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인수합병(M&A) 시장에 훈풍이 불고 있다. 올 들어 지난달까지 성사된 거래 규모만 1조달러를 넘어섰다. 이 추세대로라면 올해 M&A 규모는 총 4조달러에 달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100억달러 이상 ‘메가딜’의 귀환
시장조사업체 딜로직 자료를 보면 올 들어 4월까지 전 세계 M&A 규모는 1조2000억달러(약 1230조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2% 증가했다. 피델리티자산운용은 최근 보고서에서 “올해 글로벌 M&A가 총금액 기준으로 3조7000억달러에 달하면서 2007년 이래 최대 수준을 기록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올해 M&A 시장의 가장 큰 특징은 100억달러 이상의 ‘메가딜’이 주도하고 있다는 것.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올 들어 100억달러 이상 M&A는 총 17건으로, 총 액수가 3554억달러(약 364조3000억원)에 이른다.
‘메가딜’은 2008년 52건(1조2900억달러)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한 이후 2009년 13건(3466억달러)으로 급격히 줄었다. 2012년에는 15건(2835억달러)으로 축소됐다. 올 들어 지난 4개월간 발표된 메가딜은 작년 한 해 동안의 대형 거래(15건·3415억달러)를 웃도는 수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수년간 대형 거래를 꺼렸던 글로벌 기업들이 속속 M&A 무대로 돌아오고 있다”며 “이 같은 추세는 내년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제약·정보기술이 시장 주도
간판 업종도 달라졌다. 2000년대 중반까지 대형 M&A가 에너지와 금융 분야에 집중됐다면 올해는 제약·정보기술(IT) 기업이 주도하고 있다. 헬스케어 분야 M&A 규모는 1995년 이후 최대 수준이다. 통신과 과학기술 부문 M&A 규모도 지난해보다 각각 177%와 86% 증가했다.
미국 1위 케이블 업체 컴캐스트가 올초 업계 2위인 타임워너케이블을 450억달러에 인수하고, 세계 최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기업인 페이스북이 모바일 메신저 업체인 와츠앱을 190억달러에 사들인 게 대표적이다. 스위스 제약사 노바티스와 영국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도 올해 160억달러 규모의 거래를 성사시켰다. 미국 제약사 화이자도 영국 2위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의 인수 가격을 1000억달러 이상으로 높여 잡고 추진 중이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 주가의 상승세도 M&A 열풍을 부추기고 있다. 기업들이 보유한 주식의 값어치가 크게 늘면서 올해 주식으로 인수대금을 전액 지급한 M&A 건수가 전년의 2배, 전체의 18%를 차지했다. 현금을 마련해야 하는 부담 없이 보유 중인 자사주를 활용해 인수 비용을 마련할 수 있게 되면서 기업들이 과감한 베팅에 나서고 있다는 설명이다.
중국 등 신흥국 ‘큰손’ 부상
아시아 등 신흥국이 ‘큰손’으로 떠오른 것도 최근 M&A 시장의 특징이다. 유엔무역개발협의회(UNCTAD)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경 간 M&A 가운데 신흥·개발도상국 기업이 인수자인 거래 규모는 1971억달러로 거래총액 3490억달러의 56.5%를 차지해 처음으로 선진국을 웃돌았다. 반면 선진국 기업의 비중은 1517억달러로 전년 대비 17.5% 감소했다.
특히 경제 규모로 세계 2위인 중국 기업의 M&A 규모는 올 들어 지난해보다 80% 증가했다. 중국 정부가 올 들어 기업의 해외 M&A 승인 절차를 대폭 줄이는 등 규제 수위를 낮추면서 중국 기업들의 M&A 식욕이 한꺼번에 분출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은 최근 2년간 M&A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중국 최대 육류 가공업체 솽후이는 지난해 5월 미국 육가공 업체 스미스필드를 71억달러에 인수해 주목받았다. 중국의 워런 버핏으로 불리는 궈광창 푸싱그룹 회장은 그리스 보석업체 폴리폴리, 프랑스 리조트체인 클럽메드 등을 잇따라 인수하며 식욕을 과시하고 있다.
탈세 위한 M&A 논란도
투자자들의 관점도 달라졌다. 딜로직은 “과거 20년간 M&A의 이점보다는 자금조달의 불확실성이 부각돼 인수 기업의 주가가 하락하는 경향이 컸지만 최근 그 공식이 깨졌다”며 “최근 2년간 M&A가 발표된 날 해당 기업의 주가는 평균 4.4% 상승했다”고 밝혔다.
M&A 방식에도 변화가 있었다. 기업 간 먹고 먹히는 M&A가 아니라 사업부 전환, 주식 거래 등을 통한 방식이 증가했다. 스위스 제약업체 노바티스는 GSK의 암 치료 사업 부문을, GSK는 노바티스의 독감 분야를 제외한 백신 사업 부문을 사들이는 ‘윈윈 전략’을 내놓았다. 올 들어 4월까지 현금으로만 인수대금을 지급한 거래는 전체의 47%로 2007년(76%)보다 크게 낮아졌다. 반면 현금과 주식을 함께 지급한 경우는 2007년 14%에서 올해 33%로 두 배 이상 늘었다.
한편 미국 기업들이 높은 법인세율(35%)을 피해 M&A를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M&A에 따른 통합법인을 미국보다 세율이 훨씬 낮은 영국(20%)이나 네덜란드(25%) 등 유럽 국가에 세워 합법적으로 세금을 줄이려 한다는 것이다.
빗장 더 푸는 중국…10억달러 이하 거래 M&A 심사·승인 제외
중국이 지난 19일 해외 기업 인수 관련 규제를 완화했다. 중국 정부는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의 심사와 승인을 받아야 하는 해외 인수합병(M&A) 거래액 기준을 1억달러에서 10억달러(약 1조234억원) 이상으로 상향 조정했다. 이에 따라 글로벌 M&A시장에서 중국 기업들의 행보가 더 빨라질 전망이다.
금융정보업체 딜로직에 따르면 중국 기업들은 올 들어 이미 사상 최대인 340억달러 규모의 기업 인수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210억달러보다 62% 늘어난 것이다. JP모간은 “올해 중국 기업들이 발표한 해외 M&A 104건 가운데 93건의 규모가 10억달러 미만”이라고 분석했다.
새 규정에 따르면 중국 기업들은 10억달러 미만의 해외 M&A도 규모에 따라 NDRC나 지방정부 당국에 보고해야 한다. 다만 모든 심사는 7일 안에 끝내도록 했다.
대신 중국 정부는 거래액과 무관하게 민감한 산업 부문의 해외 기업에 대한 모든 투자의 심사권한을 NDRC에 남겨뒀다. 민감한 부문이란 통신, 수자원, 대규모 토지 개발, 전력, 미디어 등이다. 또 중국과 외교관계가 없거나 국제 제재를 받는 나라나 지역, 전쟁 중인 곳의 기업 인수도 민감한 사안으로 NDRC가 심사하도록 했다.
이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은 조세회피지역으로 상당수 해외 기업이 명목상 기반을 두고 있는 버진아일랜드나 케이맨제도 등에 있는 기업도 NDRC의 심사대상이 될지는 불투명하다며 한계를 지적했다. .
김보라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destinybr@hankyung.com
100억달러 이상 ‘메가딜’의 귀환
시장조사업체 딜로직 자료를 보면 올 들어 4월까지 전 세계 M&A 규모는 1조2000억달러(약 1230조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2% 증가했다. 피델리티자산운용은 최근 보고서에서 “올해 글로벌 M&A가 총금액 기준으로 3조7000억달러에 달하면서 2007년 이래 최대 수준을 기록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올해 M&A 시장의 가장 큰 특징은 100억달러 이상의 ‘메가딜’이 주도하고 있다는 것.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올 들어 100억달러 이상 M&A는 총 17건으로, 총 액수가 3554억달러(약 364조3000억원)에 이른다.
‘메가딜’은 2008년 52건(1조2900억달러)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한 이후 2009년 13건(3466억달러)으로 급격히 줄었다. 2012년에는 15건(2835억달러)으로 축소됐다. 올 들어 지난 4개월간 발표된 메가딜은 작년 한 해 동안의 대형 거래(15건·3415억달러)를 웃도는 수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수년간 대형 거래를 꺼렸던 글로벌 기업들이 속속 M&A 무대로 돌아오고 있다”며 “이 같은 추세는 내년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제약·정보기술이 시장 주도
간판 업종도 달라졌다. 2000년대 중반까지 대형 M&A가 에너지와 금융 분야에 집중됐다면 올해는 제약·정보기술(IT) 기업이 주도하고 있다. 헬스케어 분야 M&A 규모는 1995년 이후 최대 수준이다. 통신과 과학기술 부문 M&A 규모도 지난해보다 각각 177%와 86% 증가했다.
미국 1위 케이블 업체 컴캐스트가 올초 업계 2위인 타임워너케이블을 450억달러에 인수하고, 세계 최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기업인 페이스북이 모바일 메신저 업체인 와츠앱을 190억달러에 사들인 게 대표적이다. 스위스 제약사 노바티스와 영국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도 올해 160억달러 규모의 거래를 성사시켰다. 미국 제약사 화이자도 영국 2위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의 인수 가격을 1000억달러 이상으로 높여 잡고 추진 중이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 주가의 상승세도 M&A 열풍을 부추기고 있다. 기업들이 보유한 주식의 값어치가 크게 늘면서 올해 주식으로 인수대금을 전액 지급한 M&A 건수가 전년의 2배, 전체의 18%를 차지했다. 현금을 마련해야 하는 부담 없이 보유 중인 자사주를 활용해 인수 비용을 마련할 수 있게 되면서 기업들이 과감한 베팅에 나서고 있다는 설명이다.
중국 등 신흥국 ‘큰손’ 부상
아시아 등 신흥국이 ‘큰손’으로 떠오른 것도 최근 M&A 시장의 특징이다. 유엔무역개발협의회(UNCTAD)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경 간 M&A 가운데 신흥·개발도상국 기업이 인수자인 거래 규모는 1971억달러로 거래총액 3490억달러의 56.5%를 차지해 처음으로 선진국을 웃돌았다. 반면 선진국 기업의 비중은 1517억달러로 전년 대비 17.5% 감소했다.
특히 경제 규모로 세계 2위인 중국 기업의 M&A 규모는 올 들어 지난해보다 80% 증가했다. 중국 정부가 올 들어 기업의 해외 M&A 승인 절차를 대폭 줄이는 등 규제 수위를 낮추면서 중국 기업들의 M&A 식욕이 한꺼번에 분출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은 최근 2년간 M&A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중국 최대 육류 가공업체 솽후이는 지난해 5월 미국 육가공 업체 스미스필드를 71억달러에 인수해 주목받았다. 중국의 워런 버핏으로 불리는 궈광창 푸싱그룹 회장은 그리스 보석업체 폴리폴리, 프랑스 리조트체인 클럽메드 등을 잇따라 인수하며 식욕을 과시하고 있다.
탈세 위한 M&A 논란도
투자자들의 관점도 달라졌다. 딜로직은 “과거 20년간 M&A의 이점보다는 자금조달의 불확실성이 부각돼 인수 기업의 주가가 하락하는 경향이 컸지만 최근 그 공식이 깨졌다”며 “최근 2년간 M&A가 발표된 날 해당 기업의 주가는 평균 4.4% 상승했다”고 밝혔다.
M&A 방식에도 변화가 있었다. 기업 간 먹고 먹히는 M&A가 아니라 사업부 전환, 주식 거래 등을 통한 방식이 증가했다. 스위스 제약업체 노바티스는 GSK의 암 치료 사업 부문을, GSK는 노바티스의 독감 분야를 제외한 백신 사업 부문을 사들이는 ‘윈윈 전략’을 내놓았다. 올 들어 4월까지 현금으로만 인수대금을 지급한 거래는 전체의 47%로 2007년(76%)보다 크게 낮아졌다. 반면 현금과 주식을 함께 지급한 경우는 2007년 14%에서 올해 33%로 두 배 이상 늘었다.
한편 미국 기업들이 높은 법인세율(35%)을 피해 M&A를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M&A에 따른 통합법인을 미국보다 세율이 훨씬 낮은 영국(20%)이나 네덜란드(25%) 등 유럽 국가에 세워 합법적으로 세금을 줄이려 한다는 것이다.
빗장 더 푸는 중국…10억달러 이하 거래 M&A 심사·승인 제외
중국이 지난 19일 해외 기업 인수 관련 규제를 완화했다. 중국 정부는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의 심사와 승인을 받아야 하는 해외 인수합병(M&A) 거래액 기준을 1억달러에서 10억달러(약 1조234억원) 이상으로 상향 조정했다. 이에 따라 글로벌 M&A시장에서 중국 기업들의 행보가 더 빨라질 전망이다.
금융정보업체 딜로직에 따르면 중국 기업들은 올 들어 이미 사상 최대인 340억달러 규모의 기업 인수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210억달러보다 62% 늘어난 것이다. JP모간은 “올해 중국 기업들이 발표한 해외 M&A 104건 가운데 93건의 규모가 10억달러 미만”이라고 분석했다.
새 규정에 따르면 중국 기업들은 10억달러 미만의 해외 M&A도 규모에 따라 NDRC나 지방정부 당국에 보고해야 한다. 다만 모든 심사는 7일 안에 끝내도록 했다.
대신 중국 정부는 거래액과 무관하게 민감한 산업 부문의 해외 기업에 대한 모든 투자의 심사권한을 NDRC에 남겨뒀다. 민감한 부문이란 통신, 수자원, 대규모 토지 개발, 전력, 미디어 등이다. 또 중국과 외교관계가 없거나 국제 제재를 받는 나라나 지역, 전쟁 중인 곳의 기업 인수도 민감한 사안으로 NDRC가 심사하도록 했다.
이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은 조세회피지역으로 상당수 해외 기업이 명목상 기반을 두고 있는 버진아일랜드나 케이맨제도 등에 있는 기업도 NDRC의 심사대상이 될지는 불투명하다며 한계를 지적했다. .
김보라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