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10월은 노벨상의 계절…부와 명예 안겨주는 최고 권위 賞
대중에게 어떤 분야 상(賞)의 높은 권위를 쉽게 이해시키고자 할 때, 우리는 그 분야의 노벨상이라 지칭한다. 즉 의학분야 레스커상을 ‘미국의 노벨상’이라고 하거나 수학분야 필즈상과 아벨상을 ‘수학의 노벨상’이라 부르는 식이다. 그만큼 노벨상은 대중에게 일반명사처럼 잘 알려진 세계 최고 권위의 상이다. 10월은 노벨상 수상자가 가려지는 ‘노벨상의 계절’이다. 노벨상을 주관하는 노벨재단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올해 일정을 발표했고 지난 8일 물리학상 수상자로 힉스입자 존재를 예측한 피터 힉스와 프랑수아 앙글레르가 공동 선정됐다. 우리나라는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0년 한국인 처음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우리나라는 경제력이나 국제사회 위상에 비해 노벨상 수상자가 너무 적다는 지적도 나온다.

'독창성' 갖춰야 수상 가능

노벨상(Nobel Prize)은 다이너마이트 발명가인 스웨덴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에 따라 인류의 문명 발달에 학문적으로 기여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매년 물리학·화학·생리의학·문학·평화·경제 6개 분야로 나눠 수상자를 선정해오고 있다. 수상자는 금으로 된 메달과 함께 표창장, 노벨재단의 수익금에 따라 달라지는 상금을 받는다. 2011년 상금은 1000만크로네였으나 지난해 금융위기 후 상금은 약 20% 삭감됐고, 올해 상금은 800만크로네(약 14억3000만원)다.

수상자를 선정할 때 가장 중요한 평가기준은 독창성이다. 인류에 큰 기여를 한 연구와 발명이 있을 경우 그 아이디어를 처음 낸 사람에게 상을 수여한다. 즉 원리를 만든 사람에게 상을 주는 것이지 그에 바탕을 둔 생산이나 응용에 큰 기여를 한 사람에게는 상을 수여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공동 수상은 가능하지만 그 숫자는 3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노벨상 수상을 위해서는 이른바 ‘노벨상 스펙’을 먼저 갖춰야 한다는 말도 있다. 노벨상 스펙은 노벨상 이전 단계로 불리는 각 분야의 상을 받았거나, 물리·의학·화학 등 분야 논문의 인용 빈도가 상위 0.1% 이내에 들거나, 노벨재단이 주관하는 노벨 심포지엄에 초청받은 학자가 되는 것이다. 이 조건을 만족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역대 수상자의 90% 정도가 배출돼왔다.

#노벨상 2관왕·수상 거부자도

최근 미국 경매단체인 헤리티지옥션을 통해 노벨상 메달이 경매에 부쳐졌고 200만달러(약 22억6000만원)에 낙찰됐다. 이는 당초 예상된 50만달러보다 4배가량 높은 금액으로 수상자로 선정만 된다면 생애 최고의 영예로 여기는 노벨상의 위엄을 보여준다.

평생 한 번 수상도 ‘하늘의 별따기’인 노벨상을 두 번씩이나 수상한 2관왕이 있다. 마리 퀴리와 라이너스 폴링, 존 바딘 그리고 프레더릭 생어까지 모두 4명이다. 프랑스의 물리학자이자 화학자인 퀴리 부인은 1903년에 방사선 연구로 남편 피에르 퀴리와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고 1911년에는 라듐과 폴로늄의 발견으로 화학상을 받았다. 1935년에는 딸과 사위인 프레데리크 졸리오퀴리와 이렌 졸리오퀴리 부부가 화학상을 공동 수상하기까지 했다.

노벨상 수상을 거부한 사례도 있다. 1964년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문학상을, 베트남 정치가 레득토 역시 1973년 평화상 수상을 거절했다. ‘닥터 지바고’로 유명한 옛 소련의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1958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으나 소설에서 러시아 혁명을 비판한 내용으로 소련 정부와 작가 동맹으로부터 압력을 받아 수상을 거부했다. 하지만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스웨덴 아카데미가 그의 수상 거부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수상식을 보류했다. 1989년이 돼서야 파스테르나크의 아들이 그를 대신해 노벨상을 대리 수상했다.

#과학분야 노벨상 日 16 vs 韓 0

노벨상 수상은 선진 국가들이 독점하는 형태다. 국가별로 미국 330명, 영국 106명, 독일 80명, 프랑스 54명이고 뒤를 이어 스웨덴 30명, 스위스 22명, 러시아와 일본이 각각 19명 순이다. 대부분의 나라는 10명 미만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특히 최근 20년간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국으로 새롭게 추가된 곳은 오직 이스라엘뿐일 정도로 노벨상 중에서도 과학 분야는 수상국이 제한돼 있다. 그럼에도 일본은 과학 분야에서만 16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고 한국은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 기록이 없다.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

일본의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 저력에 전문가들은 ‘100년 노력의 결과’라고 입을 모은다. 일본은 19세기 근대 과학의 흐름을 재빨리 받아들였고 근 100년 동안 기초과학 연구에 대한 지원과 환경 조성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은 기초과학 연구에 대한 지원금이 미미하고 정부정책도 미국 독일 일본 등 과학강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단기적 성과를 내기 위한 연구에만 지원을 집중하고 있는 것도 노벨 과학상 수상을 가로막는 이유로 꼽힌다.

손정희 한국경제신문 연구원 jhson@hankyung.com


다이너마이트 발명한 노벨…‘죽음의 상인’ 오명도

[Focus] 10월은 노벨상의 계절…부와 명예 안겨주는 최고 권위 賞
세계 최고 권위상인 노벨상을 제정한 사람은 발명가이자 화학자인 알프레드 베른하르드 노벨(1833~1896)이다. 그는 평생에 걸쳐 끊임없는 연구와 실험을 하며 355개에 달하는 특허를 취득한 인물이다. “1년에 1000개의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고 그 가운데 오직 하나만이 쓸모 있는 것으로 밝혀진다 하더라도 나는 만족할 수 있다”고 한 노벨의 말에서 그의 성실성과 연구자로서의 집념이 엿보인다. 또한 화약에만 국한하지 않고 만년필, 축음기, 전화기, 백열등, 로켓, 인조 보석, 비행기 등까지 다양한 분야로 연구 영역을 넓혔다.

그는 생전에는 무기로 사용된 다이너마이트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의 사망 오보가 났을 때 많은 신문들이 “죽음의 상인, 사망하다” “사람을 더 많이, 더 빨리 죽이는 방법을 개발해 부자가 된 인물”이라고 폄하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가 다이너마이트를 개발하기 전에는 무색투명 액체인 나이트로글리세린이라는 물질을 이용한 액체 폭약을 사용했다. 이 액체 폭약은 진동이나 충격에 쉽게 폭발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 위험성이 컸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폭발력은 유지하면서도 안전성을 높인 실용적 폭약을 만들고자 무수히 노력했다. 노벨 역시 안전한 폭약을 위해 다이너마이트를 연구해 발명한 것이지 무기로 사용될 다이너마이트를 만들어낸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일각에서는 ‘죽음의 상인’이란 오명을 벗고 다이너마이트가 무기로 사용됨에 죄책감을 느껴 재산 기부와 함께 노벨상이 만들어졌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오해되거나 오용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 노벨은 다이너마이트 역시 도구에 불과하고, 여기에 선악의 기준을 적용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