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를 바꾼 사건들 (15) 1990년대 세계화·반세계화 충돌
"복지파괴·소득격차 심화"…반세계화론자들 주장 오류로
빗장 푼 개도국 국민소득, 빗장 건 나라 보다 배 이상 증가
하루벌이 1달러 미만 빈곤층도 세계화 이후 절반 이하로 줄어
“사람에게는 발이 있다. 하지만 자본에는 날개가 있다. 사람은 국경을 넘어 이동하기가 어렵지만, 자본은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씩 국경을 넘나들 수 있다. 사람이 자본을 좇아가야 하는가, 아니면 자본이 우리를 좇아오도록 만들 것인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은 그래서 중요하다.” 1990년대 세계화와 반(反)세계화 바람이 충돌하던 당시 독일 대통령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가 한 말이다. 세계화, 특히 경제와 관련된 세계화는 사람, 재화, 자본 등이 전 세계적으로 통합돼 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국내외를 이동하기는 쉽지 않다. 반면 자본은 이익이 날 만한 곳을 찾아 쉽게 이동할 수 있으며, 일자리는 자본이 터전을 잡는 곳에서 생겨난다. 그 일자리가 바로 내가 사는 지역, 내가 사는 나라에서 생겨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복지파괴·소득격차 심화"…반세계화론자들 주장 오류로
빗장 푼 개도국 국민소득, 빗장 건 나라 보다 배 이상 증가
하루벌이 1달러 미만 빈곤층도 세계화 이후 절반 이하로 줄어
사람들은 과거는 따뜻하고 안락한 반면, 현재는 차갑고 냉혹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그러다 보니 다가올 미래는 현재보다도 더 냉혹한 세상이 될 것으로 생각하며 미래의 변화를 두려워하고 거부하게 된다. 1980년대 이후 본격화된 세계화에 대한 반대도 마찬가지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공포가 반세계화로 표출된 것이다. 세계화에 반대하는 반세계화 집단은 동질적이지 않지만 특히 경제문제와 관련해서는 공통적인 왜곡과 오류를 범하고 있다.
반세계화론자들은 세계화가 각국의 복지제도와 복지혜택을 파괴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이유로 바로 앞서 언급된 자본의 이동성 및 자본을 유치하기 위한 각국의 기업하기 좋은 환경 만들기 경쟁을 들고 있다. 각국은 자본의 해외유출을 막고 해외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앞다퉈 기업에 대한 세금은 낮추는 반면, 근로자의 임금과 각종 복지혜택은 줄이는 등 이른바 ‘복지 바닥으로의 경쟁’에 돌입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기업만 살찌고, 일반 국민의 삶은 피폐해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일면 설득력 있어 보이는 이 주장은 전적으로 틀렸다. 결론부터 말하면 한 나라의 복지수준은 해당 국가 국민이 정하는 것이다. 세계화와는 무관하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한 나라의 소득은 그 나라의 생산성에 따라 결정된다. 우리의 소득 수준을 우리 마음대로 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세계 경쟁시장에서 현대자동차 근로자들의 임금이 두 배로 올라, 현대차 가격이 큰 폭으로 상승했다고 하자. 가격이 비싸진 현대차는 팔리지 않을 것이고, 근로자 임금은 다시 내려갈 수밖에 없다. 반대로 현대차 근로자들의 임금을 낮춰 차값을 내리면, 판매가 늘어나면서 근로자 임금도 올라가게 된다. 결국 현대차 근로자들의 임금 수준은 자신들의 생산성에 맞춰 결정되는 것이지, 경영자나 근로자 혹은 노조의 요구에 따라 정해지지 않는다.
이렇게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시장에서 정해지는 임금을 ‘경쟁임금’이라고 한다. 이 경쟁임금은 다시 둘로 나뉜다. 하나는 세금과 사회보장부담금으로 정부가 차지하는 몫, 즉 집단임금이고 다른 하나는 이 세금과 사회보장부담금을 제하고 남은 것으로 근로자 자신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몫, 즉 개인임금이다. 여기서 세금과 사회보장부담금이 얼마를 차지하느냐가 그 나라의 복지수준을 결정한다. 북유럽 복지국가들의 경우 세금과 사회보장부담금이 국내총생산(GDP)의 50~60%를 차지하고, 한국은 26~27% 정도 된다. 우리가 복지수준을 북유럽 수준으로 올리려면, 세금과 사회복지부담금을 지금의 2배 정도로 많이 내면 된다. 현재 내는 만큼만 낼 것인지, 아니면 더 많이 낼 것인지, 거꾸로 덜 낼 것인지는 국민이 선거를 통해 결정한다. 세계화와 복지수준은 관계가 없다는 얘기다.
세계화가 빈익빈 부익부를 초래한다는 반세계화론자들의 주장도 맞지 않는다. 1999년 유엔개발프로그램(UNDP)은 ‘인간개발보고서’에서 “1960년 부자나라 국민(세계 인구의 20%)의 1인당 소득은 가난한 나라 국민(세계 인구의 20%)의 30배였으나, 1997년에는 74배로 벌어졌다”고 해 반세계화론자들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하지만 살라 이 마틴 컬럼비아대 교수와 막심 핀코브스키 MIT대 교수는 2010년 연구보고서에서 전 세계적인 빈부격차는 세계화 이후 줄어들고 있으며, 절대빈곤층 역시 감소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즉, 전 세계 지니계수(0~1 혹은 0~100으로 나타내며, 0에 가까울수록 소득분배가 양호하다는 의미)는 1970년 67.6에서 지속적으로 감소해 2006년에는 61.2로 낮아진다. 세계화가 진전되면서 소득분배가 양호해지고 있다는 말이다. 하루 1달러(2000년 기준) 미만으로 살아가는 절대빈곤에 허덕이는 사람들의 비중도 1970년 26.8%에서 2006년 5.4%로 크게 줄었다. 1970년 4억300만명에서 1억5200만명으로, 3분의 1 수준으로 감소한 것이다.
반세계화론자들은 세계화는 선진국들만을 위한 것으로, 세계화에 동참하는 개발도상국의 경제상황은 더 열악해진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개발도상국을 세계화국가와 비세계화국가로 구분해 각각의 경제성과를 비교한 세계은행의 연구결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보여준다. 1990년대 세계화국가의 1인당 소득은 매년 5%씩 성장한 데 비해 비세계화국가의 1인당 소득은 2% 이내의 성장에 그쳤다.
세계화와 관련해 우리에게는 두 가지 길이 있다. 세계화의 거센 바람을 등에 업고 비상할 것인가, 아니면 바람을 피하기 위해 꼭꼭 숨어버릴 것인가. 반세계화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왜곡과 오류에 바탕을 둔 잘못된 주장, 기득권을 유지해보려는 꼼수에 기초하고 있다. 세계화의 흐름에 동참한 중국과 ‘자립경제’를 외치는 북한의 경제상황을 보더라도 우리가 어느 길을 택해야 할지는 자명하다.
권혁철 < 자유경제원 전략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