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모든 인간은 효용을 극대화 한다"…미시경제학 지평 확대…'행동경제학의 대가' 게리 베커 잠들다
“가족에게 해가 되는 망나니 자식이라도 돈 줄을 쥐고 있는 부모가 그 경제적 인센티브를 잘 조절하면 더 이상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부모의 뜻에 협조하는 자식이 되게 할 수 있다.”

지난 3일 ‘시카고 학파의 거목’ 게리 베커 교수가 83세로 별세했다. 뉴욕타임스는 “결혼 출산과 사망 등 매일 벌어지는 생활 현상들의 원인을 밝혀내려 했던 ‘행동 경제학의 대가’가 세상을 떠났다”고 보도했다. 그는 경제학이 다루지 않았던 인종, 결혼, 교육, 범죄 등도 경제학으로 설명해 미시경제학의 지평을 넓혔다. 1992년 그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 기념 연설 제목도 ‘삶을 바라보는 경제학의 방식’이었다. 경제학의 유용성을 높인 그는 모든 인간은 편익과 비용을 계산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한다고 주장했다. “개인은 이기적이든 이타적이든, 충실하든 악의적이든 효용을 극대화 할 뿐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경제학계 일부에서는 그의 연구영역 확대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항상 논란의 중심에 있는 ‘경제학계 이단아’였다. 하지만 교육·가족·범죄 경제학이 경제학으로 자리 잡는 기틀을 마련한 것은 분명 그의 큰 업적이다.

미시경제학의 혁명가

게리 베커(1930~2014) 시카고대 교수는 미 펜실베이니아주 포츠빌의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수학에 재능을 발휘해 프리스턴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했고 시카고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컬럼비아대를 거쳐 1970년부터 시카고대에서 경제학을 가르쳤다.

그는 어려서부터 인종차별과 불평등에 관심이 많았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 주제도 특이하게 ‘차별’이었다. 소수계층에 대한 차별이 그들의 소득과 고용, 직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경제이론으로 분석했다. 이 논문이 그가 사회적 이슈에 경제학을 적용한 첫 출발점이다.

그는 노동, 인적자본, 가계, 생산은 물론 과거 경제학이 다루지 않은 주제인 인종, 결혼, 교육, 범죄까지도 경제학으로 설명하고자 했다. 그는 다양한 분야의 문제를 경제학으로 설명함으로써 경제학의 ‘영토’를 넓혔다. 그의 경제학이 ‘제국주의적’이라고 평가받는 이유다.

베커 교수는 미시경제의 분석영역을 확대한 공로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수상 당시 스웨덴 과학아카데미는 “미시경제의 분석 영역을 폭넓은 인간 행동과 상호작용으로 확대했다. 특히 사회학자들과 인구 통계학자, 범죄학자들의 전문 영역이던 인간 행동을 경제이론으로 설명했다”고 밝힐 정도로 그는 학문의 범주에 구애받지 않았다. 사회현상에 경제학 분석 방법을 적용하며 학문의 경계선을 넘나들었기에 ‘미시경제학의 혁명가’로 불리기도 했다.

결혼이론·망나니 자식 이론 등

자유 시장경제를 꽃피운 시카고 학파의 대표적 학자인 베커 교수. 그는 다양한 인간 행동이 합리적이고 만족을 극대화시키는 것으로 간주했다. 그는 인간은 편익과 비용을 계산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행동한다고 주장했다. 베커 교수는 비용-편익분석을 결혼 출산 이혼 교육 등에도 적용했다. 특히 그가 발표한 ‘결혼이론’은 이를 체계적 이론으로 정립한 학문적 진수로 평가받았다. 결혼의 결정은 결혼으로 얻을 수 있는 만족이 혼자 살아갈 때 얻는 만족보다 클 것이란 기대가 전제될 때 가능하다는 이론이다.또 부모가 가족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면 불량아도 가족들에게 이타적으로 행동하게 된다는 ‘망나니 자식이론(Rotten Kid Theorem)’ 도 발표했다. 이 이론은 가족에게 해가 되는 자식이라도 돈 줄을 쥐고 있는 부모가 그 경제적 인센티브를 잘 조절하면 더 이상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부모의 뜻에 협조하는 자식이 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학계 이단아 논란도…

그의 독특한 이론과 연구 결과는 경제학계에서는 항상 논쟁거리였다. 과거 습관적이며 비이성적인 것으로 규정됐던 다양한 인간 행위들을 이성적 원칙에 따른 경제적 동기로 설명하여 학계로부터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그의 연구영역 확대에 경제학계는 강한 의구심을 표명하거나 경제학계의 이단아 취급을 하기도 했다.

특히 모든 의사결정을 비용-편익을 따져 편익이 큰 쪽으로 결정한다는 그의 가정을 문제삼았다. 수지타산에 필요한 인간의 지적 능력, 경제적 합리성을 과대평가한다는 것이다. 오스트리아학파의 하이에크는 “베커의 이론은 현실 인간은 물론 시장 사회를 이해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는 연구 영역 확대는 고무적이나 무모한 경제학의 확장은 위험하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런 비판에도 베커 교수는 자신의 연구 방법을 더 많은 사회현상에 적용하며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나갔다. 그는 교육과 소득관계 등의 이론을 확대 발전시켜 1960년대 ‘교육경제학’의 기초를 확립했다. 경제사상에서 인적 자본의 혁명을 일으켰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또한 결혼, 범죄 등에 대한 경제연구 확대로 가족경제학 범죄경제학 등이 대학의 경제학 교육과목으로 자리 잡는 큰 기틀을 마련했다.

프리드먼…로널드 코즈…시카고 학파는 노벨경제학상 산실

20세기 이후 가장 주목받는 경제학 스쿨은 단연 시카고 학파(Chicago School)다. 시카고 학파는 미국 시카고대를 중심으로 형성된 학파로 신자유주의 이념적 토대를 형성했다. 시카고 학파는 ‘노벨 경제학상의 산실’로 불린다. 1969년 노벨경제학상이 제정된 이래 전체 수상자 74명 가운데 12명이 시카고 학파다. 시카고대 교수, 졸업생 등 시카고대와 인연을 맺은 수상자까지 합치면 24명이나 된다. ‘시카고 학파의 대부’ 인 밀턴 프리드먼이 “노벨상을 받으려면 시카고대를 나와야 한다”고 공언할 정도다.

시카고 학파 출신으로 처음 노벨상을 수상한 학자는 프리드먼(1976년)이다. 이후 1990년대 들어서는 시카고 학파가 거의 상을 휩쓸었다. 1991년 로널드 코즈를 비롯해 1992년 게리 베커, 1993년 로버트 포겔, 1995년 로버트 루카스, 2000년 제임스 헤크먼 등이 연이어 노벨상을 받았다. 2013년 노벨 경제학상 공동 수상자 3명 가운데 유진 파마 교수와 라스 피터 핸슨 교수 역시 시카고 학파다.

시카고 학파는 경제 주체가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율을 거두려는 ‘합리성’을 가진다는 것을 전제로 경제의 최적화 모형을 찾는다. 이들은 시장주의와 개인의 자유가 경제의 근간이라고 주장한다. 시카고 학파의 핵심이념은 기본적으로 ‘작은 정부, 큰 시장’이다. 정부의 시장 개입을 줄이고 자유로운 시장 환경을 만들어 기업과 개인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카고 학파가 노벨상을 휩쓴 원동력은 자유로운 사고와 철저한 비판정신이라고 한다. 수많은 경제학자들은 “시카고대 강의실과 연구실은 지성의 집합체이자 뜨거운 용광로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손정희 한국경제신문 연구원 jhs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