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노동생산성 제고 외에는 답이 없다
일본식 불황 뒤따라가는 한국 경제
성장 열매 따려면 휴일 늘리기보다 노동혁신 통해 자본생산성 높여야
한국 경제가 여러 측면에서 일본 경제를 닮아간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동감하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인구 고령화 속도가 그렇고 경제성장률 추이가 그렇다. 일본의 경우 노동자 1명이 노인 1명 가까이를 부양해야 하는 시대가 머지않았다는 것인데, 이는 상상하기 어려운 스트레스를 사회에 안길 것이 틀림없다. 최근 아베노믹스니 뭐니 하지만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또한 일본 국민에게 다시는 되풀이하고 싶지 않은 경험일 것이다.
1959년부터 1974년까지 일본의 연평균 성장률은 15.5%였다. 그러나 1차 유가파동을 겪은 직후인 1975년부터 일본의 성장률은 하락하기 시작해 1993년에는 0.5%까지 내려갔다. 20년 사이 일본의 성장률이 15%포인트 하락한 것이다. 매년 0.75%포인트씩 떨어진 셈인데 현대 경제성장 역사에서 아마도 이런 추락을 경험한 나라는 일본 이외에는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 더욱이 199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장기불황은 불가사의하기까지 하다.
일본의 장기불황 시작을 1980년대 후반 거품에서 찾으려는 시도가 없지 않지만 경제성장률을 시간의 축에 대고 그려보면 당시 거품은 그다지 큰 부분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일본의 성장률 하락을 초래하고 끝내는 장기불황 늪에 빠지게 한 것일까.
경제성장은 노동이나 자본 같은 생산요소와 기술의 축적, 그리고 정책에 의해 결정된다. 특히 자본은 상대적으로 희소하고 노동은 풍부한 경제에서 고도성장이 일어나는 것은 이론적으로나 경험적으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고도성장 과정에서 정치적 리더십의 역할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니지만 라인강의 기적이나 한강의 기적은 불가능한 것이 일어난 게 아니다. 노동이 상대적으로 풍부한 경제에서 자본의 생산성은 상대적으로 매우 높다. 따라서 투자가 왕성할 수밖에 없고 성장률은 높은 것이다.
심지어 노동이 풍부해 실질임금이 상승하지 않는 경우에는 자본의 생산성이 체감하지 않는 영역까지 존재한다. 다시 말해 현대 경제성장의 기적들은 과장해서 말한다면 모두 노동의 결과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독일과 일본이 그렇고 대만과 한국, 그리고 중국, 이들의 뒤를 따르는 나라들에서 일어나고 있는 고도성장의 뒤에는 자본에 비해 양적으로 풍부하거나 질적으로 높은 수준의 노동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장기불황을 설명하는 데에도 노동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 애리조나대의 프레스캇 교수와 일본 히토쓰바시대의 하야시 교수는 1990년대 일본 장기불황의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는 노동공급의 감소에 따른 자본생산성의 감소와 그에 따른 투자 감소라고 주장한다. 1990년대 초반 일본은 토요 휴무제를 도입하고 공휴일을 증대시키는 제도를 도입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국민에게 이런저런 휴일을 제공하지 못해 안달하는 이 땅의 정치인들이 귀담아 들을 만한 주장이다. 그들이 제공하는 것은 결국 투자 감소와 실업의 증대라는 숨겨진 독약인 것이다.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저성장의 함정을 타파하는 것은 노동 이외에서 찾을 수 없다. 넓은 의미에서의 노동정책을 먼저 고려하지 않고 투자와 성장을 외치는 것은 공허한 것이다. 출산율을 높여 인구구조를 정상화하는 것, 교육제도의 획기적인 개혁을 통해 창의성을 포함한 노동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것, 노동윤리를 제고하는 것과 같은 지극히 당연한 과제 앞에서 우리는 왜 왜소해지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면에서 박근혜 정부는 표류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눈에 띄는 정책과 의지가 없다.
한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저성장의 늪 앞에서 당황하고 있는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넓은 의미에서 노동과 노동시장의 혁신이다. 투자가 저조한 것은 자본의 생산성이 낮기 때문이다. 낮은 자본 생산성의 저변에는 노동의 양과 생산성, 노동시장의 유연성 문제가 있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결국 우리 자신이다. 이 나라는 결국 우리 자신만큼 성장할 것이란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이여, 당신은 스스로의 생산성이 얼마라고 생각하는가.
조장옥 < 서강대 교수·경제학 choj@sogang.ac.kr >
한국경제신문 10월 11일자 A 3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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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옐런 Fed 의장도 출구를 피할 수 없다
재닛 옐런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 내정자가 일성으로 “경기 회복을 위해 더 많은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많은 미국인들이 아직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고, 가족을 어떻게 부양할지 걱정하고 있다는 말도 했다. 물가안정보다 성장과 고용 확대에 역점을 두겠다는 의지가 분명하다.
금융시장에서는 양적완화 출구시기가 당초 예상보다 늦춰지고, 미국 제로금리(연 0~0.25%) 상태가 더 길게 갈 것으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실제 옐런 지명자의 금융완화 정책은 벤 버냉키 현 의장보다 더 공격적이다. 버냉키 의장은 제로금리를 2015년 중반까지 유지하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녀는 2016년 후반까지 가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출구전략을 꺼냈던 버냉키 의장이 자신의 임기 말인 내년 1월까지 결자해지하지 않으면 출구시기가 마냥 늦춰질 가능성이 없지 않다.
물론 Fed가 내건 두 가지 출구 전제조건(실업률 6.5% 이하, 장기 물가상승률 2.5% 이상)이 충족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미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만성적인 국채 과다발행이 국가부채 급증을 부르는 문제다. 미 국가부채는 작년에 GDP의 100%를 넘었고, 지난 5월엔 16조7000억달러라는 부채한도가 소진됐다. 국가부채는 내년 20조달러를 돌파해 오바마 대통령 임기 중 2배로 불어나게 된다. 정부가 부족한 재정을 조달하기 위해 대량의 국채를 찍고, 이런 과잉 국채를 중앙은행인 Fed가 매입해주면서 국가부채가 계속 불어나게 되는 악순환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오바마 정부는 연 7000억달러의 예산이 들어가는 오바마케어를 강행하고 있다. 당연히 국채를 더 찍어야 한다. Fed가 국채를 월 850억달러씩 사주는 것을 중단하면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러나 양적완화는 이른바 비전통적인 통화정책으로, 비상수단이다. 비정상은 정상으로 돌아가는 게 순리다. 옐런이 아닌 누가 Fed 의장이 되든 출구를 찾아야 한다. 세계 경제가 정상궤도로 복귀하는 중대한 문제다.출구가 불확실하면 세계 경제 전체에도 불확실성만 더 커진다. 물론 우리 정부도 긴장감을 갖고 대비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0월 11일자 A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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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칼럼] 관계의 힘
1995년 미국 매사추세츠 메모리얼 병원. 쌍둥이 자매가 예정일보다 12주나 일찍 태어나는 바람에 인큐베이터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언니는 다행히 건강해졌지만 동생은 위태로워졌다. 의사들도 가망이 없다고 했다. 급기야 동생의 인큐베이터에서 긴박한 경고음이 울렸다. 그때 한 간호사가 언니를 동생 옆으로 데려가 눕혀 줬다. 뒤이어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언니가 몸을 돌려 아픈 동생을 껴안아 주자 동생의 심장박동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게 아닌가.
최근 출간된 《관계의 힘》에서 이들의 사진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포옹이 가장 위대한 기적을 만들어내는 장면이었다. 이 책의 주인공인 신팀장도 과거의 상처 때문에 사람들을 두려워하며 미숙아처럼 위태롭게 살아간다. 그러다 괴짜 노인으로부터 ‘우리 사이의 보이지 않는 끈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이 곧 인생의 전부’라는 것을 배운다. ‘관심, 먼저 다가가기, 공감, 진실한 칭찬, 웃음’의 다섯 가지 법칙도 깨닫는다.
이중에서도 말 못할 아픔이나 상처를 부드럽게 감싸안는 것은 공감이라는 끈이다. 공감은 ‘안에서 느끼다’라는 독일어에서 왔다고 한다. ‘아, 그럴 수 있겠구나’ 하는 공감능력은 곧 치유의 한 방법이다. 경기소방재난본부의 한 소방수가 인터넷 서평에 남긴 사연도 그렇다. 그는 재난 현장의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에 힘들어하는 선후배들을 치유하는 동료상담지도사 얘기를 들려준다.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극한 상황에서 먼저 관심을 가져주고, 먼저 다가가고, 공감하며, 칭찬하고 웃는 과정을 통해 서로를 되살린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직장인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게 ‘일’보다 ‘관계’라고 한다. 10명 중 8명이 동료나 선후배와 불화를 겪고 3명 정도는 집에서도 가족과 대화를 하지 않는다니 참으로 각박하고 외로운 ‘불통의 시대’다. 그러나 “지식인은 어떤 사실을 알고 있고, 성공한 인물은 어떤 사람을 알고 있다”(존 디마티니)고 하지 않았던가. 철학자 키에르 케고르도 “행복의 90%는 인간관계에 달려 있다”고 했다. 그러니 《관계의 힘》에 나오는 것처럼 내가 먼저 마음을 열어보자. 실제로 만 명의 인맥보다 한 명의 친구를 갖는 게 더 소중하다고 한다.
인간관계 역시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에게 대접하라’는 명구에 달렸다. 그래서 이를 황금률이라고 하지 않는가.
고두현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일본식 불황 뒤따라가는 한국 경제
성장 열매 따려면 휴일 늘리기보다 노동혁신 통해 자본생산성 높여야
한국 경제가 여러 측면에서 일본 경제를 닮아간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동감하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인구 고령화 속도가 그렇고 경제성장률 추이가 그렇다. 일본의 경우 노동자 1명이 노인 1명 가까이를 부양해야 하는 시대가 머지않았다는 것인데, 이는 상상하기 어려운 스트레스를 사회에 안길 것이 틀림없다. 최근 아베노믹스니 뭐니 하지만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또한 일본 국민에게 다시는 되풀이하고 싶지 않은 경험일 것이다.
1959년부터 1974년까지 일본의 연평균 성장률은 15.5%였다. 그러나 1차 유가파동을 겪은 직후인 1975년부터 일본의 성장률은 하락하기 시작해 1993년에는 0.5%까지 내려갔다. 20년 사이 일본의 성장률이 15%포인트 하락한 것이다. 매년 0.75%포인트씩 떨어진 셈인데 현대 경제성장 역사에서 아마도 이런 추락을 경험한 나라는 일본 이외에는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 더욱이 199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장기불황은 불가사의하기까지 하다.
일본의 장기불황 시작을 1980년대 후반 거품에서 찾으려는 시도가 없지 않지만 경제성장률을 시간의 축에 대고 그려보면 당시 거품은 그다지 큰 부분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일본의 성장률 하락을 초래하고 끝내는 장기불황 늪에 빠지게 한 것일까.
경제성장은 노동이나 자본 같은 생산요소와 기술의 축적, 그리고 정책에 의해 결정된다. 특히 자본은 상대적으로 희소하고 노동은 풍부한 경제에서 고도성장이 일어나는 것은 이론적으로나 경험적으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고도성장 과정에서 정치적 리더십의 역할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니지만 라인강의 기적이나 한강의 기적은 불가능한 것이 일어난 게 아니다. 노동이 상대적으로 풍부한 경제에서 자본의 생산성은 상대적으로 매우 높다. 따라서 투자가 왕성할 수밖에 없고 성장률은 높은 것이다.
심지어 노동이 풍부해 실질임금이 상승하지 않는 경우에는 자본의 생산성이 체감하지 않는 영역까지 존재한다. 다시 말해 현대 경제성장의 기적들은 과장해서 말한다면 모두 노동의 결과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독일과 일본이 그렇고 대만과 한국, 그리고 중국, 이들의 뒤를 따르는 나라들에서 일어나고 있는 고도성장의 뒤에는 자본에 비해 양적으로 풍부하거나 질적으로 높은 수준의 노동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장기불황을 설명하는 데에도 노동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 애리조나대의 프레스캇 교수와 일본 히토쓰바시대의 하야시 교수는 1990년대 일본 장기불황의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는 노동공급의 감소에 따른 자본생산성의 감소와 그에 따른 투자 감소라고 주장한다. 1990년대 초반 일본은 토요 휴무제를 도입하고 공휴일을 증대시키는 제도를 도입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국민에게 이런저런 휴일을 제공하지 못해 안달하는 이 땅의 정치인들이 귀담아 들을 만한 주장이다. 그들이 제공하는 것은 결국 투자 감소와 실업의 증대라는 숨겨진 독약인 것이다.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저성장의 함정을 타파하는 것은 노동 이외에서 찾을 수 없다. 넓은 의미에서의 노동정책을 먼저 고려하지 않고 투자와 성장을 외치는 것은 공허한 것이다. 출산율을 높여 인구구조를 정상화하는 것, 교육제도의 획기적인 개혁을 통해 창의성을 포함한 노동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것, 노동윤리를 제고하는 것과 같은 지극히 당연한 과제 앞에서 우리는 왜 왜소해지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면에서 박근혜 정부는 표류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눈에 띄는 정책과 의지가 없다.
한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저성장의 늪 앞에서 당황하고 있는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넓은 의미에서 노동과 노동시장의 혁신이다. 투자가 저조한 것은 자본의 생산성이 낮기 때문이다. 낮은 자본 생산성의 저변에는 노동의 양과 생산성, 노동시장의 유연성 문제가 있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결국 우리 자신이다. 이 나라는 결국 우리 자신만큼 성장할 것이란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이여, 당신은 스스로의 생산성이 얼마라고 생각하는가.
조장옥 < 서강대 교수·경제학 choj@sogang.ac.kr >
한국경제신문 10월 11일자 A 3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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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옐런 Fed 의장도 출구를 피할 수 없다
재닛 옐런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 내정자가 일성으로 “경기 회복을 위해 더 많은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많은 미국인들이 아직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고, 가족을 어떻게 부양할지 걱정하고 있다는 말도 했다. 물가안정보다 성장과 고용 확대에 역점을 두겠다는 의지가 분명하다.
금융시장에서는 양적완화 출구시기가 당초 예상보다 늦춰지고, 미국 제로금리(연 0~0.25%) 상태가 더 길게 갈 것으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실제 옐런 지명자의 금융완화 정책은 벤 버냉키 현 의장보다 더 공격적이다. 버냉키 의장은 제로금리를 2015년 중반까지 유지하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녀는 2016년 후반까지 가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출구전략을 꺼냈던 버냉키 의장이 자신의 임기 말인 내년 1월까지 결자해지하지 않으면 출구시기가 마냥 늦춰질 가능성이 없지 않다.
물론 Fed가 내건 두 가지 출구 전제조건(실업률 6.5% 이하, 장기 물가상승률 2.5% 이상)이 충족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미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만성적인 국채 과다발행이 국가부채 급증을 부르는 문제다. 미 국가부채는 작년에 GDP의 100%를 넘었고, 지난 5월엔 16조7000억달러라는 부채한도가 소진됐다. 국가부채는 내년 20조달러를 돌파해 오바마 대통령 임기 중 2배로 불어나게 된다. 정부가 부족한 재정을 조달하기 위해 대량의 국채를 찍고, 이런 과잉 국채를 중앙은행인 Fed가 매입해주면서 국가부채가 계속 불어나게 되는 악순환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오바마 정부는 연 7000억달러의 예산이 들어가는 오바마케어를 강행하고 있다. 당연히 국채를 더 찍어야 한다. Fed가 국채를 월 850억달러씩 사주는 것을 중단하면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러나 양적완화는 이른바 비전통적인 통화정책으로, 비상수단이다. 비정상은 정상으로 돌아가는 게 순리다. 옐런이 아닌 누가 Fed 의장이 되든 출구를 찾아야 한다. 세계 경제가 정상궤도로 복귀하는 중대한 문제다.출구가 불확실하면 세계 경제 전체에도 불확실성만 더 커진다. 물론 우리 정부도 긴장감을 갖고 대비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0월 11일자 A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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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칼럼] 관계의 힘
1995년 미국 매사추세츠 메모리얼 병원. 쌍둥이 자매가 예정일보다 12주나 일찍 태어나는 바람에 인큐베이터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언니는 다행히 건강해졌지만 동생은 위태로워졌다. 의사들도 가망이 없다고 했다. 급기야 동생의 인큐베이터에서 긴박한 경고음이 울렸다. 그때 한 간호사가 언니를 동생 옆으로 데려가 눕혀 줬다. 뒤이어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언니가 몸을 돌려 아픈 동생을 껴안아 주자 동생의 심장박동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게 아닌가.
최근 출간된 《관계의 힘》에서 이들의 사진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포옹이 가장 위대한 기적을 만들어내는 장면이었다. 이 책의 주인공인 신팀장도 과거의 상처 때문에 사람들을 두려워하며 미숙아처럼 위태롭게 살아간다. 그러다 괴짜 노인으로부터 ‘우리 사이의 보이지 않는 끈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이 곧 인생의 전부’라는 것을 배운다. ‘관심, 먼저 다가가기, 공감, 진실한 칭찬, 웃음’의 다섯 가지 법칙도 깨닫는다.
이중에서도 말 못할 아픔이나 상처를 부드럽게 감싸안는 것은 공감이라는 끈이다. 공감은 ‘안에서 느끼다’라는 독일어에서 왔다고 한다. ‘아, 그럴 수 있겠구나’ 하는 공감능력은 곧 치유의 한 방법이다. 경기소방재난본부의 한 소방수가 인터넷 서평에 남긴 사연도 그렇다. 그는 재난 현장의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에 힘들어하는 선후배들을 치유하는 동료상담지도사 얘기를 들려준다.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극한 상황에서 먼저 관심을 가져주고, 먼저 다가가고, 공감하며, 칭찬하고 웃는 과정을 통해 서로를 되살린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직장인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게 ‘일’보다 ‘관계’라고 한다. 10명 중 8명이 동료나 선후배와 불화를 겪고 3명 정도는 집에서도 가족과 대화를 하지 않는다니 참으로 각박하고 외로운 ‘불통의 시대’다. 그러나 “지식인은 어떤 사실을 알고 있고, 성공한 인물은 어떤 사람을 알고 있다”(존 디마티니)고 하지 않았던가. 철학자 키에르 케고르도 “행복의 90%는 인간관계에 달려 있다”고 했다. 그러니 《관계의 힘》에 나오는 것처럼 내가 먼저 마음을 열어보자. 실제로 만 명의 인맥보다 한 명의 친구를 갖는 게 더 소중하다고 한다.
인간관계 역시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에게 대접하라’는 명구에 달렸다. 그래서 이를 황금률이라고 하지 않는가.
고두현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