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글 논술 첨삭노트] (10) 논술 유형 이론- 독해 (2)
지난주에 알아본 기본적인 제시문 구조에 따른 구체적인 예시를 살펴보도록 하지요. 실제로 그 구조들이 제시문에서 어떤 식으로 드러나는지 확인해보는 겁니다.

(1) 앞 혹은 뒤에 핵심이 있는 제시문

현대사회의 또 다른 문제점으로 가치전도(價値顚倒) 현상을 들 수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계몽된 인간 사회에서는, 물질적 가치보다 정신적 가치를 우위에 두는 경향이 뚜렷하였다. 인류의 스승인 성인들의 삶이 그러하였고, 각종 교육과 종교 및 문화 또한 바로 정신적 가치를 고양시키려는 일련의 노력이었다. 그런데 산업혁명 이후, 가치전도 현상이 급속도로 퍼져 나가면서 황금 만능주의, 과학 기술 만능주의, 감각주의 등과 같은 물질적 가치가 활개를 치게 되었다. 이렇다 보니 보다 더 중요한 생명의 가치나 도덕적 가치, 자연 환경의 가치 등이 약화되었다.

가장 평범한 제시문 구조겠지요? 맨 앞이나 맨 뒤에 중요한 문장이 나오게 되어 있고, 중간에는 그에 대한 구체적인 상술이 들어가게 됩니다. 위의 글은 그저 <가치 전도의 발생>에 대한 설명문이지만, 주장문이라면 아마 근거가 제시되었겠지요. 그리고, 그 신호로서 <때문>이라는 단어만 찾아내면 <근거+주장>이 딱 성립되겠지요. 언어영역을 어느 정도 풀어본 학생이라면 이런 류의 제시문 구조야 쉽게 파악할 수 있겠지요. 대개 이런 구조는 중복되는 내용도 없기 때문에, 오해의 소지도 없답니다.

(2) not A but B를 이용한 구조

역사 교과서는 한 국민의 역사의식을 구성하는 중심적 지위를 갖는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역사 지식은 의심, 비판, 재구성으로부터 자유로운 사실들의 집합체로 여겨진다. 교과서는 한 사회에서 널리 합의될 수 있는 보편적인 지식 혹은 표준화된 지식을 전제로 하지만, 과연 교과서에 담을 ‘공적 지식’이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그리고 교과서의 내용을 유일하고도 객관적인 지식이라고 믿을 수 있는 당위성이 있는가?

교과서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설명하고자 하는, 그것을 통해 어떤 문제에 관한 진리를 가르쳐주려는 특정한 사람의 시도임을 이해하여야 한다. 그러나 모든 역사적 결론은 다른 관점과 시각에 의해 수정될 수 있고, 교과서 역시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는 편견의 한 사례일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하여야 한다.


아마도 제 생각엔 논술 제시문 중에서 가장 흔하게 나오는 구조가 아닐까 싶네요. 우선 ‘잘못된 내용’을 던져놓고 그 뒤에 ‘그게 아니라, 이거라네’ 하고 붙이는 방식이지요. 첫 문단에서 이미 특정한 사실에 대한 사람들의 착각과 그에 대한 의심을 보여주지요. 그러고 나서 두 번째 문단에서 비로소 하고 싶은 말을 합니다. 물론 이렇게 구분하기 좋도록 문단을 나누는 경우도 있지만, 어려운 문제일수록 이런 장치가 숨겨져 있는 경우가 많지요. 그러므로, 난이도를 높이고 싶은 대학에서는 여러 가지 꼼수를 사용한답니다. 그리고 이런 류의 독해는 제시문 1개를 가지고 독립적으로 수행되기보다는, 다른 제시문의 조건에 맞게 수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다른 제시문이 2개의 내용을 가지고 있고, 이것을 not A but B구조로 된 제시문과 연결-설명하는 식이지요. 앞으로도 꾸준히 나오는 제시문 구조이니, 잊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3) 예시나 에피소드를 이용한 구조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한다는 사람들은 공정무역에 반대해야 한다. 대륙과 대륙 사이를 건너다니는 공정무역 제품은 수송 중에 엄청난 탄소를 배출하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탄소배출을 줄이자는 운동이나 개발도상국 국가들에 대한 일방적인 착취를 막아보자는 공정무역이나 흔히 ‘좋은 일’이라고 여겨지지만, 이와 같이 서로 모순되는 부분들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선한 의도가 항상 최상의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누군가의 선한 의도가 그와 상관없이 ‘덜 좋은’ 혹은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것은 개인이란 항상 자신의 고정된 기준에서만 상황을 판단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일이다. 기후변화라는 기준과 지역 간의 경제적 평등이라는 기준을 모두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역사를 뒤로 돌리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분명 두 번째 문단이 <그러므로>로 시작하므로, 앞의 문단이 그 근거가 되는 내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요. 다만, 그 근거로 예시가 사용된 것입니다. 주장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찾으라고 하면, 우리는 여섯 번째 문장을 지적해야 합니다. 우리가 놓치기 쉬운 표현이지만, 분명 <판단하기 때문에>라고 표현되어 있거든요. (당연히 ‘때문에’라는 표현은 반드시 체크하면서 읽어야 합니다.) 즉, 예시를 던져주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논증을 두 번째 문단에서 처리한 셈입니다. 물론, 요약을 할 때는 예시도, 근거도, 주장도 모두 담아야 하지요.

(4) 나열식 설명문 구조


샌델이 우려하는 바는 시장만능주의가 가져오는 ⓐ도덕의 상실과 ⓑ공동체의 파괴에 관한 것이다. [ⓐ의 예시] 시장 논리 없이 잘 굴러가던 영역에 일단 돈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윤리는 타락하고 도덕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생명, 사랑, 우정 등 인간 사회의 소중한 덕목이 금전적 교환의 대상이 되면서 시장의 논리에 함몰되어 위협받게 되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의 예시] 모든 것이 돈으로 거래할 수 있는 사회가 되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구분이 더욱 확연해지고 불평등이 표면화된다. 일상의 영역에서 돈에 의해 차등 대우가 이루어진다면 부유한 자나 가난한 자나 같은 공동체 구성원이라는 인식이 약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 삶 속에 있는 좋은 것에 가격을 매기는 행위는 그것을 오염시킬 우려도 있다.

이게 나열식 설명문 구조라는 것을 눈치채셨나요? 분명 첫 문장에서 라고 나와 있지요? 일부러 독해를 방해하기 위해서 ⓐ와 ⓑ를 저런 식으로 스리슬쩍 넣어놓았네요. 그 뒤에 나오는 내용이 ⓐ와 ⓑ의 예시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학생이라면 물론, 바로 첫 문장에서 눈치를 챘겠지요. 쉽게 썼다면 아마도 첫째, 둘째와 같은 서수를 사용했을 테지만 어차피 제시문이야 출제자가 맘대로 골라내는 것이니 우리가 억울해도 어쩔 수 없지요.

(5) 근거와 주장이 혼재된 형태

㉠ 우리 사회는 젊음을 광적으로 숭배하며, 늙음을 받아들여서는 안 될 추함으로 멀리하려 한다. ㉡ 젊음과 늙음이란 단지 구분의 문제에 불과한 것이지만, 사람들은 늙음이란 딱지에 벌레라도 물린 듯 자신을 긁어내려고 한다. ㉢ 하지만, 그 누군들 늙지 않겠는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변하지 않는 꽃은 없는 법. ㉣ 우리가 이렇게 젊음에 광분하여 시간을 되돌리려는 열풍에 시달리는 동안 정작 이미 ‘늙어 버린 이들’은 점점 더 우리에게서 멀어지고 만다. ㉤ 젊음을 선의 영역으로, 늙음을 악의 영역으로 나누어 버리는 순간. 이미 늙은이들은 더 이상 우리들의 대화꺼리조차 되지 않는 것이다. ㉥ 처음부터 노인이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젊은이가 어느날 노인으로 변했을 뿐이다.

주장+근거로 구성되었다는 점에서 <맨 앞 혹은 맨 뒤에 정확하게 핵심을 담아놓은 제시문>과 같지만, 중복되는 내용이 있다는 점에서 다르지요? 물론, 제시문 같은 경우 비슷한 주장과 근거가 반복적으로 나오기 때문에 뜻을 오독할 염려는 없지만, 무엇을 핵심으로 잡아야 할지 고민이 살짝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라는 사실을 ㉢=㉥이라는 사실을, ㉣=㉤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구분해야 하는 것이지요. 결과적으로 ㉣㉤이 결론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논증하기 위한 전제를 반복적으로 깔아놨기 때문에 혼선이 빚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럴 때는 같은 내용들을 정리해서, 문장으로 만들고 그걸 다시 합치는 방식의 요약을 써야겠죠. 자칫 눈에 잘 띄는 문장 하나만 골라서 쓰다가는 전체 뜻에서 다소 부족한 문장이 나올 수도 있겠지요?

(6) 연쇄적인 진행의 형태


탈냉전 시대에 들어오면서 깃발이나 십자가, 초승달과 같이 문화적 정체성을 표현하는 상징물이 중요해졌다. 문화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문화 정체성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장 의미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탈냉전 시대에는 사람과 사람을 나누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이념이나 정치, 경제가 아니라 문화다. 사람들은 조상, 종교, 언어, 역사, 가치관, 관습을 바탕으로 스스로를 규정하면서 가장 넓은 의미에서 ‘문명’이라고 하는 문화적 집단에 자신을 귀속시킨다. 이 중에서 종교는 문명을 규정하는 핵심적 특성이다. 현재 존재하는 주요 문명은 서구, 정교, 이슬람, 힌두, 중화, 일본,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다. 이제 세계 정치는 문화와 문명의 경계선을 따라 재편되고 있다. 탈냉전 시대에 가장 큰 파급력을 지닌 갈등은 사회적 계급이나 빈부 차이에서 나타나지 않고 상이한 문화적 배경에 속하는 사람들 사이에 나타난다. 상이한 문명에 속하는 국가나 집단 사이의 투쟁은 세계 전쟁으로 확산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가장 위험한 분쟁은 서로 다른 문명과 문명이 만나는 단층선에 발생한다.

이 제시문은 꽤 복잡해보이지요? 첫 번째 문단과 두 번째 문단의 내용은 비슷한 맥락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지만, 이를 보고 대충 맨 앞이나 맨 뒤에서 한 문장을 고르는 일은 매우 위험합니다. 물론, 문제조건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런 제시문이라면 어떤 흐름으로 주장과 근거가 반복되는지, 어떻게 확장 혹은 집중되어 가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첫 번째 문단에서는 분명 <문화-문명이 중요해졌다>는 내용이 나오고, 두 번째 문단에서는 <그중 종교가 문명의 핵심이다>라는 내용으로 연결되죠.
[생글 논술 첨삭노트] (10) 논술 유형 이론- 독해 (2)
그리고 나서 마지막으로 <이제 갈등은 문명의 충돌로서 발생한다>는 내용으로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연쇄적인 논증이 진행되는 형태인 셈이지요.

이용준 < S·논술 인문 대표강사 sgsgnote@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