 뒤 개봉될 제3탄에서 알 수 있겠지만 세계 경제는 내년에도 안갯속이다. 얼마 전 미국이 조그만 출구를 열어놓고 경제회생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타진하고 있지만 말이다.

이승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