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를 바꾼 사건들 (13) 1973년 1차 오일쇼크

아랍, 미국에 석유수출 중단
세계경제 혼란 불러왔지만 멕시코 등 신흥 산유국 부상
대체 에너지 개발로 이어져

자원의 무기화 정책은 장기 관점에선 부메랑 될 수도
[세계 경제사] 1973년 1차 오일쇼크, 석유를 무기화한 OPEC…세계경제 침체·물가 상승 촉발
1973년 10월 이집트와 시리아가 이스라엘을 공격하면서 제4차 중동전쟁이 발발했다. 미국은 이스라엘에 무기를 공급하기 시작했고, 아랍의 석유수출국들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미국에 대한 석유 선적을 중단했다. 이런 석유수출 금지는 아랍에 비우호적인 것으로 여겨지던 서유럽국가와 일본에까지 확대됐다. 원유 가격은 배럴당 3달러에서 12달러까지 치솟았고 세계 경제는 유례없는 경기침체와 물가상승을 경험하게 된다. 이른바 제1차 오일쇼크였다. 그리고 1979년 이란의 팔레비 정권이 와해되면서 또다시 원유 가격은 급격하게 상승하게 된다. 오일쇼크는 국가 간 정치적 갈등이나 한 나라의 정치 변동이 세계 경제에 어떤 충격을 줄 수 있는지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다.

적대적 국가에 대한 ‘선적 금지’는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다. 16세기 후반 스페인은 네덜란드와의 분쟁 과정에 영국에 대한 선적을 금지한 적이 있다. 미국은 1807년 영국과 프랑스가 전쟁 중일 때 이들 국가에 대한 선적 금지를 입법화했고, 쿠바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수출 금지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이처럼 선적 금지는 적대적 국가나 불량 국가에 대한 경제적 제재 조치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특정 국가와의 교역 중단을 무기 삼아 정치적 이해를 관철하려는 시도는 시장의 확대에 따라 나타나는 불가피한 부산물이다. 근대 들어 시장경제는 세계적 수준으로 확대돼 국가 간 교역이 증대됐다. 인류는 유례없는 물질적 풍요를 누리게 됐고 국가 간의 상호의존성은 커졌다. 이런 상호의존성은 서로에 막대한 이익을 줬지만 특히 원유 같은 에너지원이나 원자재 공급 중단이 가져다줄 수 있는 피해 규모도 확대시켰다.

일상적인 경제 거래에서는 거래의 단절이 잘 발생하지 않는다.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려면 자신의 피해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가 이익을 앞세우는 정치인의 생각은 다르다. 정치인은 국익이라는 명분과 애국심이라는 여론이 주어지면 보복을 위해 경제적 희생을 선택하기도 한다.

정치인들의 선택은 단기적으로 정치적 성공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아랍지역 국가는 제3차 중동전쟁으로 잃어버렸던 시나이 반도를 돌려받았고, 상당기간 아랍에 달러가 넘쳐났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부메랑이 돼 원유가 가진 영향력을 잃게 됐다.

[세계 경제사] 1973년 1차 오일쇼크, 석유를 무기화한 OPEC…세계경제 침체·물가 상승 촉발
미국을 비롯한 원유수입국들은 비축 물량을 늘려 단기적 충격에 대비했다. 대체 에너지개발에 대한 투자도 늘려나갔다. 뿐만 아니라 원유가격의 상승은 새로운 경쟁자를 등장시켰다. 베네수엘라 멕시코 나이지리아 등이 원유 생산량을 늘렸고, 북해와 알래스카의 원유가 새로 개발됐다. 그 결과 2차 오일쇼크가 끝난 1980년 이후 20년 동안 원유가격은 60%가량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원유 수출 금지로 촉발된 원유가격 상승은 아랍국의 단결을 오히려 와해시키는 불씨 역할을 했다. 제4차 중동전에서 원유의 무기화는 생산량을 통제할 수 있는 석유수출국기구(OPEC)라는 카르텔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런데 카르텔이 생산량을 성공적으로 통제할수록 이를 배반하려는 유인도 커졌다. 나만 몰래 생산량을 늘리면 높은 가격에 많은 양을 팔 수 있어서다. 이런 유인을 제어할 수 있었던 것은 아랍민족주의라는 대의였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 원유가격이 하락하면서 아랍국들은 부족한 수입을 메우기 위해 생산량을 늘릴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원유생산과 관련된 아랍국 간의 갈등은 결국 1990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는 계기가 됐다.

오일쇼크 이후에도 국가 간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원을 무기화하려는 시도는 가끔 등장했다. 오일쇼크의 직접적 피해 당사국인 미국도 1979년 옛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맞서 소련에 대한 곡물 수출을 금지한 적이 있다. 그리고 최근 중국은 일본 순시선과 충돌한 중국인 선원의 본국 송환을 위해 일본에 대한 희토류 수출을 제한했다. 미국의 시도는 실패했지만 중국의 시도는 성공했다. 선적 금지가 지금도 정치가들에게 여전히 매력적인 선택이 되고 있는 것은 직접적·물리적 출동을 피하면서 자국의 정치적 이익을 관철할 수 있는 수단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계 경제의 통합으로 자원 무기화의 파괴력이 커지고 있고 수출 금지는 세계 경제 발전을 위협하는 암초가 될 수 있다.

[세계 경제사] 1973년 1차 오일쇼크, 석유를 무기화한 OPEC…세계경제 침체·물가 상승 촉발
자원의 무기화에 대비해 각국은 장기 계약을 통해 자원의 안정적인 확보를 추진하고 있다. 또 주요 자원의 비축량을 늘리거나 자원개발 투자도 늘리고 있다. 그러나 국가 간의 분쟁이 심화되면 이 같은 대책도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그래서 국제적 협력을 통한 분쟁 해결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국가 간 분쟁을 조장해 표를 얻으려는 정치인까지 등장하고 있어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자원의 무기화로 단기적으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할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자원 무기화를 추진한 국가의 경제에 더 큰 손실을 초래한다는 것이 역사적 경험이다. 그리고 시장경제 확대 추세를 거스르는 국가의 생활수준이 내려간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한국 경제의 성공 스토리는 국가 간의 자유로운 교역에서 비롯됐다. 이제는 교역 확대 못지않게 분쟁 해결을 위한 국제적 협조체제에도 적극 동참해야 한다.

정기화 < 전남대 경제학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