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분배이론의 개척자 데이비드 리카도

[경제사상사 여행] "국가 간 분업은 번영의 열쇠"…비교우위로 무역 활성화
18세기 후반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사회는 자본주의에 대한 기대가 컸다. 가난을 극복하게 하고, 조화롭고 보편적인 풍요를 보장해줄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이런 장밋빛 전망에 일침을 가한 이가 있다. 영국 출신의 정치경제학자가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다. 그는 인류의 빈곤과 불공정 분배, 성장 없는 정체 상태의 도래는 극복할 수 없는 인류의 숙명이라고 주장했다.

증권 중개업으로 성공한 유태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리카도는 14세 때 아버지를 따라 증권 중개업에 뛰어들어 큰 부를 일궜다. 20대 중반에 영국의 거부가 됐다.

대학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리카도가 경제학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아내의 병으로 함께 머물던 시골의 한 요양지에서 시간을 때우기 위해 시골 도서관에서 우연히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읽게 됐다. 그는 바로 책에 빠져들었다.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게 되자 모든 사업에서 손을 떼고 오로지 학문연구에만 몰입했다.

리카도의 관심은 국부(國富)의 성장원리가 아닌 분배원리, 즉 부가 어떻게 지주와 자본가, 노동자에게 분배되는가의 문제였다. 주목할 부분은 곡물가격이다. 그는 곡물가격이 경작지 가운데 가장 척박한 토지의 생산비에 의해 결정된다고 설명한다.(노동가치론) 그 가격에서 비옥한 토지의 생산비를 뺀 게 지주의 지대다. 인구가 증가하면 생산비가 많이 드는 척박한 토지로 경작지를 확대해야 한다. 그 결과는 곡물가격과 지대의 지속적 상승이라고 주장한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주장하는 노임이다. 노동자는 평생토록 생존하기에 빠듯한 수준의 소득을 올린다고 지적한다.(임금철칙설) 실질노임이 늘어나 생활이 조금 나아지면 식구 수가 늘어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곡물가격이 높아 노임이 인상된다고 해도 최저 생계비를 넘는 실질소득 증대는 기대할 수 없다고 한다.

리카도가 내다본 자본가의 이윤 전망도 그리 밝지 않다. 인구 증가로 지대와 노임이 상승하기 때문에 이윤은 점차 하락하게 돼서다. 더욱이 농업이든 공업이든 수확 체감법칙이 작동해 이윤은 체감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언젠가는 성장이 정체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분배게임에서 승자는 불로소득으로 사는 지주뿐이라는 게 리카도의 논리이다. 노동자는 늘 가난하고 자본가의 이윤도 떨어져 새로운 자본이나 기계에 투자할 인센티브가 소멸되면서 성장은 약화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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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게도 자본주의가 가져오는 처참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리카도는 자본주의 체제를 바꾸거나 정부간섭을 통해 분배를 시정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사회주의 도입이나 재분배 강화는 피해만 줄 뿐 문제의 해결 방법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대신 그는 무역이론을 통해 자유시장이 얼마나 유익한지를 보여준다. 아무리 열등한 학교라고 하더라도 그 학교에 1등 하는 학생이 있는 것처럼 다른 나라와 비교해 크게 나을 게 없는 나라도 비교우위에 있는 산업이 있게 마련인데, 각 나라가 이런 비교 우위에 있는 산업에 주력해서 분업할 경우 비록 단기적이기는 하지만 빈곤도 줄어들고 경제도 번영한다는 게 리카도의 설명이다.

리카도는 국가부채에 대한 반대자이기도 했다. 국가부채는 나라를 괴롭히기 위해 고안된 무서운 재앙이라고 설파했다.

리카도는 건전한 통화의 중요성도 역설했다. 19세기 초 영국의 주요 문제는 상품가격과 금값의 인상으로 인한 통화가치 불안이었다. 물가 불안의 원인이 영국에 대한 나폴레옹의 대륙 봉쇄 때문이라는 게 세간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리카도는 금값과 물가 인상은 영란은행이 지나치게 많은 돈을 발행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면서 건전한 통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중앙은행의 재량적인 통화 발행을 제한할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자유무역을 비롯한 자유시장은 단기적으로는 빈곤 해소와 번영에 효과적이지만 인류의 궁극적인 문제, 즉 빈곤과 성장의 한계를 극복할 수는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따라서 인류는 이런 한계를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찰스 디킨스가 자신의 저서 《크리스마스 캐롤》에 등장하는 유령을 통해 미래의 절망과 빈곤을 보여주는 것처럼 리카도는 경제모델을 통해 절망의 미래를 펼쳐 보이고 있다. 그의 비관주의는 사람들을 침울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의 사상은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도덕을 강조했던 칼라일의 지적대로 ‘음울한 경제학’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리카도 사상에 오류가 적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자유무역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그것이 그가 숙명적이라고 여긴 빈곤과 성장의 한계를 극복하는 열쇠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실질노임의 상승과 지속적인 번영을 가능하게 하는 혁신과 기술 발전을 고려하지 못한 것도 그의 사상적인 한계였다. 먹고 살 만하면 인구가 늘어난다는 그의 주장도 맞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리카도의 사상은 여러 비판의 여지를 남겨 놓았지만 그는 분배이론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고 특히 무역규제를 반대하는 자유무역이론을 개척한 공로는 높이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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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공개념·관세율 인하…좌·우파 모두 영향

리카도 사상의 힘

리카도의 사상은 한편으론 좌파적이고 다른 한편으론 우파적이다. 그래서 그의 사상적 영향도 양면적이다. 마르크스가 그를 자신의 스승이라고 말할 정도로 사회주의의 등장을 촉진시킨 한편으로 자유무역과 시장경제의 발전에도 기여했다.

노동가치설과 임금철칙설을 중심으로 하는 리카도의 좌파사상은 ‘공상적 사회주의’에서 마르크스의 ‘과학적 사회주의’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사회주의 사상 발전과 노동운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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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악의 근원을 토지에서 찾는 리카도의 토지사상 영향도 빼놓을 수 없다. 이는 미국으로 건너와 헨리 조지의 토지사회주의 형성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지대가 갖는 가격기능과 이에 따른 토지 활용의 역할을 무시하고, 토지 사유의 정당성을 부정했던 헨리 조지 사상은 토지에 대한 리카도의 비판적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1980년대 후반과 노무현 전 대통령 시기에 한국에서 토지공개념의 이름으로 도입된 각종 토지 관련 입법도 조지를 경유한 리카도의 토지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리카도의 사상에서 주목할 것은 그의 방법론이다. 그는 정확한 과학으로서의 경제학을 창설하겠다는 야심이 있었다. 이를 위해 현실의 복잡성을 단순화하는 형식적 모형을 만들고 원하는 결과를 입증하기 위해 다양한 전제를 이용했다.

그러나 그는 유감스럽게도 비현실적일 만큼 지나치게 모형을 단순화했고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잘못된 전제까지 이용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럼에도 그의 경제학 방법론이 미친 영향은 무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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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자유무역이론이 미친 영향도 적지 않다. 그는 날카로운 분석과 논리로 곡물 수입을 막는 곡물법 폐지를 주장했지만 생전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의 논리는 사후에 꽃을 피웠다. 영국이 곡물은 수입하고 공산품은 수출하는 보편적인 번영의 시대를 여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의 이론은 세계 각국에 전파돼 독일 프랑스 스웨덴 등 많은 유럽 국가들도 무역 장벽을 허물기 시작했다. 미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민경국 교수